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W.P.M의 앨범 중에서 키즈 프레이즈 1집 "어깨동무"의 '저 하늘에 빛나는 별빛처럼'과 '하늘 땅 만큼 사랑해요'를 좋아한다. 어깨동무는 친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숨김이 없이 허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친구이다.

친구의 시를 즐겨 읽는 사람들은 성경에서도 친구이야기를 찾아 볼 필요가 있다

이집트 장인ㅣ<그리스도와 수도원장 메나>ㅣ목판에 유채ㅣ6세기. 57x57cmㅣ루불박물관, 파리 Egyptian Unknown MastersㅣㅣMusee du Louvre, Paris

"이제부터 내가 너희를 친구라고 부르겠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

예수님이 유대 군병에게 잡히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요한복음 제14장-16장에 실린 고별사를 다락방 강화 (The Upper Discourse) 라고 한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찾아 갈 때에도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간다"고 했다.

나는 예수가 나사로와 제자들에게 부른 친구란 말이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작은 성서화 엽서 한 장을 만나고 나서 깜짝 놀랐다.

이름 모를 이집트 장인이 그린 '그리스도와 수도원장 메나'란 그림이다. 6세기 말에 제작된 이 이콘은 목판에 그린 콥트교회 기독교 회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유명하다.

후광에 십자가가 있는 그리스도는 사복음서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은 수도원장 메나(AD285-309년경)의 어깨를 감싸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참다운 친구의 모습이다.

1900년에 프랑스 고고학자 쟝 클레닷(Jean Cleda, 1871-1943)이 중부 이집트의 바우이트(Bawit)의 거대한 성 아폴로사원 유적에서 이 목판을 발견하였다. 현재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두 인물은 언덕을 배경으로 야외 풀밭에 정면으로 서 있다. 그들의 발에는 아직까지 들풀의 흔적이 보이며, 해가 넘어가는 오렌지 빛의 석양 햇살이 후광 뒤를 물들이고 있다.

그리스도 후광에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그 뒷면에 구세주(Savior)란 명문이 있어 식별이 용이하다. 흑갈색 머리칼에 둥그스럼한 얼굴, 도톰한 입술과 다듬어진 수염에 온화한 표정이다. 키가 메나보다 좀 더 크고 눈이 뚜렷하며 튜닉과 스카프를 걸치고 있다. 왼손에는 진주와 보석이 가득 박힌 사복음서를 들고 있다.

그리스도가 어깨동무한 메나는 후광 뒤쪽에 "수도원장 메나(Apa Mena Superio)"라는 명문이 보인다. 메나는 단지 콥트 수도원의 규례대로 왼손에 작은 두루마리 성경(Scroll)을 들고 있다. 메나는 길고 텁수룩한 회색 수염에 짧은 회색 머리칼과 야윈 얼굴로 튜닉과 스카프를 걸치고 있다.

순례자의 메나스 물병 '테라코타'ㅣ'Terracotta' pilgrim's Menas flask

6-7세기 비잔틴 시대에 이집트 Abu Mina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물병에는 메나스를 나타내는 상징물인 두 마리 낙타 가운데에 선 성 메나스를 조각하였다. 현재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4세기 초에 그가 순교한 후 그는 질병을 낫게 하는 힐링 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판이 났다. 알렉산드리아 인근의 Abu Mina에 있는 그의 경당에는 세계 각 처에서 많은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성 메나는 메나스(Menas)로도 불리어지며 로마군대에 속한 이집트 군인으로서 교회를 위해 놀랄만한 업적을 남기고 순교한 군인 성인으로 영웅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콥트정교회는 물론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도 성인으로 추증(追贈)되었다.

이집트 고대 교회는 마가(Mark)의 선교로 이룩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일찍이 성 아타나시우스 (St. Athanasius)와 성 클레멘트 (St.Clement)같은 위대한 교부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콥트교회는 5세기에 로마교회로부터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논쟁으로 분립되었다.

18세기 동방정교의 '성 메나스' 이콘ㅣ18th century Eastern Orthodox icon of 'Saint Menas'

필자는 과문한 탓인지 오래 동안 성서화 자료를 모으면서도 그리스도가 직접 어깨동무한 그림은 이 콥트교회 이콘 이외에는 찾아보지 못하였다.

작은 엽서형 카드 그림이지만 너무 소중해 벽에 걸어놓고 보고 있다. 그렇게 처다 보다가 더러는 메나스 성인을 내려놓고 내가 그 자리에 서있는 상상을 해본다. 그 분이 직접 어깨동무 해주시며 친구라고 말하는 황홀한 꿈에 잠긴다.

어린 나사로를 친구라고 부르신 그 분을 우리 청소년들이 만나 수다를 떨어도 좋다. 친구란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하고 홍수희 시인은 노래하지 않았는가?

석양길의 인생들도 친구라고 부르시겠다는 그분을 만나 메나스처럼 어깨동무해 주심을 받아 힐링받는 아름다운 정경을 꿈꾸어 보기를 빈다.

■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어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강정훈칼럼 #강정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