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석진 목사
    한국 예루살렘이라 불린 평북 선천의 교회 역사와 교세
    1907년 평양신학교를 최초로 졸업한 7인의 목사들은 자국인들을 대상으로 선교사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운영하게 됨으로 조선 교회는 자립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는 길선주 목사가 담임하게 되었다. 이교회를 개척한 초대 목사는 사무엘 마펫이었고 2대 목사는 그레이엄 리 목사에 이어 세 번째로서 그 교회의 장로 출신이 담임 목사가 되었다. 이처럼 평양 신학교를 ..
  • 강석진 목사
    평양 및 북한 교회 부흥에 큰 영향을 준 사경회
    한국 교회사 초기에 선교사들에 의한 교회 개척과 부흥의 결과는 이남보다는 상대적으로 평양을 중심으로 이북지역(관서지방)이 괄목할 정도로 우세하였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그 중에 사경회라는 성경 학습과 전도 훈련이 매우 효과적이었음이 여러 자료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는 지역 주민들의 종교 성향에 따른 면도 크게 작용되기도 하였다...
  • 강석진 목사
    선교사들의 길잡이와 동역자인 조사(助事)와 영수(領袖)의 사역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어와 풍습과 문화를 익혀야 했고 전도를 위해서는 현지 조선인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초기 선교사들에게는 변변한 언어 교제나 사전도 없었기에 조선 현지인들의 도움이 사사로운 것까지 도움을 받아야 했으며, 이들 조사는 단순한 사역의 보조적인 일로부터 점차 선교사들의 동역자로서의 역할을 분담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조사로서 한석진, ..
  • 강석진 목사
    험곡 넘어 아골 골짜기까지 찾아가 복음 전한 권서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서울과 평양처럼 큰 도시와 산간 마을과 낙도에 이르기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던 데에는 이름도 빛도 없이 성경을 전한 복음의 첨병들이 있었다. 그들이 권서였다. 이들은 성경 봇짐을 메고 팔도를 누비며 예수와 천국을 외치며 성경을 팔았다. 한국 교회 역사에서 초창기에 선교사들에게는 복음의 길을 평탄케 하는 세례 요한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 강석진 목사
    평양도성에 십자가 세운 사무엘 마펫의 전도 열정과 선교 전략
    1894년 1월 7일은 평양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날로 한국교회사에 기록되고 있다. 사무엘 마펫은 평양을 1890년 1차로 선교 답사를 하여 그곳에 2주간을 체류하면서 교회를 세우려는 계획을 확정하고 그후 8 차례에 걸쳐 도보로 한성에서 평양까지 다니며 준비하였다. 거리상으로는 300킬로가 넘는 거리였기에 7~8일이 소요되었고 어느 때에는 평양의 소수의 사람들과 성탄절을 보내기 위해 홀로 ..
  • 강석진 목사
    평양에 교회와 학교, 병원 세운 선교사들
    선교사들이 평양을 거룩한 도성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사역이 있었다. 첫째는 영혼을 구하는 교회 설립 사역과 둘째는 육신을 치유하는 의료 사역을 위한 병원과 셋째는 문맹에서 문명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교육장인 학교 설립이었다. 그로 인해 음란과 폭력이 난무했던 곳이 생명과 소망의 도성으로 변화되어갔다...
  • 강석진 목사
    박해자였던 이기풍을 세운 마펫 선교사
    평양에 교회가 세워지기까지는 폭정을 일삼는 관가의 핍박과 개인의 집요한 방해와 괴롭힘이 뒤따랐다. 음란한 도성이며 폭력배가 많았던 평양에 십자가가 세워지는 과정에 이를 방해하며 폭력적인 방법으로 선교사들을 괴롭힌 인물 중에 대표적으로 두 명이 있었다. 관리로는 그 당시 평양 감사인 민병석으로..
  • 강석진 목사
    북한 첫 교회 소래교회, 남한 첫 교회인 새문안교회 개척에 기여
    최초의 한글 성경이 백홍준에 의해 의주에 전해졌다. 그로인해 그곳에 자생적 기독교인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만주의 동관교회에 있던 죤 로스 제자인 서상륜도 자신의 고향 의주로 돌아왔다. 그도 역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전도된 무리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 강석진 목사
    제너랄 셔만호 사건이 한국 교회사에 미친 영향
    한국교회사의 선교 역사에 장을 연 알렌 선교사(1894년 입경),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렌턴 모자 선교사(1885년 입경)들은 1기에 속한 선교사들이었다. 그 후 다수의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사역의 새로운 지경을 개척하는데, 그 지역이 바로 이북 지역으로 1890년에 사무엘 마펫(Samuel Austin Moffett), 1892년에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 강석진 목사
    사무엘 마펫은 왜 평양이 최적의 선교지라고 했을까?
    1893년2월에 캐나다 출신 의료 선교사인 윌리엄 제임스 홀과 사무엘 마펫, 그레이엄 리(Graham Lee, 1861~1916)는 이북 서북지방(황해도,평안도)으로 선교지 탐사를 위해 순회 여행을 한 끝에 왜 평양이 최적의 선교지 인지를 선교 본부에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