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문화아카데미 3.1운동 100주년 특별 대화모임: 한일 관계 새로운 백년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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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최근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는 ‘3.1운동 100주년 특별 대화모임: 한일 관계 새로운 백년을 모색한다'가 열렸다. 이번 자리에는 두 명의 일본인을 초대한 대화 모임이 있었는데, 바로 전 일본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와 동경대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다.

우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발제했다. 2009년 6월 일본 역사 상 '최초'로 민주당이 자민당을 압승하고, 하토야마 유키오는 2010년 10월 까지 총리로 입각했다. 그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 과거 잔재 청산은 꼭 선행돼야 한다’며 ‘나아가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로 나아가야 함’을 발언했다”고 전하며, “한·일 외교적 마찰은 최대한 피하려 노력한 문 대통령의 연설에 감화 받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과거 일본의 행태를 놓고, “대일본주의, 탈아 입구(脫亞入口)를 기치로 한국, 대만, 만주, 중국 등 아시아 침략전쟁에 뛰어들었다”면서 “그러나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면서, 결국 패전하게 됐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이 때 일본 스스로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반성 없이, 연합국 측의 재판이 급박하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하여 그는 “식민지화에 대한 철저한 사죄”없이, '성찰과 반성을 건너뛴 측면'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는 “일본은 전후 헌법 9조의 창설로,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겠다는 맹세를 했다”고 덧붙였다. 적극적인 의사 타진이 아닌 타력적인 조치였지만, 연합군에 의한 헌법 창설로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억누른 것이다. 이후 그는 “1970-80년대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눈부시게 성장을 일궈냈다”며 “그러나 기쁨도 잠시, 1990년부터 경제에 거품이 일었고 장기 경제 불황이 지속됐다”면서, “동시에 중국의 경제 성장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신감을 혐중(嫌中), 혐한(嫌韓)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른바 “일본 내셔널리즘의 귀환”인 셈이다.

다만 그는 “국민의 불만이 정·관계 유착을 지속해온 자민당 정권을 향했다”며 “하여 2009년 총선의 압승으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져 하토야마 정권이 탄생했다”고 밝혔다. 그는 1995년 무라야마 도이치 총리의 담화 정신을 본받아 “일본 외교의 중심축을 대미의존에서 아시아에 좀 더 열린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무라야마 담화를 두고, 그는 “1995년 무라야마 도이치 총리는 담화를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밝히자’며 ‘과거의 식민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준 점’을 사과했다”고 평가했다. 독선적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평화의 이념으로 나아가려는 일본의 첫 이정표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긍정한 셈이다.

다만 그는 “이후 민주당의 총선 패배로, 아베 자민당 정권이 복귀하며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고 지적했다. 아베 정권과 한국 정권 사이, ▲ 2015년 100만 엔을 헌납한 대신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한·일간 합의 ▲ 한·일 간 레이더 조사 문제 등이 수면위로 부각된 것이다.

한·일 간 레이더 조사 문제의 배경은 이렇다. 한국 해상함이 조난당한 북한 어선을 구조하는 와중에, 일본 초계기의 레이더를 조사한 것에서 촉발됐다. 하토야마 전 총리에 따르면, 일본 항공 막료장 출신 다모가기는 "최근 화기관제 레이더는 상시적으로 거의 전 방위로 전파를 계속 배출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항공기 등에 전파가 조사돼버린다"고 했다. 하여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정부가 위험하다면서 크게 법석할 이야기는 아니"라며 "서로 냉철해지고 사과하면 끝날 일"이라 못 박았다. 또 그는 "냉철함을 잃고 호전적인 분위기로 만든 일본 여론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대화문화아카데미 3.1운동 100주년 특별 대화모임: 한일 관계 새로운 백년을 모색한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대화문화아카데미 제공

특히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놓고,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문건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즉 일본의 한국에 대한 고압적인 태도가 충분히 느껴질 수 있는 언사인 셈이다. 게다가 그는 “돈으로 해결했으니, 두 번 다시 사과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한국민의 감정을 자극할 우려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그는 일본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 선생을 인용했다. 우치다 다쓰루는 “식민지의 전쟁 피해에 대해서 패전국인 일본은 사실상 ‘무한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며 “식민국이 먼저 ‘더 이상 책임 추궁은 안 하겠다’는 말이 나올 때 까지, 책임은 계속 짊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태도로 아베 총리가 임한다면, 위안부 문제는 도리어 한·일 관계를 평화로 견인하는 구심점이 될 것을 하토야마 전 총리는 강조한 셈이다.

한편 그는 한·일 외교 관계의 미래좌표로 ‘우애(友愛)’란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1954년 일본 총리대신을 역임했던 나의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는 전후 추방처분을 받았다”며 “그 때 하토야마 이치로는 리하르트 쿠덴호프 칼레르기의 ‘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에서 ‘우애’ 개념에 감명 받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20세기 초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두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해, 범 유럽주의를 기치로 유럽은 연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자유와 평등의 가교로서, 우애는 독일과 프랑스 나아가 유럽 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한 셈이다. 역사적으로 오랜 앙숙이었던 독일과 프랑스 관계 또한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닮아 있다. 그런 점에서 하토야마 전 총리는 '힘의 외교'보다 '우애와 협력의 외교'가 보다 중요함을 힘주어 말했다. 그는 “석탄과 철강의 공동관리를 통해 협력관계를 심화시켜, 우여곡절 끝에 유럽연합(EU) 공동체의 결실을 맺었다”며 “이제 아무도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결국 그는 “우애란 나의 자유와 동시에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 차이와 개성을 살려 서로 돕는 일”이라며 “무작정 의존이 아닌 각자 자립적 기반 위에 공생하는 개념”이라 설명했다. 이 우애 개념은 똑같이 국가 운영에 있어 적용될 수 있으며, 하토야마 총리는 “내셔널리즘이 고양되는 세계 정치 추세에서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다”며 “중심축을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권으로 옮기는 것이 우애 국가가 되는 길”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철저한 대화를 통해 지역 공동체 간 상호이해의 장을 구축하자”고 했다. 현재 ASEAN 10처럼 동아시아 공동체가 대표적 예다. 또 하토야마 총리에 의하면, 시진핑 총리도 “아시아를 운명 공동체라며, 2020년까지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런 의사를 중국이 표명했으니,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과 한국의 태도가 남아있다”며 적극적 액션(Action)을 주문했다.

이에 그는 “일본은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해 고통 받은 사람들과 국가들에 대해 분명히 사죄와 보상을 할 수 있다면,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해 크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그는 “한반도 평화무드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안에 북한을 편입시키는 것도 더 이상 꿈같은 일이 아니”라며 “경제 무역, 환경, 에너지, 교육, 문화, 안보, 등 모든 분야를 논의하는 장으로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구축하자”고 제언했다. 그 중심적 역할로, 일본과 한국이 나선다면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는 EU 못지않은 강력한 지역 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전망한 것이다.

안중근 열사, 3.1운동의 정신 모두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 구축을 지향했다. 안중근 열사는 일본 제국주의 철폐를 역설하면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 철회는 한·일 평화 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의 집으로 나아가는 가교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안중근 열사, 3.1 운동을 관류하는 ‘동아시아 공동의 평화’ 정신은 하토야마 총리의 ‘우애’개념과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대화문화아카데미 3.1운동 100주년 특별 대화모임: 한일 관계 새로운 백년을 모색한다
와다 하루키 동경대 명예교수 ©대화문화아카데미 제공

동경대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가 이어 발제 했다. 그는 2010년 '한일병합 100년에 즈음한 한일지식인 공동 성명'을 작성한 발기인 중 한명이다. 이 때 한국 지식인 500명과 일본 지식인 500명이 참여해 작성한 성명서로 화제에 오른바 있다.

그는 “한일병합은 일본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시킨, 제국주의 행위”라며 “마치 조선 황제가 자발적 합의로 동의했다는 어조로 1965년에 작성된 한·일 기본합의서”를 비판했다. 이어 그는 “작년 10월 30일 대법원이 강제동원 노동자의 호소에 대해, 일본기업에 지불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배경을 말하면서, “일본 아베 총리와 외무대신은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는 태도”를 지적했다.

더구나 그는 “최근 일본 아베 총리는 한·일 레이더 조사 문제에 격렬히 주권 침해라 반응한 점, 시정 연설에서 한국을 언급하지 않은 점이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이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두고, 그는 “단순 외교적 협정으로 과거사 문제를 이미 해결했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그는 “북한 위안부 문제, 20만 명이나 되는 전시 노무동원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야 함”을 역설했다.

이에 그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이 때, 그 정신의 회복을 힘주어 말했다. 즉 그는 “당시 3·1정신은 ‘우리가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는 것은 조선인에게는 민족의 정당한 번영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에 대해서는 사악한 길에서 나와 동양의 지지자로서 중책을 다하게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그는 “동양 평화론을 역설했던 3·1 정신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따라서 그는 “한·일은 상호이해, 상호부조의 길을 같이 걷자"며, 동시에 "한국에서 제기되는 비판의 목소리를 적극 경청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동북아 전체의 번영을 위한 노력”을 일본에 당부했다. 100년 전 일본이 추구했던 탈아 입구(脫亞入口) 야심 속에는 동아시아 리더로서의 야심도 숨어있었다. 반면 진정한 리더는 바로 "무력이 아닌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견인하려는 리더십에서 기인함"을 와다 하루키 교수는 역설한 셈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까는 자세가 아닌, '모두·더불어·동등함'의 정신은 도리어 일본이 바라던 동아시아 리더로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2000년 전 예수께서 낮아지심으로 높아지셨던 리더십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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