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축구 대표팀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2 월드컵에서 원정 16강이란 목표를 달성하고 7일 오후 귀국했다.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엔 수천여 명의 축구 팬들이 몰려 이들의 개선을 격하게 환영했다.

축구 대표팀은 16강전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에 패해 더 높은 곳을 향한 도전을 아쉽게 멈췄다. 그러나 매 경기마다 불타는 투혼으로 온 국민을 모처럼 하나가 되게 했다는 점에서 큰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다.

축구 경기에 우리 국민 모두가 이토록 진심이 되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실로 20년만이었다. 우리 선수들의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과 도전에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고, 결과 뿐 아니라 과정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는 동기부여의 기회가 됐다.

우리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온 국민이 왜 박수를 보내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주장 손흥민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에 상대선수의 머리에 얼굴이 부딪치면서 눈 주위 뼈 4곳을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다. 월드컵 개막을 불과 17일을 앞둔 시점이어서 경기에 출전하는 자체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수술에서 채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모든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다. 비록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그의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플레이가 경기마다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했다. 16강행을 이끈 결승골을 넣은 황희찬 등 많은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지만 그들의 투지를 막을 순 없었다.

축구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12년 만의 원정 16강에 진출한 것에 대해 국내외 언론은 ‘도하의 기적’이라 했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기적적으로 달성했다는 뜻에서다. 손흥민을 비롯한 일부 선수들이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으나 우리 선수단의 전체적인 수준을 볼 때 남미와 유럽의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적’이란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사실 전 세계에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려면 대륙별로 치열한 예선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단 32개국에만 자격이 주어진다. 이런 강팀들끼리 맞붙어 각조 1,2위 팀에게만 주어지는 16강에 진출했다는 건 정말 눈부신 성과다.

이를 결코 우연한 결과라고 할 수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라는 자긍심으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똘똘 뭉쳐 이뤄낸 ‘땀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몸을 사리지 않은 태극전사들의 열정에 온 국민의 응원과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 건 그래서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난제가 산적해 있다. 국내적으로는 이태원 참사의 근본 원인과 사고 책임 문제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참사가 벌어진 배경에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이 큰 만큼 철저한 원인 조사와 함께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참사를 정치적인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건 곤란하다. 일부에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와 행안부 장관 파면 요구를 대장동 수사 등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수세에 몰린 야당이 정국 돌파의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가운데 민주노총까지 총파업을 벌이고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실 민노총의 이번 총파업은 ‘기득권 지키기’ 성격이라는 비판 여론이 강해 명분이나 실리적인 면에서 많은 노동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게 현실이다.

북한은 올해에만 총 63발의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등 상시 무력 도발로 위태로운 한반도 평화에 큰 균열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핵탄두 소형화를 위한 7차 핵실험 준비를 끝낸 상태여서 정부로서는 역대 최고 수준의 안보 리스크와 마주하게 됐다.

이처럼 나라 안팎이 온통 우울한 데 모처럼 카타르 도하에서 날아온 축구 국가대표팀의 선전은 국민의 오랜 갈증을 시원하게 해갈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보면 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쳐 울고 웃을 일이 그동안 없었다는 뜻이 된다.

정치의 순기능이 국민을 위한 것이지만 기대와 현실은 다르다. 문제는 궁극적인 목표가 이상적이라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우리의 정치 현실은 너무나 암담하다는 데 있다. 이상과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영역은 오직 종교뿐이다. 그런데 종교가 속죄와 구원이라는 이상 뿐 아니라 사람에게 소망과 위안을 주는 현실적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교회는 나라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빛과 소금에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부흥과 성장이 가져다 준 한때의 자만에 도취해 이기심과 분열로 지탄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때에 축구 대표선수들이 귀국 인터뷰에서 저마다 “이게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고 한 말이 달리 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위상이 추락했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뼈를 깎는 갱신의 자세로 새로 태어난다면 차갑게 식은 가슴을 다시 뜨겁게 뛰게 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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