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K 한일 종교/시민사회 연석회의
중앙 왼쪽 NCCK 총무 이홍정 목사, 오른쪽 동경대 와다 하루키 명예 교수 ©NCCK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NCCK는 최근 동경 YMCA 회관에서 한일 종교·시민 사회 연석회의를 개최했다. 이날은 일본측 시민사회 대표로 동경대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가 ‘일한 협력으로 일조 국교 수립’을 이란 제목으로 발제했다. 그는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강제 징용자에 대한 배상 청구를 명했다”며 “일본 외무대신은 일한 조약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고 했다.

이어 그는 “한국 구축함의 일본 자위대기 레이더 조사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자, 일본정부는 지체 없이 공격적 태도를 보였다”며 ‘험악해진 한·일 관계’를 전했다. 또 그는 “올해 1월 28일 아베 총리는 중국 및 러시아, 북한과의 외교정상화를 촉진시키겠다면서, 한국과의 관계는 언급하지 않았다”며 “이는 한국을 무시한 태도였다”고 덧붙였다.

이런 험악해진 한·일 관계를 풀기위해, 그는 “일본이 한국에게 안겨다 준 식민지배에 대한 인정 및 사과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그는 “한·일 관계는 엄연한 동반자 관계이기에, 일본은 명확한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재차 말했다.

와다 하루키 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지배 사과에 대한 회피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조약에서 시작됐다. 이를 놓고, 와다 하루키 교수는 “‘한일 병합은 일본의 강압적 동의였다’는 한국 측 주장을 일본은 묵살했다”며 “일본은 ‘한일 병합은 합의에 이뤄졌고, 식민지배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쌍방의 청구권의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없다’는 청구권 협정 문건”을 통해, “한·일간 인식은 분열됐고, 극복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와다 하루키 교수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문은 일본의 동아시아 식민지배국을 향한 첫 사과”라고 밝히며, ‘일본 패전 50년 만에, 반성과 사과의 의지를 표명한 외교’라 전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총리 간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 ‘한국 사람들’이란 표현으로, 일본의 반성 의지는 더욱 명확해졌음을 하루키 교수는 덧붙였다.

이런 일본의 움직임은 시민사회로 까지 이어졌다. 하루키 교수는 "2010년 한일 병합 100년을 기해, 한국·일본 지식인 1,000명이 작성한 성명서에서 더욱 구체화 됐다"고 강조했다. 당시 대표 발기인이었던 하루키 교수는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성명서에 대해,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이렇게 밝혔다.

“정확히 100년 전 8월, 일한병합조약이 체결되고,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아래 당시 한국 사람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 진 식민지 지배로 인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성실하게 마주 대하고자 합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돌아보는 일에 솔직하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여기에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그러나 와다 하루키 교수는 “이런 일본 정부의 노력은 일본 국민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며 “설상가상으로, 아베 총리의 입각으로 일본 사회는 더욱 우경화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키 교수에 따르면,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아사히 신문 인터뷰를 통해 “자기 믿음만으로 선의를 보여주면 된다는 건 큰 잘못, 어리석은 총리”라고 간 나오토 총리를 향해 비난한바 있다.

때문에 와다 하루키 교수는 “계속해서 우리 일본 측 역사가는 한일 병합이 일본의 무력적 지배라는 걸 연구를 통해, 소책자 형식으로 발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하루키 교수는 “어떻게 해서라도, 1965년 한일 기본 조약 제 2조에서, 한국 측 해석의 채택을 한·일 외교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이 지점에서 그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가 일본 국민에게 깊이 침전되도록 하는 출발점”이라며 “동시에 한·일 관계가 새로운 우정과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는 첩경”이라고 재차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본 국가의 사죄와 반성을 기반으로, 양국 정부와 국민들이 식민지배의 고통에 대한 문제를 계속 환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령 그는 '화해치유 재단 문제, 한국 대법원의 미쓰비씨 징용공 배상 문제'를 들어, “일본 정부는 피해 유가족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사과해야한다”고 말하며, ‘한국과 일본 식민지 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밝혔다.

한편 그는 “3.1 독립선언 100년을 기해, 조선민족의 독립 요구가 일본을 위한 것이라는 외침을 상기한다”고 전했다. 그가 인용한 3.1독립선언서의 대목은 다음과 같다.

“오늘우리가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는 것은 조선인에게는 민족의 정당한 번영을 획득하게 하는 것인 동시에 일본에 대해서는 사악한 길에서 나와 동양의 지지자로서 중책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와다 하루키 교수는 “우리는 조선민족의 위대한 설득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동양 평화,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사죄를 바탕으로 한일 상호 이해의 길을 걸어야 함”을 촉구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에서 제기되는 비판의 목소리를 일본 정부는 비난이 아닌, 동양 평화를 위한 설득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야한다”고 당부했다.

이를 디딤돌 삼아, 그는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도 납치 문제를 적극 해결해 조속한 외교 정상화를 추진해야한다”고 덧붙이며, “한국의 북-미 중재자 역할은 한국 단독으로 무사히 추진해 갈 수 없기 때문에, 한·일이 동반자 관계로 회복돼 동아시아 평화를 구축해 가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홍정 NCCK 총무는 앞서 '동북아시아 오이쿠메네(Oikoumene)를 향하여'를 발표했다. 그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인 샌프랜시스코-판문점 체제라는 냉전구조에서 동북아시아의 시민사회 중심으로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국가 중심의 지배 구조에서 벗어나, 동북아 공동평화안보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을 역설하며,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구축을 위한 노력”을 호소했다.

무엇보다 그는 “동북아시아 삼국 간 형성된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가 선행돼야 한다”며 “국가의 노력이 아닌 시민사회의 공동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3국의 시민사회가 공감대를 형성해, 사회적 공감대로 외연을 확장해 가야한다”고 촉구했다. 또 그는 “동북아시아 평화 헌정을 3국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작성해, 생명평화와 인민안보를 우선하는 시민사회 가치를 문화로 정착시키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중·일 중심으로 시민사회 네트워크를 핵심 연대로 삼아, 러시아, 북한으로 네트워크를 확장시켜 나갈 필요성”도 제언했다. 특히 그는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않은 북한의 경우, 3국 중심의 시민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동북아시아 에큐메니칼 포럼’을 구성하여 동북아시아 평화시민연대의 구축과 성장”을 제안하며,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에 대한 공동의 이해와 비전의 창출”을 강조했다. 이에 그는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공동의 평화교육 과정을 지속 실시해, 한·중·일 시민들의 역사 인식을 일깨울 것”을 촉구했다.

한편, 한일 종교인 시민사회 활동가 간담회 토론자로는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 수고했다.

NCCK 동북아 평화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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