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철홍 교수
    이승만의 기독교 정치사상의 구조
    우남은 1904년 11월 『신학월보』에 쓴 글에서 “… 이 나라를 예수그리스도의 나라를 만들기로 힘써 일들 하십시다” 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우남의 ‘기독교 입국론’이 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우남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 정교일치의 국가가 아니라, 기독교를 국민 교화의 근본으로 삼는 세속국가였다.” 한성감옥에 있을 때부터 우남은 정치와 교회를 구별하여..
  • 김철홍 교수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개종의 특징
    우남의 옥중 개종을 볼 때 첫 번째 특징은 그의 개종은 상당 기간에 걸친 점진적(progressive) 개종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장소에서 발생한 급격한(radical) 개종에 더 가깝다는 점이다. 이런 급격한 개종의 경우에는 과거에 자신이 갖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이 급격하게 긍정적으로 바뀌고, 과거의 자신을 자서전적으로 부정하고(autobiographical denial of t..
  • 김철홍 교수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개종과 기독교가 그의 정치사상에 준 영향(3)
    우남이 ‘오 하나님, 나의 영혼을 구해주시옵소서. 오 하나님, 우리나라를 구해주옵소서!’라는 기도를 자신의 입으로 했을 때, 그는 절대자인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대로 죽으면 자신의 죄와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영혼을 구해주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남은 절대자와 일대일의 대면을 한 것으로 볼 수..
  • 김철홍 교수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개종과 기독교가 그의 정치사상에 준 영향(2)
    우남은 박영효와 공모해서 고종을 폐위시키고 공화정부를 세우려 했다는 ‘대역죄’로 1899년 1월 9일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사실 우남은 박영효 사건의 주변인물에 불과했으며, 박영효가 파견한 행동대의 이규완(李圭完)을 만난 적이 있다는 것뿐 추가의 혐의는 없었다. 만약 우남이 탈옥을 시도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더라면 무혐의로 석방되었거나, 비교적 짧은 기간 후에 석방되었을 것이다. 아펜젤러는 “..
  • 김철홍 교수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개종과 기독교가 그의 정치사상에 준 영향(1)
    1945년 11월 28일 조선기독교남부대회 주최로 ‘임시정부 요인 환영대회’가 열렸을 때 우남(雩南) 이승만은 “만세반석 되시는 그리스도 위에 이 나라를 세우자”고 말했다. 기독교를 기초로 하는 국가건설은 해방 이후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떠오른 생각이 아니었다. 우남은 1899년 기독교로 개종한 이래 줄곧 독립 이후 등장할 신생 국가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런..
  • 건국전쟁
    이승만은 왜 기독교 기반으로 국가 세우고자 했나?
    김철홍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신약학)가 10일 서울 서현교회 교육관에서 열린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제316회 월례세미나에서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개종과 기독교가 그의 정치사상에 준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 김철홍 교수
    김철홍 교수 “尹 대통령 계엄은 비상벨… 그와 함께 싸울 것”
    장로회신학대학교 김철홍 교수(신약신학)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를 통해 그의 충정을 느꼈다”며 “그가 이기든 지든 함께 싸울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최근 비상계엄 사태와 이후 시국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종복 반국가세력’을 언급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는 진심으로 대한민국의 위기를 우리에게 알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