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봉에 달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산 국립공원

벌써 한 해가 저무는 '세모(歲暮, 세밑)' 12월이다

산과 들에는 눈발이 휘날리고 달력도 마지막 한 장만 달랑 매달려 있다.

해마다 이맘때는 수능시험이나 취업전쟁을 치루는 이 땅의 젊은이들은 마음먹은 대학이나 직장을 기다리며 아픈 젊음을 보내고 있다.

그뿐인가? 이 세대 부모들은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자조하며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마냥 지친 삶을 살고 있다. 모두가 밝은 새해가 빨리 와야지 하며 새날을 기다린다.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기다리며 사는 존재이다.

한인현(1921∼1969)이 작시하고 이흥렬이 작곡한 <섬집 아기>는 반세기 넘게 이 땅의 아기들이 듣고 자란 '국민 자장가'다.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아기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엄마를 기다리다가 잠들었을까.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뜸북새가 논에서 울 때 쯤 엔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던 <오빠 생각>으로 밤을 지새우지만 서울 가신 오빠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동요를 부르면서 우리는 자라났다.

청춘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또 애를 태운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 빨래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김민부가 작시하고 장일남이 작곡한 우리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소프라노 조수미가 노래하는 것을 듣노라면 애절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한다.

그 옛날 여명기에 조국의 광복을 기다리던 민초들은 상록수의 심훈처럼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자' 해방의 그 날을 기다렸다.

오늘 날의 서민들은 긴 겨울이 너무 추워서 목가적 시인 신석정 처럼 '우수도 경첩도 먼 날'부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뜨겁게 노래하고 싶으리라.

이 세상 나라가 아무리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해 준다 하더라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100세 노인천국이 지구상에 오더라도 인간존재의 유한성, 즉 죽음의 문제는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들은 저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신(神)을 기다린다.

살바도르 달리ㅣ<주 예수여, 오시옵소서>ㅣ1964-67년ㅣ과슈, 벌게이트성경(1969년 발간)의 삽화 Salvador Daliㅣ<veni, domine="" jesu="">ㅣ1964-67ㅣGouache, From the "Biblia Sacra" published in 1969 by Rizzoli of rome.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Yes, I am coming soon.)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분은 언제 오시는가? 우리는 항상 기다리지만 12월이 되면 올 해도 다 저무는데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기다린다.

우리를 대표하여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환상 가운데 그 분에게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Come, Lord Jesus)" 하고 간절한 소망을 고하였다. 초대교회에서는 성찬식 공식기도와 성도간의 인사에서도 이 말을 달고 다녔지만 지금 우리는 그 말을 잊어버리지 않았는지?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추상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란 작품을 보면 상징주의 작품답게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십자가 모형의 큰 나무의 위쪽에는 다윗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고 십자가의 교차점에는 밝은 빛이 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는"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빛이라 "는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

십자가 아래에는 마리아와 제자들이 보이고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는 구름이 보인다.

<다시 오시는 주님>ㅣ작가미상; 밤베르크 묵시록의 삽화가ㅣ 라이헤나우 화파 1,000-20년ㅣ밤베르크국립도서관 ㅣUNKNOWN; Illustrator of 'Bamberg Apocalypse'ㅣReichenau, 1000-20ㅣMiniature on gilded ground, Staasbibliothek, Bamber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12월이 기다리고 있다.

12월 첫 날부터 크리스마스까지는 교회력으로 대림절(待臨節 Advent) 기간이다.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2000여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즐겁게 기억하며 그의 재림을 기대하는 글자 그대로의 대림(待臨), 즉 기다림의 기간이다.

신성로마제국 오토 3세의 <밤베르크 묵시록>에 실린 라이헤나우(Reichenau) 화파가 그린 유명한 사본 장식화 중의 하나인 <다시 오시는 주님>이라는 삽화를 보면 그 분 양편에는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두 증인이요 선지자가 재림을 약속한 신구약성경을 들고 그 분의 재림을 돕고 있다.

대림절 카렌다ㅣ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스토아 상품   ©강정훈 교수

각 국의 어린이들은 대림절 카렌다(Advent Calender)를 사서 12월 1일부터 호기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매일 작은 상자 하나씩을 개봉한다. 여기서 나온 장식품은 크리스마스트리에 걸거나 자기 방을 꾸미기도 한다. 아기들은 이럴게 12월 24일 까지 밤마다 내일은 상자에서 무슨 아이템이 나오나 하며 꿈속에서도 내일을 기다린다.

■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어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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