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이척 이종(李坧)이 이완용에게 부여한 일반 위임장
    [안보칼럼 61] 한일 강제 병합(경술국치)①
    1910년 8월 22일 뉴욕타임스는 ‘나라로서의 한국은 이번 주 사라진다. 어떤 소유도 예상되지 않는다. 철저한 일본 경찰의 통제 때문에 한국인들은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전혀 모른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서구의 언론들은 한일 강제병합 조약 체결 전부터 일제의 한국 병합 사실을 쏟아내고 있었다. 1910년 8월 18일 자 뉴욕타임스는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다’라는 제목의 기..
  • 일본과 러시아 대표들이 포츠머스 회담을 하는 모습
    [안보칼럼 57] 한일 경술국치 5가지 조약, 포츠머스 조약(1)
    1904년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이 벌어졌다. 고종은 전시 중립을 선언하고 중립화 외교를 펼쳤다. 그러나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중립화 외교선언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조선을 둘러싸고 일본과 러시아 등 열강들의 각축이 본격화되면서 1900년대 초반 고종의 주된 외교정책은 중립화였다. 특히 1900년 중국의 의화단 사건으로 열강의 한국 출병 가능성이 고조되었다. 고종이 그해 주일공사로 임명한 조병..
  • 제2차 영일동맹 체결을 기념하여 1905년 도쿄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발행한 엽서
    [안보칼럼 56] 한일 경술국치 5가지 조약, 영일동맹(2)
    이중플레이를 한 적이 없다는 이토의 말은 거짓이었다. 러시아에서 니콜라이 2세와 람스도르프 외무장관을 먼저 만나서 협상을 벌였다. 이토의 행적을 알고 있었던 랜스다운 영국의 외무장관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파였던 이토는, 이때는 영국과 동맹을 맺는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가쓰다 다료 총리, 고무라 주타로 외상, 하야시 나다스 주영 일본대사가 추진한 영일동맹에 메이지 일본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