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자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고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우니라 하시니,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할 수 있느니라”(눅 18:18~27)

1.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진짜 성도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죄에서 멀어지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기 위해선 먼저 죄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실제로도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열심히 살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형편없는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을 크게 오해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지만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의 부자 관원처럼 살면서 자신이 이 정도 살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살아갑니다.

젊은 부자 관원은 예수님의 강설에 몹시 흥분했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저렇게 명확하게 설교하시는 분을 만나지 못했는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일거에 해소시키며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부자 관원은 속으로 나 정도면 저분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용기가 나서 군중 들 사이에서 일어나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보란 듯이 큰 소리로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에는 다분히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대개 교만한 학생들 중에 선생님을 향해 이렇게 질문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질문을 통해 자기 실력을 뽐내고자 하거나 자신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미 자기 스스로 답을 정해 놓고 그 답이 정답이라는 것을 선생의 입을 통해 확인받으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에 대해 우리 주님이 뭐라고 답변을 하십니까? 하나씩 살펴봅니다.

첫째, 주님은 자신을 선하다고 부르는 관원의 잘못을 지적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대답하십니다.

성경비판자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의 죄 없으심을 반박하십니다. 예수님 스스로 자신의 선하심과 신성을 부인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부자 관원은 자기 앞에 계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예수님이 단지 한 사람의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선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믿을 때 부자 관원은 제대로 호칭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자신만만한 태도로 나왔지만, 선에 대한 그의 이해는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서 선하신 이는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분이라면 예수님만이 선하신 분임을 알 것입니다.

둘째,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네 생각이 틀렸다”고 직접 교정해 주시지 않으시고 일련의 질문을 던져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 곧 십계명을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20절을 보세요.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들은 부자관원은 매우 실망한 것 같습니다. 뭔가 매우 심오한 진리를 말씀해 주시루줄 알았는데 유대인이라면 보통 랍비들로부터 늘 듣고 있는 십계명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보통 선생이라면 이와 같은 대답을 들으면 즉시 반격할 것입니다. “네가 나의 산상설교를 듣지 못했구나. 만약 그 설교를 들었다면 너는 지금까지 율법을 단 한 가지도 제대로 지킨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젊은이에게 그렇게 직설적으로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좀 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 청년의 요구에 대응하십니다. 예수님은 청년이 십계명을 다 지켰다는 당당한 자세를 두고 정말로 그가 그러한지 하나의 테스트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십계명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를 안다면 금방 이해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 관원에게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을 지킬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이 청년에게 가장 중요한 신은 ‘돈’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미 간파하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으로부터 뜻밖의 말씀을 들은 이 청년은 큰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는 큰 근심에 싸인 채 되돌아갔습니다.

그가 되돌아갔다는 것은 그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세상과 교회 안에 이 젊은 부자 관원같은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자신은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천국 가는 일에 별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청년은 물론이고 이 청년을 지켜보는 유대인들 같은 사람들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이들은 지금도 율법을 지켜서는 결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며 남들 보기에 바르게 사는 것을 우선적으로 행합니다. 남들 시선이 가지 않는 곳에선 제 마음대로 행하면서 남들 보는 곳에선 그럴 듯하게 위장하고 삽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살려고 하는 자는 율법에 의해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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