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돼 강제 노역을 하다 탈북한 국군포로들에게 북한이 손해 배상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북한 억류 국군 포로들이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한 건 지난 2020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탈북 국군포로들은 6.25 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돼 탄광 등에서 30개월 넘게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그러다 지난 2000~2001년에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한 이들 중 5명이 2020년 9월에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북한을 상대로 한 소송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법원이 북한에 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 게시판 등에 일정 기간 올려두는 공시송달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재판이 3년 가까이 지연됐고 그사이 탈북 국군포로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재판이 한없이 지연되면서 지난 2월엔 법원 정기인사로 재판부가 교체됐다. 새로 구성된 재판부가 공시송달을 받아들이고 재판 기일을 열면서 마침내 지난 8일에야 선고가 나왔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212단독 심학식 판사는 “원고들이 받은 정신적 고통이 명백하다”며 원고 측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고 북한에 1인당 5,000만원 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탈북 국군포로가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소송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7월엔 다른 탈북 국군포로 2명이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탈북 국군포로 한 모 씨(86세) 등 2명이 북한을 상대로 낸 최초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에서 북한과 김 위원장은 이들에게 2,100만 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국군포로들이 북한에 억류돼 강제 노역을 당한 사실을 우리 법원이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만 법원이 탈북 국군포로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실제로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확답하기 어렵다. 앞서 지난 2020년 7월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한 씨 등은 북한 영상물에 대한 저작권료를 위탁받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에 배상금 지불을 요구하는 추심금 청구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한 씨가 지난 2월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이들이 모두 90세 고령인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이들의 실질적인 명예회복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탈북 국군 포로들의 소송을 지원해 온 사단법인 물망초 측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고통의 세월을 보낸 분들을 위해 우리 정부가 먼저 배상금을 지급한 후에 경문협이나 북한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라”고 촉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유엔군 사령부는 6.25 전쟁 당시 포로로 붙잡히거나 실종된 국군 포로가 대략 8만 2천여 명 정도일 것으로 추산했다. 정전 협정 후 한국과 UN군은 3만여 명의 북한군 포로를 송환했으나 북한은 포로 교환 때 최종적으로 8,726명의 국군 포로만 송환했다. 북한은 나머지 포로들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가 없거나 전향해서 공화국의 혜택을 받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식으로 일관되게 대응하였으나 우리 정부는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이후 미귀환 포로들을 모두 송환하는 데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불균형이 나라를 위해 싸운 국군을 탄광 강제 노역 등 사지로 몰아넣은 꼴이 됐다.

미귀환 포로들의 존재와 그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실상에 대해 우리 사회가 비로소 주목하게 된 건 1994년 조창호 소위가 최초로 북한을 탈출해 고국에 귀환하면서부터다. 그는 포병장교로 임관한 후 1951년 5월 한석산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북한에 끌려갔으나 포로송환 때 귀환하지 못하고 북한 여러 지역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그 후 목선을 타고 기적적으로 탈북에 성공해 중국을 거쳐 43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후 북한에 남겨진 미귀환 국군포로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생생하게 증언했다.

20대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다가 포로로 잡혀 짐승 같은 삶을 살다 40여 년 만에 북한을 탈출해 제 발로 고국에 돌아왔다는 건 우리 정부가 그동안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탈북 귀환자는 81명밖에 되지 않고 2010년대 이후에는 탈출자가 한 명도 없다. 이들이 대부분 북한 땅에서 사망했거나 생존해 있더라고 탈북을 엄두조차 못 낼 초고령자가 됐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에서 재판부가 탈북한 국군포로들에게 북한이 손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은 이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배상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점을 우리 사법부가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다. 탈북 국군 포로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북한의 배상을 받아내기 어렵다고 그냥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국가가 이들을 두 번씩이나 배신하는 것이다. 국가가 사지로 떠밀고 나 몰라라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일제 강제노동에 대법원이 징용의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을 통한 배상을 판결한 후 정부가 한국 기업 주도의 ‘제3자 변제’라는 해법을 제시한 것처럼 이번 사안도 정부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가의 면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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