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통해 좋은 걸 전해 드리면 그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북촌 방향'에서 1인 2역을 소화한 여배우 김보경의 말이다.

"한때 영화배우를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꾸준하게 스크린 나들이를 하는 김보경을 최근 서울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는 오는 8일 개봉한다.

"홍 감독님의 영화는 재미있게 봤어요. 감독님이 제안할 때 상황이 맞았고, 마음에 걸리는 게 없었어요. 돈요? 돈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빠듯한 제작비 때문에 의상까지 현장에 가지고 가야 했다. 홍상수 감독은 '이런 스타일을 입고 오라'며 의상을 정해주기도 했다.

"감독님이 의상을 정해주셨어요. 비슷한 걸 몇 벌 가져가면 그중에서 선택해 주셨죠. 코트에 셔츠까지 다양했죠. 색깔별로 가져갔는데, 결국 나온 건 흑백이더군요." (웃음)

실전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홍상수 감독은 당일 아침 대본을 써 배우들에게 배포하는 '쪽대본'으로 유명하다. 배우들은 연습할 시간조차 없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대사를 해도 안된다. 토씨 하나까지 정확하게 내뱉어야 한다. 성준 역을 맡은 유준상은 같은 장면을 50번이나 반복 촬영했다.

김보경은 "오랜만에 촬영하는 게 일단 좋았고, 당일 나오는 시나리오도 특별한 부담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가 미리 나오면 더 잘해보겠단 마음에서 연구하는데 그날그날 나오니 저에게는 더 좋더라고요."
김보경은 영화에서 성준의 옛 여자친구 경진과 카페여주인 예전 역을 맡았다. 두 인물은 다른 듯 포개진다. 헷갈리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경진 촬영을 끝내고 예전 촬영에 들어가 크게 헷갈리지 않았다"고 했다.

"1인2역인 줄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경진 역이 끝난 다음에 다음날 불러서 갔더니 예전 역을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저 감독님이 알아서 조절해주시니 그냥 했습니다."

너무 고분고분하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느냐고 넌지시 물으니 "한때 연기 시작할 무렵 내 멋대로 하겠다고 고집도 피웠지만 그게 다 착각이었다"는 말이 돌아왔다.

"감독님이 시키면 10번이건 20번이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만들어낸 캐릭터니 감독님이 가장 잘 아는 게 맞는 거죠."

그런 깨달음이 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보경은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2001)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다. 청춘물 '아 유 레디?'(2002)와 멜로물 '여름이 가기 전에'(2005)에서 주연 자리를 꿰찼지만 번번이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흥행 실패가 계속되자 들어오는 작품도 점점 뜸해졌다. 사업도 해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연기를 아예 그만둘까 생각할 때마다 단역이라도 작품이 들어왔다.

"계속 그렇게 끌려오다 보니 연기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든 시절도 많았죠. 그때마다 가족이 도움이 됐어요."

3년 사귄 남자친구와 상견례까지 마쳤다며 근간에 좋은 소식을 전해줄 수도 있다고 한 김보경은 "인생에서 변수가 생길 수는 있지만, 영화는 계속할 것"이라며 "돈에 따라가지는 않겠다. 안 굶을 정도면 된다"며 호기롭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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