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정보 : 『신학과교회』 1 (혜암신학연구소, 2014): 59-101

 

신학과교회 제1호
신학과교회 제1호

오늘날은 탈종교의 시대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종교성이 더욱 짙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종교성이라는 것을 성스러운 것에 대한 체험이라고 할 때, 오늘날 개신교의 종교성을 나타내는 영역 가운데 하나는 성령의 체험과 관련된 분야일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지/정/의 가운데 지성중심주의에 보다 무게중심이 있었고 특히 신학은 이성의 성찰이 주도하였으므로, '성령'과 관련된 영역은 '성령론'이라고 독립된 명칭이 있었을지라도 주류 신학에서는 다소 도외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주의가 독주하던 19세기에 루돌프 오토가 과감히 이성 너머의 '성(聖)'을 연구하여 '성'에 대한 인간의 시각의 전환을 일으켰다. 그는 칸트가 '알 수 없다'고 한계 지은 저편의 영역을 인간의 언어로 정교하게 빚어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과감한 시도였던 '성(聖)'에 대한 연구의 빛나는 유산, 그리고 오늘날 인간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는 실존주의의 물결로, 우리는 '성령론'을 형이상학적인 차원이 아닌 삶의 차원에서 보려는, 과거에 비해 보다 성숙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가운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령론을 다룬 논문을 봄으로써 오늘날 한국교회 성령론의 전반적인 이해를 짧게 다루고자 한다. 김영한 교수(숭실대 명예교수, 조직신학)는 「한국교회 성령론의 어제와 오늘: 은사지속론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한국교회에서 '성령'이 어떻게 이해되고 어떠한 형태로 정착되었는지에 대하여 '은사론'과 관련하여 개괄적으로 소개하였다. 이 글에서는 김영한 교수가 논한 한국교회의 은사에 대한 이해, 보수개혁신학 진영의 성령 이해, 그리고 성령운동가들에 대하여 간략히 살핀다.

첫째, 김영한은 한국교회에서 은사지속론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였다고 평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은사지속론보다도 은사중지교리(the doctrine of cessation of charismata)가 더 폭넓게 퍼져있다. 그 이유는 박형룡이나 박윤선 등과 같은 해외 유학파 학자들의 영향으로 한국 신학교 교실에서는 위필드의 은사중지론, 카이퍼의 저수지론이 가르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가르침은 "구체적인 신앙의 현장과는 동떨어진 가르침"이라고 김영한 교수는 지적한다. 1900년대에 일어났던 세계 각처에서의 성령의 역사들, 즉 웨일스 부흥(1904), 인도 카이사의 부흥(1905), 미국 아주사 거리의 부흥(1906), 중국 호남성 부흥(1908), 미국 은사 운동(1960년대), 한국 민족복음화 운동(1970년대), 중국 가정교회 부흥(1970 이후) 등은 "성령은사의 지속적인 역사"를 보여주는 것임을 김 교수는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경험한 1907년 평양의 성령의 역사는 1800년대 중엽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일어난 부흥운동, 그리고 1900년대 "세계적인 성령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한국적 현상이었다."

김영한 교수는 은사지속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20세기 화란의 복음주의 개혁신학자 버르카워(G. C. Berkouwer)는 그의 『하나님의 섭리』(The Procidence of God)에서 기적은 오늘날에도 행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오순절 이후 지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점진적으로 쇠퇴한다는 언급은 없었다... 기적을 부인하는 자는 현대과학의 결정주의적 사고에 굴복하는 것."(바르카워) 영국 청교도 칼빈주의 목회자 로이드 존스(D. Martin Lloyd Jones)도 카이퍼, 바빙크, 워필드 등의 정통개혁신학자들이 성령의 직접적 역사와 은사중시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메시지와 교회 현장의 신앙 체험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로이드 존스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통하여 직접 개입하시고, 성경 말씀 안에서 우리들에게 직접 개입하신다고 천명하였다."

둘째, 김영한은 해방 후 한국교회의 보수개혁신학 진영이 빈약한 성령론을 가지게 되었음을 지적했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해방 이후 한국신학교에서는 박형룡이나 박윤성의 영향으로 다소 관념화된 성령론들이 가르쳐졌다. 1907년 평양대부흥 사건의 영향을 받은 이눌서(William Davis Reynolds)와 같은 자들이 지녔던 '은사지속론'은 신학교 내에서 자리잡지 못하였다. 이같이 배운 신학생들이 목회 현장으로 나갔을 때 그들은 "추상적이고 빈약한 성령론"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목회자들은 "목회 현장에서 일어난 각종 성령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부딪혔다." 성도가 산기도 중에 일상을 넘은 초월을 체험하고 그것을 목회자에게 와서 말하였을 때, 지성중심주의적인 성령'론'을 배운 목회자들은 그것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때로는 심지어 금하기도 하였다.

은사에 대한 빈약한 이해에 기반한 목회는 결국 초월적인 성령의 체험을 한 성도들을 담아내지 못하였고, 성도들은 성령 은사를 강조하는 단체들로 이동하였다. 그 가운데 오순절 성령 은사를 강조한 순복음교회와 같이 정통교회와의 연장선상에 있는 교회도 있었지만, 신비주의 기도원이나 사이비 이단들도 많았다.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 없이 성령은사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성령의 은사를 마치 "무속의 굿처럼" 실행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대하여 애정 어린 비판을 하는 신학자들은 교회 내의 집회가 '굿 판'과 겹치는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성령의 역사와 무속 신앙을 엄밀하게 구별하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김영한은 기존 교회를 떠난 성도들이 정착한 이단 단체들로 문선명의 통일교, 정명석의 애천교회, 박태선의 천부교, 이만희의 신천지, 안상홍의 하나님의교회, 박명호의 한농복구회 등을 들었다.

셋째, 김영한은 한국교회에 성령운동가들의 명맥이 이어져 옴을 밝히고, 아울러 오늘날 우리 시대의 성령운동가들의 한계점을 지적한다. 김영한에 따르면 1907년 평양대각성 운동 이후 초월적 신앙을 가진 은사지속론자들이 일제에 굴하지 않는 신앙적 기개를 보여주었다. 그에 따르면 김익두는 기적적 치병을 추구하였으나 신사참배와 타협하여 사회적 정의와 공공성에 있어 취약점이 노출되었고, 감리교의 이용도는 몰역사적인 신비주의로 몰입하였다. 이에 반해 "초월적 신앙을 가진" "은사지속론자들인" 주기철, 손양원, 한상동, 주남선은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고 공산주의의 학살에 굴하지 않는 신앙적 기개를 보여주었는데, 김영한 교수는 이에 대해 "성령의 힘과 도우심이 있었던 것"이라고 하였다.

김영한은 그러나 해방 후 일어난 성령운동가들은 "번영과 기복신앙"에 지나치게 편파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물론 이들은 교회성장을 일구어냈고, 조용기 목사의 교회는 세계 6대 대교회 중의 하나로 크게 성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영한 교수는 번영과 기복신앙에 매몰된 신앙은 결국 본질을 왜곡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함을 지적하였다. 그에 따르면 "치병, 방언, 기적 행함 등이 단지 은사 능력과 전시(展示)에만 치중할 때 그것은 타락하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성령 은사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것은 전인적 구원의 차원과 연결될 때 영적 은사는 기복적인 아니라 성경적 의미로 참된 은사로 승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성령'은 교회 성도들의 신앙 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신학이 '성령론'이라 이룸 붙여 이성으로 이를 연구하지만 이성이 성령의 분야를 다 담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주지주의에 매몰되어 교회가 성도들의 영적 체험을 외면할 수도 없다. 그 결과가 교회 본질에서 벗어난 왜곡과 타락으로 이어짐을 교회 역사의 사례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영한은 "성령은사론"을 "십자가 신학으로 재조명"하자고 제안한다. 성령은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성부 하나님의 빛 아래" 있다면, 성령 은사는 교회중심주의적인 일에 복무하지 않고 "소외된 자들을 진정으로 섬기는 은사"로, 개인적 구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불의한 구조를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시키는" 은사로, "자신을 내어주는 나눔과 섬김의 은사, 하나님 나라의 은사'"가 될 것이라고 김영한 교수는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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