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이현수 선교사] 작년 대한민국은 세월호로 인해서 또 다른 침몰을 경험하였습니다. 세월호는 큰 슬픔과 함께 우리가 '이 정도였어?'라는 자괴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또한 시대적 아픔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이 주님이 원하는 삶인지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이현수 선교사

아픔과 슬픔, 재해는 인간 삶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되게 하는 것은 그런 아픔과 슬픔을 다시는 재현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소망일 것입니다. 아픔 속에서도 '어떻게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북경을 다녀오는 길에 OO항공을 통해서 또 다른 세월호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고된 연발, 날씨로 인한 지연으로 자정을 넘어서 인천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비행기가 새벽 4시쯤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리무진, 공항버스가 끊어진 상태, 덩그러니 공항에 떨구어진 승객들,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고 흔히 일어날 법한 상황 앞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어떤 승무원, 직원들은 안내해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상황에서 불평해봐야 어떤 메아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포자기의 말도 했습니다. 필자가 이런 상황에서 승객들을 위한 계획이 있느냐고 강력하게 따져 물었지만, 기내 승무원은 지상 직원에게 물아보라고 하고, 지상 직원은 왜 그러느냐는 식의 생뚱 맞은 모르쇠 반응을 보였습니다. 승객들을 위한 어떤 계획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행기에 싣고 목적지에 떨어뜨려 주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함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항공기 뒤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세월호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세월호 이후에 우리에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것이 세월호 유족들이 청와대 앞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던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도 우리는 배운 것이 없나? 하는 깊은 자괴감이 밀려옴을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정말? 정말?"이라고 할 수 있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광활한 사막-실은 쓸모없어 사람이 쉽게 살 수 없는 땅-에서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보도된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살인과 테러가 매일 우리의 밥상 앞에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보코하람이 나이지리아 북부에서 수백 명의 여중생을 납치해서 인신매매나 노예로 팔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그것보다도 지난 3년 이상 계속된 시리아 내전은 수많은 슬픔과 상실, 죽음을 무슬림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아랍의 봄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이집트는 걷잡을 수 없는 전쟁으로 매일 불안한 사회정세가 이어지고 있고, 파키스탄은 탈레반 극단주의자들의 교회를 향한 테러가 쉬지 않고 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극단주의적 무슬림들에게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리아와 이라크에 그리스도인들의 연합기구인 '시리아와 레바논의 복음주의 공동체의 최고 연합기관'( the Supreme Council of the Evangelical Community in Syria and Lebanon)에서 "늦기 전에 도와달라"는 간절한 호소문을 작년 8월 29일 전세계 교회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무슬림들이 무슬림들을 가차 없이 죽이고, 또한 끓어 오르는 분노 때문에 함께 천년 이상을 같이 살아왔던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무참히 죽이는 이 아픈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작년 세월호 사건의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면 이런 감정도 지나가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세월호를 겪고도 어떤 교훈도, 실제로 얻고 적용하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몇몇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가슴이 아프고,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 어느 정도는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무슬림들을 죽이는데, 우리가 할 일이 뭐란 말인가"라고 반문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도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이고, 죽기 전에 복음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이런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하7:14).

우리가 그들을 대신해서 기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까요? 그리고 그 땅을 고치실 수 있을까요? 답은 아멘입니다. 그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기도합시다. 그 땅을 하나님께서 고치시도록 매일 간구하면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 해결될 일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이 빠른 길이고 인간을 위한 최선의 길일 것입니다. 앞으로 게재되는 여러 글은 여러분들이 지적인 갈증을 채워주는 글이 아니라 산 사람, 그리고 망자들의 이야기가 있는 글입니다. 그리고 이 글들을 통해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간구할 기도의 제목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먼 길이라고 여겨져도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기도하고 간구합시다.

글ㅣ이현수 선교사(프론티어스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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