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이 지난해 동성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 집전을 허용한 후 국내에서 신부가 두 동성 커플에게 처음으로 축복 집전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천주교 글라렛 선교수도회 소속의 모 신부가 지난달 20일 신년 미사 직후 동성 커플을 위한 축복 기도문을 낭독했다는 것.

해당 신부는 동성 커플에게 구약성경 ‘민수기 6장 24~26절’의 말씀을 기반으로 축복 기도문을 낭독했다고 하는 데 그 내용은 미국 뉴욕에서 한 신부가 동성 커플을 축복할 때 사용한 기도문이라고 한다. 모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 신부는 이날 “성소수자들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며 “하느님께서는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며, 주님의 축복에서 그 어떤 이도 배제되지 않는다”고 했다고.

가톨릭 신부가 국내에서 동성 커플에게 축복 집전을 한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이 같은 사실은 가톨릭 내 모 성소수자 지지단체에 의해 뒤늦게 공개됐다. 신부에게 축복 기도를 받은 두 커플 중 한 커플이 이 단체의 공동 대표란 점에서 외부에 이 내용을 알린 의도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로마 교황청은 동성 간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는 교리를 고수해 왔다. 지난 2021년에도 ‘동성 결합은 이성 간 결혼만을 인정하는 교회의 교리를 훼손하는 것이기에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가톨릭교회의 기존 입장이 지난해 12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간청하는 믿음’이라는 제목의 교리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완전히 깨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가톨릭 사제가 이들에 대해 축복을 집전해도 된다”고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 선언문에는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것이 교회의 전례 행위로 인정되거나 동성 결합 자체를 교회가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즉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과 동성 커플의 혼인성사 인정은 별개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동성애를 죄악시해 온 그간의 교리와 비교할 때 충격적인 변화여서 가톨릭 내부에서조차 혼란과 반발이 이어지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신부가 동성 커플 축복식을 집전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에도 국내 가톨릭교회는 아무 말이 없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측에서 이렇다 할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있지 않는 것만 봐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교황이 허용한 사안인지라 가타부타하기 어렵겠지만 속내는 다소 복잡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자에 대한 개방적인 입장은 가톨릭교회 내부에서도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 별세 이후, 교황에 대한 반대 의견이 대두되는 분위기다. 교황의 진보적인 입장이 특히 동성애, 피임, 낙태 등에서 더욱 두드러지면서 기존의 가톨릭교회가 고수해 온 교리적인 견해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내부의 반발 또한 거세지고 있다.

교황의 동성애자에 대한 포용적인 자세로 가톨릭교회 내부가 흔들리는 모습은 개신교회엔 크게 와 닿는 공통의 감정 선이 없다. 가톨릭은 교황이라는 1인이 사실상 전체 교회를 지배하고 구조이기에 교리적인 문제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 몰라도 기독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성경을 기초로 한 교리를 개인이 바꾸거나 마음대로 흔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니란 말이다. 그랬다면 종교개혁 이후 500여 년 간 교회가 부흥은 고사하고 존속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가톨릭 신부의 동성애자 커플에 대한 축복 집전 소식을 접하며 마음 한 구석에 드는 걱정이 하나 있다.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해 반대해온 한국교회를 향한 외부의 불편한 시선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지난 2019년 인천 퀴어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축복식을 집례한 이동환 목사에 대해 4일 ‘출교’를 확정했다.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교단 법인 ‘교리와 장정’ 3조 8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문제를 놓고 가톨릭은 전향적으로 변하는 데 한국교회는 왜 동성애에 대한 요지부동이냐는 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빈도가 많아질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동성애는 포용과 배척, 관용 대 응징, 또는 연민과 혐오로 나눌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신체나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을 배척하고 혐오한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다. 성경과 기독교 교리는 이들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돕고 감싸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는 전혀 다른 관점이다. 교황청이 동성애자에 대한 사제의 축복은 허용하면서 혼인성사를 금한 걸 보며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죄의 문제를 어떻게 이중 잣대로 타협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 어떤 죄인이라도 저주하거나 혐오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인간을 남과 여로 창조주하신 하나님이 금하신 죄악 행위를 교회가 무조건 감싸고 포용할 순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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