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이데올로기> 책 표지   ©북돋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핵심키워드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였다. 여야 후보는 물론 시대정신으로 평가될 정도였다. 하지만 학자와 전문가 그룹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다양한 논리가 전개됐음에도 좀 더 명확한 지침서를 찾기가 힘들었다.

10년 전 미국에서 출간된 마조리 켈리의
이란 책이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복돋움, 2013년 3월, 제현주 옮김)로 번역돼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은 나름대로 경제민주화의 해법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다. 한 마디로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주식회사를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부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듯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주식회사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는 역시 시민에게 있다고.

한때, 국가는 왕의 재산이었다. 귀족은 일하지 않고 수확물만 거두어 갔다. 재산 없는 자들은 투표를 하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묻는다. '주식회사는 주주의 재산인가?', '기업의 수확물은 어째서 주주만의 몫인가?', '종업원은 왜 투표를 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저자는 이 책 통해 던지고 있다.

켈리는 기업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라고 말한다. 즉 주식회사는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이며, 기업이 속한 더 큰 공동체가 그러하듯,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10년 전에 출간했지만, 10년이란 세시간의 괴리가 느꺼지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잘못된 경제 현실에 대한 문제를 파헤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기업의 권리에 앞선 사람의 권리에 대해 집요하게 천착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기업이 먼저라는 완고한 주장이 버티고 있다. '노동자가 살기위해 기업도 있다'는 논리가 아니라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있다'는 논리가 압도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자와 상인을 살리기 위한 기업의 규제는 수그러들고, 경제 살리기는 곧 기업 풀어주기로 통하는 주장들이 난무하다.

더 나아가 기업이 사람이라는 논리는 곧 기업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강변되는 주주, 특히 대주주의 재산권과 자유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것은 부자의 권리와 자유이고, 여기에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이런 우리의 현실에서 이 책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대한 지침서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처한 조건은 더욱 나빠진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면서 이익을 제대로 나눠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OECD국가 중 가장 소득 불평등이 높은 나라라면서, 한국은 상위 1%가 전체소득의 17%을 차지하는데, 이보다 심한 불평등을 보이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저자는 파이가 전처럼 급속히 커지지 않으면,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더욱 중요해 진다고 말한다. 현재의 방식이 계속된다면 보통의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은 점점 적어지는데 부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계속해 커지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시민들의 고통과 불만은 깊어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돈 있는 권력 집단에 유리하게 설계된 경제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경제귀족주의, 경제 권력이 소수 특권층의 손에 집중됐다는 사실이다. 경제민주화를 구현해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켈리는 모두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경제를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폭넓은 계층의 소득을 진작하고, 부자와 가난한 이 사이의 격차를 줄이며, 비정규직, 여성, 이주민, 소수자, 청년층까지 포함한 모두에게 경제적 기회가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대기업 중심의 정책에서 창업자와 중소기업을 복 돋는 경제정책으로 전환해야 하고, 사회적 기업, 종업원 소유 기업, 협동조합을 장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그는 정의의 원칙을 주장하면서,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듯이 부유한 이가 다른 이들보다 더 큰 권리를 행사해서는 안 되며, 주식회사가 인간의 권리를 누려서도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마조리 켈리는 보스턴에 위치한 35년 역사의 비영리 연구 및 컨설팅 조직 텔루스 연 구소의 일원이자, 컨팅엣지 캐피탈 컨설팅그룹의 소유 전략부문 이사이기도 하다. 그는 <비즈니스 윤리>를 공동 창간해 20년간 대표를 맡았다. 사회적 환경적 재무적 목표를 통합하는 기업구조를 구상하고 옹호하는 단체인 코퍼레이션 20/20을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이 책을 옮긴 제현주는 KAIST에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했다.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 투자은행 크레딧스위스, 사모펀드운용사 칼라일에서 근무하며 기업경영 및 M&A, 투자분야에서 10여 년간 경력을 쌓았다. 현재 좋은 책을 번역하고 기획하며, 인문 사회과학 공부와 글쓰기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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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