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신청한 남성이 병무청의 기각 결정에 맞서 소송을 냈지만 2심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이 남성은 자신이 ‘사회주의자’라며 대체역 신청을 했으나 병무청 심사위가 기각하자 행정법원에 심사위의 기각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었다.

이 남성은 지난 2020년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하며 “대한민국의 역사는 (내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랑하지 않는 존재를 목숨 바쳐 구할 의무가 없다”며 병무청 심사위에 대체역 편입 신청을 했다.

그러나 심사위는 이 남성의 대체역 편입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신념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지난 2021년 행정법원에 심사위의 기각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소송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형식적인 소송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본안에 대한 검토 없이 소송을 종료하는 결정이다. 당시 1심 재판부가 각하 결정을 내린 건 그 남성의 “양심이 분명한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사상과 가치관일 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헌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의 사상 실현의 자유까지 국방의 의무에 앞서 보호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1-3부(부장 이승한·심준보·김종호) 또한 1심의 각하 판결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가 1심의 각하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이유는 “원고의 사회주의 신념은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인 것으로서 대체역 신청의 이유가 되는 양심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한 판결문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어 “원고는 군대가 잘못 기능했던 과거의 역사만을 강조하면서 오늘날 변화한 현실과 국민의 생명 보호 등 군대의 긍정적인 측면은 외면하고 있다”라고 판시했다.

1,2심 재판부의 판단은 이 남성의 양심이 개인의 사상과 가치관이란 점을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헌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의 사상 실현의 자유까지 국방의 의무에 앞서 보호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건 개인의 사상과 가치관이라도 헌법 질서와 충돌할 시 보호받을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지난 3월 대법원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사회복무요원 근무를 ‘양심적 병역 거부’의 사유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병역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집총·군사훈련을 시키지 않는 사회복무요원을 거부하는 건 양심에 대한 본질적 침해가 아니라는 취지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17년엔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아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되기도 했다. 이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성 소수자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성 소수자를 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인정한 건 ‘양심의 자유’에 대한 지나치게 자의적 해석이란 논란을 낳았다.

한국에서 병역 문제만큼 뜨거운 화두도 드물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양심, 종교 등 다양한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차갑게 만든 측면이 없지 않다.

지난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런 뜨거운 논란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이어 11월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놓고, 2019년 12월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2020년 10월 첫 대체복무가 시작됐다.

그런데 헌재가 총대를 메 어렵게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린 대체복무제가 시간이 갈수록 논란을 더 하며 그 의미와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 종교적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 평화적 신념 등 다양한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개인의 양심과 신념을 법이 어디까지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로 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가 개인의 양심과 신념의 자유를 헌법적 가치로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헌법에 19조에 ‘모든 국민은 양심(신념)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양심과 신념은 존중됨이 마땅하지만, 그것이 절대 가치인가 하는 점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런 점에서 “헌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의 사상 실현의 자유까지 국방의 의무에 앞서 보호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재판부의 판단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핵심은 여호와의 신도든 성 소수자든 대체복무제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이번 판결이 아무리 개인의 신념과 사상이라도 헌법의 질서 안에서 발현되어야 하며, 국민이 나라를 위해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 또한 신성한 국민의 도리임을 다시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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