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ㅣ금천교회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기독일보=이선규 목사] 지난 년 말에 스위스 융프라우 산맥 정상에 가서 겨울 전경을 바 라 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눈앞에 전개되는 설경은 참으로 신비로운 모습 이었습니다. 그 설경을 보는 맛도 좋았지만 그 보다도 요즘 봄이 되어 산과들에 파란 생명이 되 살아나고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고 봉 첩이 춤을 추는 광경은 더욱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죽은듯한 겨울 보다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더 아름답고 좋습니다.

그와 같이 인생도 늙어가는 것보다 그 생명이 날마다 새로워 져서 젊어져 간다면 그 얼마나 아름답겠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날마다 달마다 새롭게 변화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웃지 못하던 아이가 웃고 기지 못하던 아이가 기고 걷지 못하던 아이가 걷고 뛰지 못하던 아이가 뛰고 말을 못하던 아이가 말을 하고 글을 모르던 아이가 글을 알게 될 때 얼마나 신기 합니까?

그러다가 젊음이 쇠퇴하고 겉 사람이 늙어 갈 때 순전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늙어지면 전도서 12:3절의 말씀 같이 비참해 집니다.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던 자들이 떨 것이며 '즉 손이 떨린 다는 말입니다. 힘 있는 자들은 구부러질 것이며 즉 다리와 등이 구부러진다는 말입니다.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어질 것이며 즉 이빨이 빠진다는 말입니다.

창틀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 질 것이며 즉 눈이 어두워진다는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 이요 즉 머리가 호호 백발이 된다는 뜻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즉 그만큼 기력이 약해 질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즉 모든 욕망이 그쳐진 다는 뜻입니다. 인생이 늙어지면 이렇게 됩니다.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인생이 늙는다는 것을 좋아 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인생은 누구나 좋든지 이 길을 거쳐야 합니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보약을 복용해도 사람은 늙어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늙어가야 할 인생이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가지고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 곧 예수님의 생명을 영접해 드리는데 있습니다.

요한1서 5:12 '아들이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기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 곧 예수님의 생명은 영원히 늙지 않고 변하지 않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면 영원한 젊음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 사람은 성령의 에너지가 그 속에 내재해 있어서 새로운 힘을 공급해주며 새로운 생명의 운동을 일으키며 옛 사람의 낡은 성품 낡은 습성 낡은 사고방식은 추방되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 영적으로 심적으로 젊어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를 분석해 보면 낙심 할 수밖에 없고 절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현대인들의 영성이 황폐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겉 사람이 후패 하여 진다고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속사람 까지도 후패해 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썩어지고 쇠태 해가는 영성을 방심한 채 세속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또한 눈앞의 영광만 추구하는 한탕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현대인들에게 "내일의 영광" 같은 말은 흥미 없을 뿐 아니라 내세의 영광 같은 것은 더욱 매력 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순간적인 향락과 감각 적이고 충동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땀 흘리며 수고하는 성실성이 메말라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현대인 들은 자기중심 적이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허물어 버리고 인간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소홀히 합니다. 그래서 과학주의, 합리주의, 인본주의, 사상위에 현대 문명을 건설하여 하나님의 위상과 존재를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바울은 겉 사람과 관계되는 모든 것이 쇠퇴 한다고 단언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쇠퇴하고 종내에는 반드시 소멸 되고 맙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구의 종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이 땅에는 영존한 것은 없습니다.

마찬 가지로 모든 인간의 육체는 반드시 노쇠하고 죽으며 썩어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고목나무를 의지 하거나 거기에 궁극적인 희망을 걸고 매달리다가 썩은 고목과 썩은 인생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은 육신과 관계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것이지 삶의 목표는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썩을 것을 추구하지 말고 썩지 않고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을 추구하며 살 으라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이 영원 자이신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맺으면 영원한 생명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과 정의와 평화 등의 정신을 받아서 날마다 새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해서 자신이 날마다 새로워 질 뿐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되는 모든 것은 썩지 아니하고 날마다 새로워 질 뿐입니다.

2, 보이지 않는 것을 돌아보며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살 때 영원한 젊음에서 살 수 있습니다.

고후 4:18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 함이니라". 이것은 인생을 보다 깊이 사는 생활 입니다.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세계 보이는 것들만을 위해 몰두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인생을 너무 얕게 사는 생활 입니다.

보십시오. 이 보이는 세계에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또 소망 있다면 얼마나 오래 갑니까?

사람이 사는 세계는 어디나 부정부패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또 어디나 중상, 모략 싸움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정부패 어디를 보아도 썩은 데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이러다가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지구상에는 피난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를 믿고 산다는 것도 헛수고입니다.앞으로 지하자원이 고갈 될 때가 멀지 않다고 합니다.

이 보이는 세상은 장차 주님 앞에 심판 받을 세상 이므로 소망이 많지 못합니다.

또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잠간일 뿐입니다.

청춘도 잠간이요 아들딸을 낳아 애지중지 하는 것도 잠간입니다. 장성하면 제비와 같이 다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얻었다는 것도 잠간이요 권세와 지위를 가졌다는 것도 잠간 입니다.

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잠간입니다.

이 잠간의 것들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 보았자 잠간의 것들이 없어 질 때 소망도 산산 조각이 나고 소망이 깨질 때 그 겉 사람도 겉잡을 수없이 시들고 마르며 그 육적 사람은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 에에 빠져 버리고 마지막에는 환멸과 허무에 사로 잡혀 병들고 쇠퇴하고 절망의 사람으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이 얼마나 슬픈 사실입니까?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돌아보며 사는 사람은 영원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기독교는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 관심을 집중해서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사는 종교 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왕국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 영생의 복락과 그 영광 이것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 보이지 않는 세계와 그 세계 안에 있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영원한 젊음에서 사는 자인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순간 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기도 합니다. 시험을 당하기도 합니다.

환란과 고난도 당합니다. 그러나 영적 사람 속사람은 언제나 싱싱하게 영원한 젊음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고난과 영화는 잠간 동안 있다가 시들어 버리는 풀이나 채소같이 쉽게 마르고 꽃과 같이 쉽게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해산하는 여인은 진통하는 아픔이 있지만 아이를 얻는 기쁨을 생각하기 때문에 고난을 쉽게 이 길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결론적인 말씀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 우리의 관심사 우리의 생각하는 것 그 것은 언제나 영원한 세계에 있고 또 보이지 않는 것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나팔 통 소망을 가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소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중학교에 다닐 소망 또 고등학교 그리고 결혼을 하고 출세를 생각 할 때 까지는 소망이 굉장한 듯합니다.

그러다가 차츰 50, 60, 70 이 넘으면 무엇을 바라 볼 수 있습니까? 그 후에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점 점 소망이 작아지다가 죽으면 아주 없어지는 소망이 보습 끝 소망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소망은 얼마나 넓어집니까?

우리도 불신자와 똑같이 살다가 예수를 믿습니다. 믿음으로 일하고 충성하고 사명을 감당 합니다

그러다가 죽습니다. 마침내는 부활하신 주님과 만나 천년 왕국에서 왕 노릇 합니다. 그러니까? 나팔 통 소망입니다.

우리는 나팔 통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역경 중에도 항상 기쁘지 않을 수 없고 항상 보람을 유지하게 되어 지며 또 소망은 영원하기 때문에 영원한 젊음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두 날 뿐입니다. 하나는 오늘이요. 그 날입니다.

오늘은 그날을 준비하는 날이요 그 날은 오늘의 의미를 부여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상실한 자는 현재의 세계도 잃어버립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 지 않는 것은 영원 함이니라.

설교ㅣ이선규 목사(금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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