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학술원 제 55회 학술 세미나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제 55회 기독교학술원 공개 세미나가 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21일 오후 2시에 열렸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는 박찬웅 목원대 교수가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에 대한 재판’을 전했다. 그는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신앙의 대상으로 국한 된다”며 “역사적 예수 연구는 공관복음서와 더불어 역사적 사료를 통해 폭 넓은 사회사적 배경을 다루고자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에 대해 보다 개연성 있는 틀을 제시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역사적 예수 분야에서 주로 논의되는 쟁점을 전했다. 박 교수가 제시한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 째 ‘예수의 죽음의 주요 책임자는 누구인가? 유대 산헤드린 공회인가, 아니면 로마 제국인가?’ 둘 째 ‘예수님이 죽임 당한 명확한 판결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박 교수는 “마태·마가복음은 예수님이 공식적 재판을 유대 공회에서 받았다고 기록했다”고 말했지만, “역사성을 따지면 공회는 단지 공식 재판보다 심문절차를 이행했다는 누가복음 기록이 더욱 정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셋 째 ‘예루살렘 입성 당시, 예수를 환영했던 민중이 1주일 만에 예수를 죽이라는 태도로 돌변 했는가’이다.

이에 박 교수는 “신약학자들은 예수를 죽이라는 민중들은 예루살렘 토착민들”이라며 “반면, 호산나 외친 백성들은 유월절 행사에 왔던 순례자에 가깝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그는 “예루살렘 민중들은 성전 정화를 거칠게 요구했던 예수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며 “성전은 예루살렘 주민들의 생활과 직결됐기에, 감정이 더욱 상한 상태”라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1주일 만에 예수의 엇갈린 반응이 나왔던 것”을 두고, “양자 간 대중의 성격적 차이가 있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박 교수는 ‘예수를 죽인 일차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당시 시대적 배경과 결부지어 설명했다. 그는 “역사가 요세푸스는 빌라도를 유대에 파견된 역대 총독 중 가장 악랄한 인물로 묘사했다”고 전했다. 반면 그는 “공관복음서는 빌라도를 그나마 순화해서 묘사했다”고 덧붙였다.

이유로 그는 “공관복음이 기록될 당시, 초대 교회는 로마 제국의 핍박 가운데 있었다”며 “교회와 로마 간 평화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기에, 빌라도를 좋게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용감하게 ‘빌라도는 나쁘다’고 하면, 초대 교회 공동체의 선교에 있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약 성서가 기록될 당시, 빌라도의 미화작업이 이뤄질 수밖에 없던 이유인 셈이다.

한국기독교학술원 제 55회 학술 세미나
목원대 박찬웅 교수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또 그는 “역사가 타키투스는 예수님을 미신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미신을 설파하는 예수님을 빌라도가 단독적으로 죽였음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AD 70년, 역사가 마라 바르 사라피온은 예수의 죽음을 온전히 유대인 탓으로 돌렸다”며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와 로마 양자에게 책임을 돌렸다”고

이 대목에서 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로마 총독 통치의 상황을 전하며, 예수 죽음의 1차적인 책임 규명에 나섰다. 그는 “헤롯 왕이 죽은 이후 3명의 아들이 팔레스타인을 4개로 나누어 통치했다”며 “아들 아르켈라오스, 이두매, 빌립은 그리하여 4 분봉왕이라 불렸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아르켈라오스는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를, 안티파스는 ‘갈릴리, 베레아’를, 빌립은 ‘북동부 요르단’을 통치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르켈라오스는 유대인들을 학살한 정치적 잘못으로, 주후 6년에 로마황제로부터 쫓겨났다”며 “로마황제는 그 공석을 메우기 위해, 총독을 유대, 사마리아 지역에 파견해 다스렸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사형 같은 중형재판권은 로마 총독의 전권”이라고 강조했다. 하여 그는 “예수께서 생애의 마지막을 보내신 예루살렘은 로마 총독의 관할권”이라며 “예수 사형의 일차적 책임은 바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있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그는 “공관복음은 예수께서 생애 초기를 갈릴리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고, 예수살렘에서 마지막 날들을 보낸 것으로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 교수는 “예수 죽음 30년 이후에도, 로마 총독은 여전히 사형권을 독점했다”며 “그러나 유대 공회가 단독 사형권을 집행한 예외적 사례도 있다”고 보고했다. 가령 그는 요세푸스가 기록한 ‘예수의 형제 야고보 처형 사건’을 제시했다. 그는 “60-62년에 베스도가 총독 재임 중 사망하자, 그 후임으로 알비누스 총독이 임명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약 3개월의 공백 동안, 유대 공회는 단독적으로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처형했다”고 진술하며, “로마 총독 주관 하에, 정식적 재판을 받지 못하고 불법 처형당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그는 로마 황제도 건들지 못하는 유대 공회의 사형권을 설명했는데, 이는 성전과 관련 있었다. 그는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불가침의 영역이었다”며 ‘당시 성전의 경고문’을 전했다. 다음과 같다.

“다른 민족 출신의 사람의 경우, 그에 따르는 죽음은 그 자신의 책임이 된다”(유대고대사 15:417)

이에 그는 “성전에 대한 모독적인 태도를 보일 때, 공회는 사형에 가까운 폭력을 가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데반은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성전에 살지 않다’며 성전에 대한 모독을 가했다”며 “유대인 입장에선 즉결 처형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원래는 로마 총독 주도하에, 정식 재판을 받아야 했다”며 “성전과 관련한 예민한 사항은 유대인들이 단독적으로 즉결 처형이 가능했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그는 “로마 황제조차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묵인해줬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나니아의 아들 ‘예수’의 재판 보도를 전했다. 그는 “예수는 그 이름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다”며 “그는 심판의 예언자로서 주후 60년대에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계속해서 저주를 했다”며 “유대 공회는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넘겼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총독은 ‘그저 미친 사람’이라며 석방시켰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유대 공회가 재판을 요청하더라도 법적 절차의 진행여부는 로마 당국에 있다”며 “그것을 거부할 권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그는 “로마 당국이 개입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유대 법정에 자치적 판단을 맡겼다“고 전했다. 예로 그는 ”사도행전 18장, 이가야 지방의 총독 갈리오는 바울에 대한 재판을 유대인에게 넘겼다“며 ”종교적 문제만큼은 유대인에게 맡겼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그것이 사형과 같은 중형에 해당될 경우, 반드시 로마 총독의 인정이 있어야만 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공회에 의해 체포돼서, 로마에 넘겨졌고 십자가 사형을 받았다”며 “사형 집행권은 로마에게 전적으로 있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그는 “예수 죽음의 1차적 책임은 바로 로마제국에게 있었다”고 역설했다.

제 2강연에는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가 ‘형사법에 의한 예수에 대한 재판’을 발제했다. 총평에는 김영훈 숭실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1부 예배 설교에는 기독학술원장 이종윤 목사가 시편 82:1-8절을 맡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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