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삼 서울광염교회 담임목사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의 기록상으로는 13년 만입니다. 왜 하나님은 아 브람에게 13년 만에 찾아 오셨을까? 그 이유는 아브람을 찾아 오셔서 하나님이 당신을 소개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만약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고 3년 후에 이삭을 낳으면 아브람 내외와 주변 사람들은 아브람 이 낳은 아들로 이삭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지금은 아브람 내외뿐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이 아브람 내 외가 아들을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낳게 하신 아들임이 선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물론 부부가 가임기에 자녀를 낳는 것도 하나님이 자녀를 낳게 하신 것이지만 때로 이삭 이나 사무엘처럼 하나님께서 "내가 낳게 했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당신을 소개하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너 는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라"(새번역)는 의미입니다. "네가 이제 전능한 나에게 순종하게 되면 너는 완전해 지고 흠이 없어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아들을 낳을 것을 알리는 서막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아브람 당시에는 그 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서 자녀가 없는 것은 완전하지 못한 것, 흠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사라는 어떤 의 미에서 스스로 흠이 있는 여자라는 생각에 눌려 지냈을지 모릅니다. 아브람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 전까지는 남편 이나 자신 둘 중에 한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이후에는 잉태를 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브람과 사래가 자녀를 낳게 되면 이런 모든 것에서 벗어 납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완전하지 못한 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으로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되고 주변으로부터도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또 다시 약속을 하십니다. 그 약속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너를 크게, 심히 번성하게 하리라. ②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③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나님은 '내가 내 언약'에 근거해서 이 일을 이룰 것"이라고 강조하시며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꿔주시며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된 우리 모두에게도 하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흥분이 되어 할렐루야를 외치며 춤을 추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약속을 받았으 니 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반응은 뜻밖입니다.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 함은 엎드려 웃으며 혼자 생각했습니다.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이 생각 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이 되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단호히 "아니라"고 하시며 "네 아 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아들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이삭의 뜻은 웃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반응한 것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의 나 이와 아내 사라의 나이 생각을 먼저 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기 자신의 나이나 처한 상황과 환 경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우리 삶에 '웃음'이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언약을 거듭 말씀하시며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이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증표입니다. 할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 한시적으로 있었 던 제도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문자적인 할례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증표는 필요 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마음의 할례(신10:16)도 그 중에 하나고 세례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이 외의 언약의 증표도 있습니다. 언약의 증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는 언약의 증표, 우리가 하나님의 언 약 아래 있는 증표는 무엇인지 찾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 이 글은 서울염광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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