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일으킨 전쟁이 1주년을 맞는다. 개전 초기에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한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이 이어지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탈 냉전시대 이후 최악의 전쟁으로 불릴 이번 전쟁으로 엄청난 희생자가 나왔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양국 군인을 포함해 사상자가 30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달 30일 기준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만 1만8657명이고 이중 사망자가 7110명이나 된다고 발표했다.

보다 심각한 건 이 전쟁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전쟁 발발 1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면전 체제에 돌입한 건 향후 더 큰 비극을 예고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수년간 계속될 수 있다”라며 일부의 낙관적인 전망을 일축했다.

러시아가 일으킨 이번 전쟁은 국제정세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개전 이후 미국과 유럽이 급속도로 결속하고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 밀착하는 모습이다. 이는 마치 과거 냉전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유럽국가들은 러시아에 속수무책 당하는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남의 일이 아니다. EU를 중심으로 많은 유럽 나라가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대로 중국과 북한은 러시아와 급속도로 밀착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에 군수 장비와 부품 등을 지원하고 북한은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을 두둔하며 상당량의 무기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런 국제정세의 지각 변동이 동북아는 물론 한반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북한의 도발과 핵 위협이 날로 커지는 상황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 한국, 일본이 연대하고 러시아, 중국, 북한이 결속하는 그림은 자유주의 체제와 독재국가 간의 끝없는 대립과 갈등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점에서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 발발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할 때 과연 국제사회가 과거 6.25 전쟁 때처럼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지금 유엔이 가진 힘과 위상으론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냉정하지만 정확한 진단이다.

유엔은 러시아가 일으킨 이번 전쟁에 대해 국제법을 위반한 명백한 남의 나라 침략이라 보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제재도 하지 못하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반대로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안보리에 국제사회의 질타가 쏟아지자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며 무기력감을 토로했다.

유엔 안보리는 5개 상임이사국과 각 대륙별 2년 임기의 10개 비상임이사국, 총 15개국으로 구성된다. 이중 상임이사국은 1945년 유엔 창설 당시 5대 강대국으로 분류된 미국·영국·프랑스·중국·소련(현 러시아)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거부권’이란 특권은 5개국 중 어느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그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절대 권리다.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주어진 특권은 세계 도처의 명분없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데 쓰라고 준 것이다. 그런데 그 권리를 침략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방패막이로 사용하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오늘 유엔의 현실이다. 결국, 이런 무기력이 중국에겐 대만 침공의 빌미를 주고 북한의 핵 불장난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유엔의 무기력증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속설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이런 현실에서 유엔 안보리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국가 간의 이해득실에 따른 해법에 좌지우지되는 건 곤란하다. 예를 들어 일부 국가가 주장하는 상임이사국의 수를 늘리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나쁜 쪽으로 문제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사국 수를 늘린다고 ‘거부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러시아처럼 권한을 남용하는 또 다른 국가가 생기는 걸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그들이 누리는 절대 권리인 ‘거부권’을 제한하는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죄 없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마구 살상했다. 그 과정에서 힘없는 부녀자와 어린아이에게까지 저지른 온갖 반인륜적인 만행은 그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전쟁의 참혹한 민낯은 북한을 상대하는 우리에겐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다. 든든한 한미동맹이 있어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만 무조건 안도할 때가 아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자국 우선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전쟁 위협을 한미동맹이 저지해주고 있지만, 안보만큼은 우리 스스로 굳건히 지킬 힘을 갖춰야 한다. 정부와 국민, 그리고 한국교회가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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