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요 3:9-21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사흘 동안 주께서 베푸신 하늘의 잔치가 끝났습니다.
복음과 생명의 말씀 앞에 자신을 드리며 조국의 영혼들에게 은과 금이 아닌 아들의 생명을 전하기를 열망하는 현지인들을 생각하니 감격의 기운이 가시지 않습니다.
이제 마다가스카르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출발하는 날입니다.
하온데 어젯밤부터 생긴 허리통증으로 인해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곤고합니다.
주여, 보배로운 복음을 전했으나 저는 영혼과 육체가 질그릇 같아 형편없는 자입니다.
내 영혼을 보혈로 씻어 정결하게 하소서. 내게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소서.
복음의 빚진 자 되어 그 빚을 갚았으니, 무익한 종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오니 영육이 고단한 이 자리가 주의 성소가 되게 하소서.
창세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예수께서는 친히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아신다(2:25).
니고데모가 그에게 나왔을 때에도 그의 속에 있는 것을 다 아셨다.
니고데모는 '백성의 정복자'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종교적, 정치적, 학문적, 경제적 성취의 정상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여전히 어둠이었다.
화려한 무화과 잎으로 치장한 그의 이면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갈망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반드시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이다(You must be born again)(8절).

이에 대해 니고데모는 이렇게 반문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9절).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일을 알지 못하느냐?(10절).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보는 것을 증거하나 너희는 우리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11절).
내가 땅의 일을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한다면 어떻게 믿겠느냐?(12절).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13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14절).
그것은 그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15절).
하나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16절).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다(17절).
아들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으나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18절).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18절).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빛이 세상이 들어왔건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했다는 것을 뜻한다(19절).
악을 행하는 자는 누구나 빛을 싫어하며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실이 드러나 두려워하기 때문이다(20절).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되어졌다는 것이 밝혀지도록 하는 것이다(21절).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아들에게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주셨다(5:26).
이 생명이 아들 안에 있게 되었다(1:4).
아들은 아버지께 복종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였다(15:10).
이 사랑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영광, 곧 본질의 계시로 나타났다(17:24).

하나님께서는 역시 창세전에 이 생명을 사람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딛 1:2).
하나님의 아들은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창세전에 미리 정한 바 되셨다(벧전 1:20).
하나님께서는 비록 아담이 범법하여 불의하게 되었으나 아들의 생명을 주시기로 한 약속에 신실하시다.
그리하여 여자의 후손과 가죽옷으로 아들을 예표하셨다(창 3:15, 21).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아들에 관하여 (구약)성경에 미리 약속하셨다(롬 1:2).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이며 그 목적은 아들의 생명, 곧 영생을 얻는 데에 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5:39).

그런데 니고데모가 누구인가?
그는 위대하고 보편적으로 인정받은 이스라엘의 선생이 아닌가?
그는 구약성경에 정통한 랍비가 아닌가?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선생으로서 누구보다 구약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와 영원한 생명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위로부터 태어나는 생명, 곧 영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 선생이면서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도 니고데모와 같은 선생들이 허다하다.
구약성경은 물론 신약성경까지 통달한 자라도 영생에 대해 알지 못한다.
유명하다는 목사들, 심지어 성경박사를 자처하는 신학자들에게도 영생은 감추어져 있다.
이는 계시로 아는 비밀이며, 영으로 아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아는 자가 진실로 복되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6-17).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계속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말하건대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한다.
그런데 너희가 우리의 증거를 받지 아니한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와 사도 요한 당시 그의 교회를 모두 가리킨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한 영생의 진리를 들었고 보았고 전하였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이제 예수께서는 니고데모 한 사람이 아닌, '너희가'라고 하여 유대 공동체 전체를 지칭한다.
하늘의 일은 창세전, 태초에 있는 일이다. 그것을 아는 것은 "태초에 계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요일 2:13).
그 일은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며 영광중에 거하였던 일이다(17:5).
이는 모든 진리의 기원이 되며, 땅의 일은 그것의 그림자이다.
특별히 여기서 말하는 땅의 일은 아들을 통해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인자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요, 하늘로 올라가는 자이다.
그는 다니엘서에 예표 되었으며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이 그에게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주셔서 영원한 나라를 세우게 하신다(단 7:13-14).
그는 천상의 영역과 지상의 영역 사이를 연결하신다.
그가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며, 그가 하늘로 올라가신 것은 우리를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시기 위함이다(요 14:2-3).

인자는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땅에서 들리운다.
이는 그가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며, 그 때에 모든 사람을 그리로 이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12:32).

이는 그를 믿는 자, 곧 그의 죽음 안에 거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영원한 생명은 공관복음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와 동일한 개념이다(눅 18:18, 24).
영생의 본질은 하나님과 그 아들과의 사귐이며(17:3), 이는 하나님 나라를 선취한다(요일 1:3).

하나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여기서 '세상'은 '모든 사람'을 뜻한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은 모든 사람에 대한 그의 사랑의 결과이다.
그것은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약속하신 자신의 뜻을 성취하신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모든 사람)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다.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구원으로 칭한다.
(구원 - 요한복음에서 6회, 공관복음에서 45회/ 영생(생명) - 요한복음에서 35회, 공관복음에서 16회).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심판하러 오셨다고도 말씀한다.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5:2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9:39).

이는 모순처럼 보이나, 심판의 의미를 밝혀준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를 믿는 자는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그 생명 안에 거하는 자이다.

또한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이 부재하며 그 생명 밖에 있는 자이다.
그는 그 자체로 이미 심판을 받은 자이다.
여기서 '심판을 받다'는 완료시제로 되어 있어,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빛이 세상에 왔으나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다.
그들은 실로 악을 행하는 자이며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는다.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하여 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을 믿어 영생 안에 거하는 자는 진리를 따르는 자이다.
그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되어지는 것을 나타낸다.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함으로 아버지께서 자기 일을 행하시는 것을 증거한다(14:10).
그래서 그의 모든 행위는 그 기원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 있음을 나타낸다.

4. 나의 묵상
나는 스스로 성경에 정통하다고 자부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나는 마치 이스라엘 선생 니고데모와 같은 자였다.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설교를 수없이 했으나 영생에 대해서 무지한 자였던 것이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땅의 일은 관념으로 알았을 뿐이다.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 자였다.
그러니 어찌 하늘의 일인 태초, 창세전, 아들과 아버지, 생명, 창세전 약속된 생명을 알 리가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는 도구요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말씀을 이용하여 내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예컨대 '렘 33:2' 말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이 말씀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고, 그래서 '네게 보이리라'는 말씀은 예레미야를 지칭하여 하는 말씀이다.
그에게 새 언약의 성취자로 다윗의 가지에서 오실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이다(렘 33:15).
그런데 이 말씀을 '기도응답의 주문'으로 외쳤던 것이다.

어제 마다가스카르 현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이 말을 나누었다.
한국교회에서는 새 언약의 성취에 대한 이 말씀을 기도응답의 전용구로 이용한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들끼리 수군수군하였다. 후에 보니 그들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신학교에서 이 구절을 암송구절로 정해 외우게 한다고도 하였다.

영생의 부재는 곧 심판이다.
영생을 알기까지 나의 인생, 신앙, 사역은 심판의 대상이었다.
나의 전 생애는 심판 중에 계속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심판이 임하였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심판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무덤에 연합되어 전 생애가 죽고 전 생애가 심판받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들의 생명으로 태어났다.
날마다 영원한 생명 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내가 행한 모든 일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드러냈다.

오늘 마다가스카르 사역을 마치고 한국으로 출발한다.
많은 사역과 일들이 있었으나 가장 감사한 일은 이것이다.
그것은 날마다 새벽 3-4시경 일어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한 것이다.
주의 성실하심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영원한 생명 안에 머물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놀랍고도 크신 일을 이루셨다.

연초 한인교회 복음생명 세미나에 현지 선교사님들이 대부분 참석하였다.
선교사님들 사역 자체가 분망하여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들은 처음(?) 듣는 복음과 생명의 진리에 압도되었고 무너졌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선교를 한 어떤 이들은 현지인들에게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어 고민하다 못해 탈진한 상태에 있었다.

이들이 이 복음을 듣고 뜨겁게 반응하였다.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에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인 것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 선교단체 선교사님이 현지인들을 위한 캠프를 요청했고, 그 소식을 듣고 다른 네 곳의 선교단체 선교사님들도 자기에게 속한 현지인들을 보내 복음과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였던 것이다.

현지인 캠프는 매시간 감동과 눈물의 시간이었다.
성경이 증거하는 온전한 복음, 생명의 말씀 앞에 이들은 감격하며 오열하였다.
가난과 질고에 갇힌 동족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을 주어 그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감격한 것이었다.
특히 중추적인 리더십들이 더욱 그러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초대교회 상황을 나누었다.
이들은 지금의 마다가스카르 사람들보다 더욱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
이들은 마다 사람들이 수시로 볼 수 있는 저 푸르고 맑은 하늘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카타콤에서 평생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들의 생명이 있었고 그로 인한 풍성한 삶이 있었다.
그들은 영생의 공동체를 이루어 그들 안에는 하늘의 기쁨이 충만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땅에 정말 필요한 것은 아들의 생명이라고 호소하였다.
은과 금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생을 살며 영생의 소식을 전하기로 결단하였다.

3중 통역을 했으나 진리는 선명하게 전해졌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과 생명의 진리는 종족과 나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진리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하게 되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오랫동안 수고하여 뿌린 씨앗, 하나님의 때가 되어 거저 거두었다.
그리고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4:36-37).

복음의 빚진 자, 그 빚을 아주 조금 갚았다. 빚을 갚는 일은 마땅한 일!
무익한 종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 시간, 내가 행한 모든 일은 하나님 안에서 되어진 일임을 고백한다.
평생 생명 없이 악을 행하던 자, 진리를 따라 빛으로 나오게 하시고,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나이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참으로 니고데모 같은 자였습니다.
자칭 성경박사를 자부하였으나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고 아들을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까?
위로부터 태어나는 땅의 일에도 무지하였는데 어찌 하늘의 일을 알았겠습니까?
무지와 맹신 속에서 사망의 길을 가던 자였습니다.

오, 아버지...
영생의 부재 속에서 신앙하고 목회한 자, 심판만이 합당했습니다.
그런 자를 당신의 공의로 심판하셨나이다.
그런데 그 심판은 아들의 생명으로 이끄시는 심판이었습니다.
아들의 죽음과 무덤에서 전 생애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태어나는 생명을 주시고 하늘의 일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알지 못한 자를 위해 주신 은혜입니다.
종은 진실로 복음의 빚진 자 이옵니다.

아버지...
이곳 마다가스카르에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날마다 말씀으로 이끄신 은혜를 찬양하나이다.
영원한 생명 안에 거하게 하시고 친히 내 속에서 당신의 일을 하신 은혜를 찬양하나이다.
상황적으로 보면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땅, 이곳에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예비된 당신의 백성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주여, 저들이 날마다 영생 안에 거하여 이 땅에 큰 빛이 되게 하소서.
하늘의 생명을 가지신 아들이 흑암과 사망의 땅에 가서 사시니 큰 빛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모든 일이 당신 안에서 이루어졌나이다. 종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무익한 종이옵니다.
영광을 받으소서. 당신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서 목사는 하나님의 검증을 마친 영적지도자다.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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