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well's note]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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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나는 안경을 쓴다. 아주 가끔씩.
어른 눈 치고는 보통인 시력이라 잘 보이지만 난시가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안경을 쓰고선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을 깜빡 할 때가 있다. 코 위에 얹어 놓고 어디 있나 찾을 때도 있고 안경알이 무안해지게 무심코 이불에 코를 박고 누워버릴 때도 있다.

오늘은 비가 내리는 날.
그래도 가을이라 모든 것이 포용되는 날.
편안한 장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우산을 비껴 안경 위에 내려앉는 빗방울 하나.
‘참, 나 안경 썼지.’
따듯한 커피의 향에 감동할 무렵 하얀 김이 눈앞에 서린다.
‘아 맞다, 안경.’
안경을 쓰면 눈이 네 개! 라던데 나는 두 눈일 때보다 더 바보 같을 때가 있다.

내가 보는 것보다 더 잘 보이게 도와주는 고마운 안경인데 한참 익숙해지면 그 존재감마저 자연스러워지는 존재라 우리는 고마운 마음도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더욱 빛나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사물 그리고 사람들...우리는 함께 해온 익숙함에 익어 소중한 고마움을 놓쳐버리진 않았을까.
더 잘 보인다고 더 잘 보는 건 아닌 것처럼...

▶작가 이혜리

이름처럼 은혜롭고 이로운 사람이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단상들을 글로 담아 내는 작가. 어릴 때는 순수함을 잃을까 나이드는게 싫었는데 그 덕분인지 지금도 말랑한 생각은 가득하고 하늘 보며 신나게 웃고 잔디에 풀썩 누울줄 안다.
lowell’s note는 자연과 사물, 사람과 교감하며 모험하고 경험하는 일들을 당신에게 전하는가슴 따듯한 손편지 같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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