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다국적 기업인 '러쉬'라는 화장품 회사가 '우리는 모든 사랑을 지지합니다'는 카피를 가지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행사를 벌였다. 아마도 '모든 사랑을 지지한다'는 말에 반감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사랑'에 대해서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낭만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첫눈에 반한 사랑', '운명 같은 사랑'이란 표현처럼,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랑이 어디로부터 주어지는 듯한 표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도, 사실은 여타의 감정들과 같이 사실인식과 가치판단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소속 한 학부모가 12일 러쉬 코리아 강남점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동성애 옹오·조장 러쉬코리아 OUT"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자료사진

과거에 읽었던 고민상담 글 하나가 생각난다. 그것은 자신의 학교 선생님을 이성(異性)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한 고등학생의 고민을 듣고 답변한 한 상담가의 글이었다. 과연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주는지 궁금한 마음에 주의 깊게 읽어서 아직도 그 상담의 내용이 기억난다.

상담사의 대답은 이러했다. "사랑은 감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이성(理性)이 함께 작용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어렸을 때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다시 가 보았는가? 어린 시절, 그토록 넓어보이던 운동장이 너무나 좁아보여서 깜짝 놀라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초등학생 시절에 세상을 바라보던 우리의 인식력과 사고력이 세월이 지나면서 발달했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을 보는 인식력과 사고력의 수준이 성장하는 시기에 감정만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선 안 되는 일들이 많다."

이렇듯, 한 사람의 이성(理性)적 능력이 성인의 수준으로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선택과 결정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기에 우리 사회는, 일반적으로, 미성년자의 결혼에 제한을 두고, 미성년자의 범죄를 성인의 그것과 다르게 처리한다. 이러한 논리는 성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냐고,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강제하고 조절할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은 사랑의 한쪽 면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오래 전에 만들어진 '크라잉 게임'(The Crying Game, 1992)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내용은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게 된 한 남자 주인공이 결국 그 여자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반전이 있는 영화이다. 과연 나라면 어떠할까? 내가 깊이 사랑한 여자(혹은 남자)가 실상은 나와 동성이었다면, 나에게 존재했던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영화 '크라잉 게임'(The Crying Game, 1992)의 한 장면   ©영화 스틸 컷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몇 해 전 해외에서까지 호평을 받으며 흥행을 거두었던, '올드 보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아버지가 자신과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 자신의 딸과 성적인 관계를 나누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물론 아버지는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자신의 친 딸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 사실을 안 후에는 너무나 괴로워했다. 주인공의 이러한 반응은 단지 영화 속 주인공만이 갖게 되는 반응인가? 아니면 내가 그 상황에 있다면 나에게도 일어나는 반응인가? 딸을 이성(異性)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삼은 주인공의 감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영화 '올드보이'의 한 장면   ©영화 스틸 컷

사랑에 대해서, 감정만을 강조하는 사람이라면 위의 두 사례에 대한 대답은 같아야 한다. 첫 번째 사례에서, 사랑의 감정에만 집중해서 잘못된 사실 인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같은 논리로 두 번째 사례의 사랑의 감정도 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랑하기만 한다면'을 전제로 여자, 남자의 인식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면, 같은 논리로 '사랑한다면 딸인지, 그냥 여자인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예시에 나오는 사랑의 감정에 찬성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감정을 느낄 뿐만 아니라 이성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근친간의 사랑은 부도덕하다는 가치 판단으로 감정이 통제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만약 감정만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동성을 사랑하든, 아버지가 딸을, 남매가 서로를 사랑하든,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사랑하든, 심지어 사람이 짐승을 사랑하든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인간의 사랑은 감정과 함께 이성적 사실 인식과 가치 판단이 병행된다.

사실, 대중들은 합리적인 사실보다는 감성적인 호소에 더욱 크게 반응한다. 동성애 옹호자들이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는 감성적인 문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는 이미 사랑의 감정만으로 모든 종류의 사랑을 긍정하지 않고 있다. 일부다처나 다부일처, 근친상간뿐만 아니라, 소아성애, 유부남(녀)의 불륜 등도 사랑의 감정이 개입됨에도 불구하고, 비윤리적이라는 가치 판단 하에 비난하고 회피하고 있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랑이 지지받을 수는 없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 '쌍화점'의 한 장면   ©영화 스틸 컷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뜨거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감정에 편중하여 사랑을 해석하려 한다면, 동성애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상관없이 앞에서 언급한 모든 종류의 사랑들이 우리들의 이성과 양심, 그리고 도덕에 도전해 올 것이다.

■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건사연)는 많은 독소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로, 동성애 및 동성결혼, 종교 및 표현의 자유 문제 등 차별금지법과 관련하여 다루고 있다. 블로그 바로가기 

※ 사외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건사연 #건사연칼럼 #동성애옹호 #동성애옹호자 #러쉬코리아 #동성애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