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야제에 이방인의 잔치에 한국인이 초대되었다. 이들은 한국의 승리와 안정과 번영을 위해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하고, 믿음을 잃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부족한 결핍의 시대에 헐벗고 굶주리는 전쟁 속에서 무엇이든 손에 잡고 입에 넣어야만 죽지 않았다. 그러나 중공군이 연속적으로 퍼붓는 대공세에 서울을 다시 내주는 1.4 후퇴 속에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로 인.. [안보칼럼㊸] 6.25 한국전쟁의 진실, 후방전쟁(1)
1950년 6월 28일 전쟁 3일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공산군이 점령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세상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인민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새카맣게 몰려왔다. 서울 시민들은 너무나 당황하고 공포에 젖어서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다. 강요된 사상과 절박한 현실이 시민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숨어있던 공산주의자가 활개 치며 나타나고 경찰, 군인, 공무원 가족은 숨고 .. [안보칼럼㊷] 6.25 한국전쟁의 진실, 휴전협상(2)
제3차 세계대전을 염려하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는 한국전쟁이 속히 끝나기를 바라면서 1951년 9월 17일 오타와에서 북대서양(12개국) 기구회의를 했다. 주요의제는 첫째 ‘서방의 군사력 증강을 위해서 이탈리아에 군사를 재무장한다’, 둘째 ‘그리스와 터키를 나토에 가입시킨다’는 것이었다. 유럽이 자체적으로 안보협력을 강화하자는 의도였다. 한국전쟁이 깊어지자, 미국은 일본과 평화조약을 .. [안보칼럼㊶] 6.25 한국전쟁의 진실, 휴전협상(1)
1951년 6월 전선의 길고도 지루한 장마가 찾아왔다. 전쟁이 시작된 지 꼭 1년이 되었다. 양측은 3.8선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양측의 군사 지도부는 무력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양측 모두 협상을 원하고 시도한다. 소련 유엔 주재 말리크 대사는 유엔군에게 1951년 6월 23일 휴전을 제의한다. 모스크바는 북한 지원의 한계를 느끼며 3차 세계대전의 확산을 염려한다.. [안보칼럼㊵] 6.25 한국전쟁의 진실, 또 다른 전쟁(2)
흥남부두 외곽지대에 숨어있던 북한의 피난민 10만여 명은 육로로의 피난길이 끊겼다. 미 해병은 2주간 인민군의 공격을 저지하면서 후퇴하는 미군을 결사적으로 따라갔다. 피난민 속에 적군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에 피난민들을 부대 후미에서부터 100m 거리를 유지하게 한다. 유엔군은 미 10군단과 국군 3군단의 10만 3천 병력과 수많은 장비와 전투 물자를 수송해야 했다. 하지만 피난민의 생명을 구.. [안보칼럼㊴] 6.25 한국전쟁의 진실, 또 다른 전쟁(1)
1950년 10월 1일 서부의 국군1사단과 동부의 국군3사단이 3.8선을 돌파했다. 맥아더 장군은 이날 대만에 직접 가서 장개석(장제스)을 만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날 건국 1주년 행사를 하여 항미원조를 강조한다.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자는 중공군의 구호이다. 모택동(마오쩌둥)은 자신의 화려한 데뷔를 위해서 미국과의 일전을 선포한다. 주은래(저우언라이)는 전쟁이 나면 미 공군이 만주와 .. [안보칼럼㊳] 6.25 한국전쟁의 진실, 북진(2)
서울은 비참한 전쟁의 잔해가 폐허처럼 흩어져 있다. 심각한 문제는 외부의 파괴보다 내부의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이다. 시민들은 인민공화국의 90일간의 서울 치하에서 남과 북을 직접 비교 체험한다.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통치방식을 비교한 것이.. [안보칼럼㊲] 6.25 한국전쟁의 진실, 북진(1)
1950년 8월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낙동강 전선. 유학산에서 피아의 시체가 부풀어 오르다가 펑하고 터진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핏물이 강을 이룬다는 시산혈하의 혈투 현장이다. 북은 7월 31일과 8월 30일, 전 병력과 장비를 투입하고 총공세를 실시한다. 미8군은 너무나 힘들.. [안보칼럼㊱] 6.25 한국전쟁의 진실, 폭풍(2)
맥아더는 횡설수설하는 채 총장의 전시 보고를 불쾌해하며 한국군의 수준은 전투 병력이 아니라 경비대 수준이며 해산 직전의 군대라고 탄식한다. 1950년 7월 1일 채병덕 총장이 해임되고 미국에서 교육 중이던 33세의 정일권이 육군총장으로 취임한다. 동경의 맥아더는 워커 8군단장을 통해서 오키나와의 딘에게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라고 명령한다... [안보칼럼㉟] 6.25 한국전쟁의 진실, 폭풍(1)
김일성은 북한을 단기간에 소비에트 식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비밀리에 2년여 동안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드디어 1950년 6월 25일 새벽, 암호명 ‘폭풍’이 3.8선 전역에 하달되었다. 이들은 침략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7월 31일까지 부산을 점령하고, 8월 15일.. [안보칼럼㉞] 6.25의 진실, 전쟁의 시그널(2)
1949년 6월 30일을 미국 정부는 미군 철수 만료 시점으로 잡았다. 미 합참의장은 남한도, 대만도, 아시아에 줄 전비가 없다고 했다. 대통령(트루먼)은 선거를 앞두고 전쟁터의 아들들을 가정으로 보내겠.. [안보칼럼㉝] 6.25의 진실, 전쟁의 시그널(1)
1948년 가을, 북한 김일성의 북한노동당은 도전 세력을 모두 숙청하고 몰아내고 물리쳤다. 그리고 소비에트식 공산정권을 수립했다. 모든 농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으로 지원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