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목사
이태희 목사

데이비드 차와 필자는 평소에 친분이 있는 관계다. 그가 주관하는 집회에 가서 여러 번 강의와 설교도 했었고, 비록 그의 직통계시 화법이나 세대주의 종말론적인 관점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민족의 시대적인 사명을 향한 그의 열정과 헌신에 대해서 만큼은 높이 평가해 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최근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된 소위 “데이비드 스캔들”은 그래서 내게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극단적인 거룩”을 강대상에서 외쳤던 사람이 불륜이라니, 그렇게 “바벨론 문화의 위험성”을 소리 높여 외쳤던 사람이 하와이 대저택과 서초동 고급 오피스텔이라니. 그것도 성도들의 헌금으로. 사람이 어느 정도는 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지만 어떻게 데이비드가 이럴 수 있나? 분노가 치밀어 올라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물론 우리가 다 “데이비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죄란 무엇인가? 불륜이 죄인가? 횡령이 죄인가? 거짓말이 죄인가?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다 죄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죄”라기보다 “죄의 열매들”이다.

인류의 타락이 아담과 하와의 불륜 행각 때문에 시작되었는가? 인류의 불행이 그들의 횡령과 사치 행각 때문에 일어나게 된 것인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죄의 열매들일 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다.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창3:22), 즉 교만이 모든 죄의 뿌리요, 바로 이 교만으로부터 이 땅을 어지럽히는 모든 악들이 열매 맺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이것이 일만 악의 뿌리요, 이것이 모든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타락한 죄성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죄성”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마음 속에서 “욕망”을 만들어 낸다.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 남들보다 더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망,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만들어 낸다.

결국,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져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덕 불감증”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데이비드 차가 그토록 강단에서 목청 높여 외쳤던 “바벨론 문화”의 본질이다.

이와 같은 바벨론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 앞에 놓여진 매우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선악과가 하나 있다. 그 선악과의 이름은 바로 “유튜브”다.

내가 어릴 적에 즐겨 불렀던 노래가 하나 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어린 시절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정말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품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 어린 시절, 도대체 나는 왜 그토록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었는가? 목사가 된 지금 생각해 보니 답은 하나다. 유명해 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영향력에 대한 욕망이요, 다른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바로 이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성인 것이다.

그렇다. 유튜브 덕분에 이제 우리는 이역만리 바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까지도 유명세를 탈 수 있는 참 좋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AI 덕분에 언어의 장벽도 사라지게 되어,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사람도 유창한 영어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고 강의할 수 있는, 그래서 그들의 마음과 지갑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참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목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유튜브 방송에 여념이 없다. 물론, 그 덕분에 그리스도의 복음도 언어의 장벽 없이, 공간의 장벽 없이 전해질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이 유튜브 안에 숨겨진 “바벨론의 함정”을 간과하고 있는 듯 하다.

골방에서 카메라 하나만 틀어 놓으면 수 천명, 수 만명 앞에 설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유튜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회중들이 항상 목마른 설교자들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요술 지팡이”도 없을 듯하다.

유튜브는 분명 훌륭한 “선교의 지팡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타락한 죄성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이 지팡이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이 지팡이가 “바벨론의 뱀”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물어 버릴지 모른다.

어제(9일) 데이비드 차의 2시간에 걸친 회개와 사죄의 영상을 봤다. 솔직하게 말하면 딱 5초 봤다. 데이비드 차를 위해서나, 또 그동안 데이비드 차를 아끼고 응원해 왔던 많은 성도들을 위해서나 꼭 필요한 내용들이었을 거라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 지면을 빌려서 꼭 첨언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회개는 “카메라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다. 회개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코람 카메라”가 아니라 “코람 데오”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카메라 켜졌을 때의 삶과 카메라가 꺼졌을 때의 삶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 자신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영적 지도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지막으로 외치고 싶다.

우리 모두 카메라 앞에 서기를 중단하고 하나님 앞에 서기를 더욱 힘쓰자! 무대의 조명을 끄고 골방의 촛불을 다시 켜자.

대중들의 환호를 피해 다니셨던 예수님의 본을 따라, 아무도 없는 골방으로 다시 들어가 하나님의 시선 앞에 머무는 코람 데오의 삶을 회복하자. 그리하여 대중들의 임재보다 성령 하나님 한 분의 임재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배워가자.

성령 하나님만 내 안에 임하기만 하시면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 행하실 수 있음을 진실로 믿어 보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믿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내 삶의 “유일한 청중”으로 모시고 살아보자. 그리하여 이 땅에 진정한 부흥의 불길이 지펴지기를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 이 땅에 속히 부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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