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북한인권정보센터 북한인권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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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일보 홍은혜 기자] (사)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 '2019 북한인권백서'를 발간하였다. 이번 백서는 지난 2007년 '2007 북한인권통계백서'를 시작으로 매년 발간되고 있으며, 이제 13회째를 맞고 있다. '2019 북한인권백서'에 수록된 피해 정보는 사건 73,723건, 인물 45,616명이다.

먼저 전체 사건/인물 규모는 다음과 같다. 사건 규모는 73,723건으로 전년도 대비 3.1% 증가했다. 인물 규모는 45,616명으로, 전년도 대비 6.1% 증가했다.

사건은 총 16개 권리 유형에 따라 분류됐고, 그 중 개인의 존엄성 및 자유권(59.9%), 이주 및 주거권(13.6%), 생명권(10.7%)의 발생 비율이 전체의 84.2%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인물은 피해자 37,881명(83.0%), 가해자 2,051명(4.5%), 증언자(목격자 포함) 3,751명(8.2%), 그리고 기타 인물 1,993명(4.2%)의 비율로 나타났다.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 이후 인권상황 비교하자면, 증언자 당 사건 수는 다음과 같다. 국내 입국연도가 명시된 사건 증언자 11,288명 분석 결과, 증언자 1인당 6.0건의 사건이 보고됐다. 1980년대 입국 증언자 9.8건, 1990년대 9.2건, 2000년대 6.4건, 2010년 이후 5.7건으로 계속 감소추세다.

북한에서 가장 많은 인권침해 보고 시기는 1990년대(20.0%)와 2000년대(53.2%), 2010년 이후(10.1%)다. 2000년대에 들어 낮아진 인권침해 유형은 생명권(13.2% 감소), 정치적 참여권(1.4% 감소), 생존권(10.4% 감소), 건강권(2.0% 감소), 노동권(1.8% 감소), 교육권(0.7% 감소) 순이다.

반면 2000년대 발생 비율 높아진 인권침해 유형(1990년대 비교)은 개인의 존엄성 및 자유권(21.3% 증가), 피의자와 구금자의 권리(2.5% 증가), 이주 및 주거권(6.2% 증가), 재생산권(0.4% 증가)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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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2000년대보다 생명권과 정치적 참여권, 생존권, 건강권, 노동권, 교육권에 대한 권리 침해 수준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많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2000년대 이후 감소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생존권은 1990년대 1,664건이 보고됐지만, 2000년대는 352건만이 보고되어 생존권 위협은 상당 수준 해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인권침해 사건 유형 중 생존권은 식량권을 의미하는 것이다. 1990년대 식량권 침해 사건 비율이 다른 시기에 비해 높은 이유는 ‘고난의 행군’ 이후 배급이 중단되면서 식량난으로 인해 아사자가 대규모로 발생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1990년대보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1/5로 감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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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2000년대 이후 생존권, 교육권, 건강권은 개선되고 있으나, 개인의 존엄성 및 자유권, 피의자와 구금자의 권리, 이주 및 주거권, 재생산권은 더욱 악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2000년대 이후 생존권, 교육권, 건강권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이 호전되고 시장을 통한 식량과 필수 생활용품 구입이 용이해져 국제인권 A규약(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분야에서 상당한 인권개선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피의자와 구금자의 권리, 이주 및 주거권, 재생산권과 개인의 존엄성 및 자유권에 대한 사건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유는 북한주민들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국제인권 B규약)는 여전히 심각한 침해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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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10년대는 2000년대보다 생명권, 피의자와 구금자의 권리, 노동권, 재산권 침해 수준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많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생명권은 2010년 이후 사건 발생 비율(12.6%)이 2000년대(7.2%)와 비교하였을 때 약 2배로 증가한 이유가 있다. 바로 정권안정, 사회질서 및 치안유지 정책 강화를 위해 비공개 처형 등의 비율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2010년 이후 피의자와 구금자의 권리 사건 비율이 8.2%로 상대적으로 2000년대(4.8%) 보다 높게 나타난 이유는 2010년 이후 김정은 시대 이후 북송된 탈북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처벌 강도가 높아지면서 구금시설 내 환경이 더 열악해 진 것으로 분석됐다.

결과적으로, 2000년대와 2010년 이후 시기의 상황을 비교해서 살펴보았을 때 사건 유형 별 발생 비율이 달라진 점은 있다. 현재까지 다양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하고 있어 북한주민들은 여전히 심각한 침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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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19 북한인권백서 주요 증언' 이다.

*사건발생 시기 기준 : 2012~2018년

“집결소에서 두 달 동안 감금되어 있고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머리칼을 질질 끌고 갑니다. 그리고 가서 의자에 묶어놓고 때립니다. 너무 맞아 정신이 없을 때 옷들을 다 이렇게 벗겨놓고 합니다. 첫날에는 (지도원이 저를) 얼랬는데, 제가 반항을 하니까 폭력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달 지나면서부터는 반항을 안 했습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질질 끌려가고, 생리 생활 할 때도 끌고 갑니다. 진짜 너무 아프고 진짜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한 달 지나면서부터는 내발로 갔습니다.” (성폭행, E19-I-0778, 김00, 여, 함경북도)

“2015년에 제가 살았던 곳에서 두 명이 중국하고 기독교 선을 타고 있어서 정치범으로 다 잡혀갔어요. 중국과 밀수를 하다가 발각 되도 경제 쪽은 교화를 가던가, 돈을 내고 살던가 그러거든요. 그런데 한국 드라마를 나른다든가, 성경, 기독교적인 거를 심부름하는 사람들은 정치범에 들어가요. 정치범 가는 사람들은 아까 말한 것처럼 재판이라는 게 없죠. 그저 어느 밤에 와서 차에 실어 가는데 제가 알던 강00은 중국에서 살았는데 한국 교회 쪽하고 연결이 있었나 봐요. 보위부가 정치범수용소에 넣었죠.” (정치범수용소 구금, E19-I-1815, 윤00, 남, 함경북도)

 “이제 팔려가서 시집을 가야한다, 가서 원하는 남자는 얻지 못한다, 인물이나 그런 건 보지 말라 라는 말을 듣고 한 삼일을 울었습니다. 차를 타고 어딘가 도착했는데 인신매매꾼이 있는 거예요. 중국 돈 6만원에 팔렸습니다. 집에서 하는 말이 자기가 나를 사가지고 이만한 돈 들였으니까 일도 잘하라고 했어요. 그 다음부터 감시가 있었습니다. 보위부 감시보다 더합니다.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농촌에는 화장실이 바깥에 있으니까 따라왔어요. 변소 간 앞에 서있었습니다, 나올 때까지. 제가 너무 계속 울며 살았습니다. 북한을 떠나서 자유를 찾자고 왔는데 더한 데를 와가지고 안 내보내요. 빨래를 널거나 걷으러 나가면 시아버지가 따라 나오고, 집식구들이 교대로 가면서 지켜요.” (인신매매, E19-I-0608, 박00, 여, 양강도)

“단련대 생활은 정말 힘듭니다. 당시 겨울이라 아침 8시면 일하러 가야 하는데, 그저 집 공사 하는 거, 물자 넣는 거, 땅 파기 하고 이런 일을 했습니다. 추운 거는 그저 견뎌야 합니다. 맞들이로 해서, 앞에 사람 서고 뒤에 사람 서서 2명이서 흙을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맞들이를 뛰면서 해야 합니다. 뛰지 않으면 처벌 준다 말입니다. 힘들다는 정도도 아니고. 제일 힘든 공사 일을 한단 말입니다. 나는 그때 당시 느낀 게 밤에 자다가도 12시면 12시, 1시면 1시. 딱딱 조그만 나무가 들어옵니다. 그 나무는 간부 집에 들어간단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몽땅 일어나서 그걸 창고에다 싹 넣어줘야 한단 말입니다.” (강제노동으로 인한 침해, E19-I-0198, 유00, 남, 함경북도)

“신병 때는 53키로, 병원 갈 때는 38키로, 병원에서 나올 때는 43키로였습니다. 완전 사람이 허약이 와서 혼났습니다. 30kg대 다른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뼈에 가죽이란 게 하나도 없고 절절 밀리는 가죽에다가 뼈다귀만 남아서 여자들이 가슴이란 게 없고. 당시에 탈영자도 많았습니다. 신병 훈련 받을 때는 밥이란 걸 못 먹어봤습니다. 강냉이 밥이라도 국수라도 먹고 싶은데. 밀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가루 말고 통밀 그거를 이렇게 제분내가지고서리 가루에 물 넣어서 버무려서 야채랑 섞어서 석 달 동안 그거 먹이는데 진짜 구역질이 날 정도로 그 때 힘들었습니다.”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 E19-I-1103, 강00, 여, 황해북도)

“수술을 했는데, 의사가 장을 째가지고 보이는 부위만 절단하고 꿰맨 거예요. 그랬더니 다른 곳이 또 터진 거예요. 그래서 계속 수술을 받았는데 고름이 나오니까, 다시 꿰맨 걸 다시 자르고 하면서 배가 헤쳐진 거예요. 그래서 음식을 하나도 못 드시고 드시기만 하면 그냥 나오는 거예요. 아버지가 몸이 약해지시니까 의사 선생도 영양이 보충된 다음에 수술하자는 거예요. 배가 헤쳐졌으니까 사람 배가 어떻게 됐는지 다 보이는 거예요. 너무나도 처참하게 돌아가셨어요. 꼬맨 부위 사이로 고름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열흘 동안 입원했다가 아버지가 병원에서 사망하셨어요.” (적정치료 거부 및 미비, E19-I-1325, 곽00, 여, 함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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