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24일 광주광역시 소재 광주보건대학교에 대해 대체과목 없이 채플(예배) 참석을 졸업요건으로 명시한 학내 규정이 학생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대체과목 신설 등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의 권고가 기독교 사학의 건학이념을 훼손하고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란 비판이 교계에서 일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이 대학 재학생이 의무적으로 채플에 참석토록 되어 있는 학내 규정에 반발해 진정을 내자 해당 학생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인권위가 학생 편을 든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는 기독교 건학이념에 따라 설립된 이 대학이 보건인력 등 전문직업인 양성을 교육 목표로 하는 종립대학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기독교 신앙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학과가 없고, 신입생 지원자격에도 ‘기독교인’ 제한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광주보건대는 기독교 재단이 설립한 대학이지만 특정 종파 교육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학의 채플 수업이 설교, 기도, 찬송 등 사실상 일반 교회의 예배행위와 다르지 않으니 잘못이라는 결론이다.

그런데 이런 인권위의 판단은 얼핏 봐도 중대한 흠결을 내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우선 전문직업인 양성을 교육 목표로 한 종립대학이 특정 종교 전파를 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 첫 번째 문제다. 헌법은 사립 종립대학의 경우 종교행사의 자유와 대학 자치의 원리에 따라 종교적 건학이념을 교육과정을 통해 폭넓게 실현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인권위는 이런 헌법 정신을 도외시한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또 특정 종교의 전파를 목적으로 한 종파 교육은 피교육자인 학생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나아가 대학 측이 학생들의 개별적인 동의를 구하지 않고 종파 교육을 강요했으니 학생의 종교의 자유, 즉 특정 종교를 믿지 않을 소극적인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의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대학 측이 교리 전도를 강제적으로 시행하거나, 또 학생들이 대학을 지원할 때 기독교 건학이념으로 설립된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숨겼어야 논리적으로 맞다. 그런데 대학 측은 국가인권위에 “채플 수업이 비신앙인 학생에게 기독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기독교적 소양과 사회가 요구하는 지성을 함양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종교 전파에 대한 강제성은 갖고 있지 않다”고 소명했다. 이 대학 홈페이지나 입시요강에도 광주보건대가 기독교 건학이념으로 세워진 기독교 대학이라는 것이 분명히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인권위의 답변은 “대한민국의 대학구조상 사립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그 중에서도 30% 이상이 종립대학인 현실에서 대학선택 기준이 학생의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대학 서열화에 따른 타의적 요소가 다분히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종립대학의 입학이 학생들의 종교교육에 대한 무조건적 동의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인권위의 주장에 합리성이 있으려면 해당 학생이 선택하는 전공과목이 그 대학에만 있어서 종교와 상관 없이 그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보건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은 광주보건대 말고도 많다.

국내 대학의 30%가 종립대학이어서 대학선택의 기준이 자발적이지 못하다는 인권위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현실이 그렇다면 국가가 국공립대의 비중을 늘리면 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해 박상진 교수(장신대)는 “국가가 사립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공적 책무는 다하지 않고, 종립대학의 자율성만 문제 삼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한국교회연합도 26일 발표한 성명에서 “종립대학의 자율성마저 국가 마음대로 통제하려 한다면 기독교 건학이념으로 세워진 이 땅의 기독교 사학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이번 국가 인권위의 판단에 대해 한국교회는 건학이념에 따른 종립학교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매우 위험한 결정임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기독교 대학이 채플을 졸업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대법원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에 반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는 평준화 정책으로 학생이 학교를 선택할 권한이 없는 중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은 입학생 본인의 자의적 선택이 보장되고, 기독교 건학이념을 갖춘 종립학교가 채플 수업 의무 조항을 명시한 사실도 미리 인지하고 입학한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지난 1996년 숭실대의 한 재학생이 채플 수업을 졸업요건으로 명시한 학내 규정이 부당하다며 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미 명확히 매듭지어진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사립학교는 국·공립학교와는 달리 종교의 자유로서 종교교육이나 종교선전을 할 수 있고, 특히 대학은 헌법상 자치권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과, “사립대학은 종교교육 내지 종교선전을 위하여 학생들의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일정한 내용의 종교교육을 받을 것을 졸업요건으로 하는 학칙을 제정할 수 있다”며 대학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광주보건대는 예장 통합 총회 산하 교육기관으로 지난 1971년 수피아여자실업전문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은 후 1998년 5월 현재의 광주보건대학교로 성장하기까지 지난 40년간 기독교적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전문직업인 양성에 기여해 왔다.

이런 건학이념과 정체성을 가진 기독교 사학에서 기독교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한 채플은 재학생에게는 선택사항이 아닌 일종의 의무이다. 인권을 구실로 법으로 보장된 사학의 자율권까지 국가가 입맛대로 통제하려는 저의가 무엇이든 이런 시도가 거듭될수록 민주주의에서 점점 멀어지는 불행한 결과가 초래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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