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재 교수(이화여자대학교)

[기독일보=평화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비폭력 평화사상은 인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인간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려온 동물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폭력적인 삶을 살면서 평화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선이다.

믿기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500억 마리의 동물이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물고기를 빼면 매년 250억 마리의 동물이 인간의 음식이 되기 위해 죽고, 매년 4천 만 마리의 동물이 모피가 되기 위해 죽는다. 먹고 입는 것만이 아니다. 다음 제품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라. 살충제, 표백제, 교회 초, 탈모제, 눈 메이크업, 잉크, 선탠오일, 손톱 광택제, 마스카라, 헤어스프레이... 모두 동물을 이용한 독성실험을 거친 것들이다. 이 정도의 동물실험은 불가피하지 않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동물실험의 제목들을 숙고해보라. 쥐를 33일간 잠재우지 않기(시카고대학), 생후 10일 된 새끼고양이 양 눈을 꿰매 시력상실의 영향에 대해 관찰하기(옥스퍼드대학), 생쥐의 두뇌에 헤르페스 바이러스 주사하기(케임브리지대학), 어미 뱃속에 있는 새끼 돼지 태아의 목을 자르고 그것이 임신한 암퇘지의 인체화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기(미 농무부), 비글이라는 사냥개에 플루토늄 주사하기(하버드대학).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한 모든 인간은 나치다." 세계적인 동물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말이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0년 11월 안동에서 시작한 구제역(口蹄疫)은 곧장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불과 몇 달 사이에 우리는 도합 600만 마리의 가축들을 산 채로 땅에 묻으며 한국판 '아우슈비츠'를 연출했다. 자연 상태에서는 구제역에 걸린 가축의 50-90%가 스스로 치유하고 벌떡 일어서는데, 우리는 갓 태어난 새끼부터 갓 출산한 어미까지 그날 한꺼번에 땅에 묻어버렸다.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벌인가 /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악인가 / 아니 사람으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죄인가... / 미안하다 용서하라 잘 가라." 임옥상은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글에서 당시 죽어간 숱한 생명들에게 이렇게 용서를 구했다. 그 날 산 채로 땅에 파묻혀 울부짖던 돼지들의 울음소리에서 우리는 그 옛날 아벨의 핏소리를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9)고 물으셨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네 동료 피조물들을 어디다 파묻었느냐"고 물으실 것이다.

동물학대는 몇몇 개인의 병리적 현상이 아니다. 동물에 대한 폭력과 학대는 사회적으로 합법화되고 제도화된 조직적 폭력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의도적인 무지' 속에서 일어난다. 간디는 이렇게 물었다. "왜 사람들은 건물이나 예술작품과 같은 인간의 창조물을 파괴하면 '야만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신의 창조물을 파괴하면 '진보'라고 치부하는가?"

그렇다. 동물은 우리의 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료 피조물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아직도 동물학대의 문제를 신앙의 문제, 평화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복음은 '인간에게만' 복음이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뿐만 아니라 창조세계의 모든 생명, 특히 인간에 의해 오랫동안 학대 받아온 동물들에게도 기쁜 소식, 평화의 소식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의 구원자가 오직 인간만을 위해 죽었다고 주장하는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사랑과 생명구원 정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구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구약제사에 의해 희생되어 오던 동물들의 고통을 그치게 한 사건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는 도덕적 지평의 확대의 역사다. 도덕적 배려와 책임이 여성으로, 흑인으로, 가난한 사람으로, 장애인으로, 그리고 동성애자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그것은 지구라는 이 행성 위에 우리와 함께 살면서 인간의 폭정과 학대에 시달리는,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동물들에게까지도 확장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모든 생명의 아름다움에 경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영성이고 비폭력 평화사상의 요체다. 우리 아이들을 그런 영성을 가진 '슬기로운 흙덩이'(homo sapience)로 키워야 한다.

글ㅣ장윤재 교수(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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