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 질서를 무시한 채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고 교만해진 결과, 결국 하나님에 의해 그 계획이 무너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여러 민족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왜 탑을 쌓으려 했는지, 그리고 바벨탑의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본문은 먼저 거대한 탑이 하나님에 의해 좌절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한 것은 분명한 교만이었습니다. 또한 흩어짐을 면하려 했던 그들의 의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이러한 마음과 행동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불러온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속 인간들은 견고한 벽돌을 만들어 하늘에 닿을 정도의 도시와 탑을 쌓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에는 경건함이 없었고,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은 헛된 야심만 가득했습니다. 인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의 지혜와 능력을 동원하는 모습은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된 욕망과 야심의 발로였으며, 하나님은 이러한 계획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소통할 수 없게 하셨고, 결국 그들은 흩어져 탑 쌓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최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편리한 도구들이 끊임없이 개발되며 삶은 더욱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이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문명이 생성되고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21세기의 문명이라는 또 하나의 바벨탑을 세웠지만, 결국 그것은 허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세운 인본주의 문명은 그 속에 이미 파멸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언젠가 그것이 자라 인간의 모든 계획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동기의 순수함입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노아 홍수 이후 약 300년이 지난 시점,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은 채 다시 홍수가 날 것을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견고한 벽돌을 굽고 높은 탑을 쌓으려 한 것은 과학과 인간의 힘을 의지한 행위였으며, "우리의 이름을 내자"는 말은 인간이 영광을 받으려는 욕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릇된 동기는 결국 파멸을 가져왔습니다. 최초로 뱀이 인간에게 "이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유혹했듯, 마귀는 지금도 하나님께 대적하라고 속삭이며 인간을 유혹합니다. 인간의 가장 큰 유혹은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이는 지배욕으로 나타나며, 사람을 친구나 섬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용하거나 지배하려 하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권력이 높아질수록 인간은 더욱 큰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의 정치는 사람을 부리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정치는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목적은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이었고,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좋은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갈등을 만들기도 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없는 사회는 고독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결국 서로 뭉치려 합니다. "흩어짐을 면하자"는 말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을 만들고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그 결과 여러 국제기구가 등장했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모든 모임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우선합니다. 이것이 바로 흩어짐을 면하려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아름답지 못한 바벨탑의 건설을 막으셨습니다. 시편에는 "하나님이 웃으신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스스로 탑을 쌓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우셨고, 동시에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 길을 막으셨습니다. 탑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들의 수고는 헛되게 되었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바벨탑 안에서는 자신의 기술과 능력만 보일 뿐,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려면 바벨탑에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창공과 우주의 광대함을 바라보아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바벨탑이 있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인간이 가야 할 길은 바벨탑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신 다락방입니다. 그곳에서 언어가 새롭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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