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연임에 실패했다.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다. 지난 1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치러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한국은 123표로 5위에 그쳐 아시아 상위 4개 국에 주어지는 이사국에서 밀려났다.

이번 선거는 총 47개 국으로 구성된 유엔 인권이사회 중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14개 이사국을 새로 선출하기 위한 것으로 아시아에서는 한국 등 8개 국이 출마했다. 이중 4위 안에만 들어가도 이사국이 될 수 있었는데 5위를 기록해 탈락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47개 이사국 중에 연임에 실패한 국가는 한국,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단 3개 나라뿐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군이 떠난 후 테러리스트인 탈레반이 집권한 나라다. 중남미 베네수엘라는 사회주의자인 차베스 집권 후 경제와 인권이 한꺼번에 추락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이런 나라들과 같은 신세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참담하다.

2006년에 설립된 유엔 인권이사회는 전 세계 각 나라의 인권과 자유를 증진하고 중대한 인권 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역할을 한다. 인권이사회의 결정이 법적 구속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인권 관련 국제 정치학적 비중을 감안할 때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이번 결과가 충격으로 느껴지는 건 우리나라가 유엔 인권이사회가 설립된 2006년 이후 단 한 번도 인권이사회 선거에서 낙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무난하게 연임할 거로 봤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혹한 외교부와 주유엔대표부가 원인 분석에 들어갔으나 결과를 돌이킬 수는 없다.

민주당은 12일 한국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연임 실패를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로 규정했다. 욕설 파문 등 잇단 외교 미숙으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추락했다며 윤 대통령을 지목했다.

과연 그런 지적이 모두 사실일까. 차제에 한국이 왜 인권 이사국에서 탈락했는지, 그동안 한국을 지지했던 나라들이 이번엔 어떤 이유로 등을 돌렸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약 한국이 그동안 펴온 인권 관련 정책이 이번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면 충격 자체로 끝날 게 아니라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유엔은 북한의 인권 상황에 2005년부터 17년 연속으로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4년 연속으로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빠졌다. “대북 관계 특수성”을 이유로 들었는데 실은 북한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북한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고 북한 지도부에 개선을 권고하는 내용의 인권결의안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인권이사국으로서 자격에 의문이 제기 될 수 있다.

문 정부와 민주당이 지난해 4월 강행 처리한 ‘대북전단금지법’은 국내 뿐 아니라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북한 접경지역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외면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나쁜 법으로 규정했다.

또 지난 8월 1일 임기를 시작한 엘리자베스 살몬 신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문 정부가 2019년 11월 탈북 어민을 강제 북송한 사건과 관련해 “국제법에 위반된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강제로 북송한 어민들이 북한에서 어떤 인권유린 행위를 당할지 뻔히 알면서도 그런 조치를 취한 건 반 인권적 처사란 지적이다.

이번 선거 결과만 놓고 볼 때 국제사회로부터 인권 관련 지적을 많은 받은 베트남 등이 무난히 당선된 반면에 우리나라가 탈락했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지난 정부의 북한 인권 외면에 화살을 돌리자 민주당이 현 정부의 외교 참사라며 반격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거에서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개인이 아닌 유엔 회원국이 각 나라를 대표해 투표권을 행사한 결과에 대해서는 북한의 인권 유린을 외면한 문 정부와 정권 교체 후 아직 외교무대가 낯선 현 정부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럼에도 이번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연임 실패를 놓고 여야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국민의 시각에서는 유쾌하지가 않다. 결과가 당혹스럽긴 하지만 국제사회로부터 따끔한 회초리를 맞은 셈치고 앞으로 북한인권 등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임하는 게 더 생산적이다.

여야가 책임 공방을 벌인다고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 지금은 소모적인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눈높이를 맞추는 노력을 할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이 지난 9월 20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은 유엔과 국제사회가 그동안 축적해온 보편적 국제 규범 체계를 강력 지지하고 연대함으로써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건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이어 외교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4년 만에 다시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국제사회에 보내는 메시지 성격이 진하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실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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