눈텊힌 록키산맥 가운데에 설치된 미국거주 일본인 강제수용소의 살벌한 전경.   ©yahoo.com

1941년 12월 7일 일본 가미가제(神風) 특공비행대가 하와이의 진주만(Pearl Harbor)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였다.

진주만을 기습당한 미국은 즉각적인 조치에 들어갔다. 일본의 다음 공격목표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해안지방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미국전역을 4개 방위구역으로 설정하고 그 중 서부방위구역인인 캘리포니아 지역을 군사구역으로 선포하였다.

일본계 미국인들의 미국내 격리수용소 지도   ©yahoo.com

1942년 3월과 4월의 화창한 봄날에, 미국은 서부해안에 거주하는 11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Japanese-Americans)을 적국인(Enemy Aliens)으로 지정하고 강제수용조치를 취하였다.

미국에 불법체류자나 유학생, 여행자가 많은 요즘과는 달리 그 당시 미국에 거주한 일본인들은 대부분이 미국 시민권자이며 그 중 7만 명은 미국에서 출생한 2세들이었다. 법적으로 분명히 미국시민이었으나 일본핏줄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적국인으로 취급돼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미국정부는 해안과 멀리 떨어진 록키산맥 부근과 내륙중심부인 아칸소(Arkansas)주와 심지어는 대서양 연안의 동부지역 등 여러 곳에 이주수용소(Relocation Center) 또는 격리수용소(Isoation Center)와 임시수용소를 만들어 일본계미국인들에 대한 강제수용조치를 단행하였다. 이 수용소는 명칭과는 달리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독일군 포로들을 수용한 포로수용소(Prisoners of War Camp)와 유사한 것들이었다. 실제 명칭에서도 전쟁캠프라고 표시한 곳도 있었다.

삭막한 불모지로 일본인을 멀리 격리시킨 만자나 전쟁강제수용소 간판.   ©yahoo.com

필자가 뉴욕에서 근무한 1989년까지만 해도 미국 초·중·고교에서는 해마다 학생들에게 이 내용을 지도를 곁들여 상세히 소개한 후 리포트 과제로 "왜 일본계미국인은 그 당시 그들 자신의 나라, 미국에서 전쟁포로와 같은 유감스런 대우를 받게 되었는가"를 묻고 있었다.

아마도 이러한 과제물은 그 당시 강제수용을 당했던 일본인들이 미국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고 있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는 듯도 하지만, 미국은 교육을 통해 50여 년 전의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잊지 않도록 생생한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나라이다.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아리조나 전함의 '피폭' 장면.   ©yahoo.com

우리는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에도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을 피 흘리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36년간의 일본의 포악한 식민지배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그들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우리나라 청장년을 총알받이 군대와 강제노역에 동원하고, 꽃다운 여성들을 정신대로 아시아 전역의 전쟁터를 끌고 다녔던 반문화적이고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한 그 기막힌 역사를 잊을수가 있겠는가?

하물며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영토임이 분명한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헛소리를 일삼는 일본의 국격과 무지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강정훈 교수(전 조달청장)

일본은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독일과는 너무나 판이하다, 대국이 될 자격이 없는 섬나라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부인하겠다고 발버둥 친다면 진주만 습격을 한 벌로 미국으로부터 받은 응징까지도 잊었단 말인가?

우리가 당한 것처럼 나라를 삼킨 것도 아니고 어설프게 폭격 한번 한 대가치고는 엄청난 학습이 아닌가?

단순히 일본인 핏줄이 흐른다는 그것 하나 때문에 일본계미국시민이 적국인으로서 강제수용 되었던 살아 있는 그 역사마저도 잊었단 말인지 곱씹어 보기를 바랄뿐이다.

글ㅣ강정훈 교수(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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