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한국 보수진영 유력 주자들 사이에서 독자 핵무장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핵 주권 확보'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남북 핵균형'을 강조하며 독자 핵개발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는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내고,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의 역량 강화를 추진하면서도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을 지지하느냐는 질의에 대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은 여전히 유효하며, 한반도 안보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미국과 한국은 모두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의무를 성실히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NPT 체제에 따라 비핵보유국인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획득할 수 없다는 국제적 합의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사실상 반대하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국무부가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와 안보 보장을 재확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미국의 보호 아래 있는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이번 입장 표명은 한국 내 대선 주자들이 핵무장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이후 이뤄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핵 정책 관련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 17일 외교ㆍ안보 분야 대선 공약을 발표하며 "대통령이 되면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 '핵 주권 확보 비상 로드맵'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독자 핵무장에 따른 경제 제재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는 "그래서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것"이라며 "북한의 핵 폐기를 유도하려면 우리가 핵을 보유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홍준표 전 시장도 '선진대국시대 비전 발표회'에서 "홍준표 정부는 남북 간 핵균형과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장평화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미 핵공유 및 자체 핵개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며 "지금은 한미 양국이 모두 핵균형 정책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공약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국내 여론과,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안보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정부와 달리 해외 주둔 미군 역할을 축소하고,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확대 및 자주국방을 강조해온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일부 보수 안보 전문가들도 한국의 핵무장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특히 앨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담당 차관보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책담당 차관으로 발탁된 점은, 핵무장론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하면서, 미국의 동의를 바탕으로 독자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졌다. 미국의 협조 없이 한국이 핵무장을 강행할 경우, NPT 체제 위반에 따른 국제 제재는 물론, 한미동맹의 심각한 균열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부는 올해 1월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SCL)'에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한국 내에서 제기되는 핵무장 여론이 미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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