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투스 포럼 강연 민성길 연세의대 정신과
민성길 연세의대 정신과 교수 ©익투스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연세대에서 조직된 복음주의 학생들의 모임 '익투스'는 최근 민성길 연세대 의대 정신의학 명예교수를 초청, ‘동성애와 건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개최했다.

김영우 익투스 대표는 이번 첫 번째 강연을 개최하면서, “호모포비아가 되거나 성소수자들을 배척하고 미워하는데 취지가 있지 않다”며 “다만 동성애가 기독 성윤리에 어긋나는 죄임을 인정하고, 퀴어들을 사랑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성길 연세의대 교수가 배포한 발제문에 따르면, 그는 젠더란 용어를 설명하면서, “남성다움, 여성다움은 사회에서 통념으로 생각하는 성에 따른 행동특성이나 마음가짐을 의미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젠더에 해당하는 말이 따로 없고, 다만 성(sex)이라는 말로 젠더라는 개념을 포함시켜 썼다”며 “그래서 번역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위키 백과에 따르면, 사회적 성 또는 젠더(Gender)는 ‘사회적으로 정의된 성’이라 규정한다”며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이론에서 생물학적 성과 젠더의 구분을 받아들이면서 통용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회적 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구체적 주장들을 그는 제시했다. 가령, 그는 “사회 구성주의자들은 ‘사회적 성이 완전히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생물학주의자는 ’사회적 성은 생물학적‘이라고 한다”며 대척점에 있는 두 주장을 전했다. 이어 그는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한 사람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닌, 여성이 되는 것‘임을 밝혔다”며 “심지어 페미니즘 사회학자인 주디스 버틀러는 ’생물학적 섹스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socially construct)‘고 주장했다”고 했다.

즉 그는 “이 관점은 젠더가 사회에 의해 구성될 뿐, 생물학적 성별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음을 의미한다”며 “인간의 신체 또한 사회적 요인에 영향 받는 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현재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다수 국가들은 남녀차별적인 섹스(sex)보다 대등한 남녀 간의 관계를 내포하기 위해, 평등에 있어서도 모든 사회적인 동등함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의미로서 젠더(gender)라는 용어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모든 여성학자들이 ‘사회적 젠더’개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젠더는 남녀 간 자연적 신체의 차이점을 부정한다는 비판도 있다”며 “젠더는 남녀의 성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개념을 강조한 나머지, 결국 남자와 여자가 확고히 구분될 수 있는 절대적 차이을 부정해 남녀를 보편적 범주 안에 가둔다”고 지적했다. 결국 남녀는 동질성에서 출발했다가 사회 환경에 따라 성별이 나뉠 수 있어, 젠더 개념은 남녀를 동일성의 개념으로 묶어 언제든 성이 유동적으로 변환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여, 그는 “젠더는 남녀 차별을 극복하려는 하는 이론이지만, 역설적으로 다양한 여성들의 억압을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녀간 신체적 차이로 인해 빚어지는 여성들의 불평등을 다룰 수 없다는 이론적 한계를 지적한 셈이다.

가령 그는 “젠더 표현(gender expression)은 외면적으로 표현된 남성적임(masculinity) 또는 여성적임 (femininity)을 의미한다”며 “예를 들어 남성적임 또는 여성적임은 복장, 헤어스타일, 악세 사리 등 신체, 태도 및 행동양식으로 표현 된다”고 설명했다. 표면적 행동양식에 있어, 그는 “사회에서는 여성성(女性性)은 상냥함, 온화함, 감정이입적, 감각적임을 지칭하지만, 반면 남성성(男性性)은 용기, 독립적, 폭력적, 자기주장적”임을 전했다.

따라서 그는 “젠더 역할(gender role)은 젠더에 따라 사회적으로 그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활동”이라며 “이는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즉 전통적으로 젠더 역할은 남자는 가부장으로, 여자는 모성으로 대표된다. 때문에 민성길 교수는 “그 사람은 그 역할에 응할 준비와 능력, 자질, 성향이 없는 경우, 환경과 자신에 대해 갈등을 겪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이럴 경우 사회적 부적응, 열등감, 소외감 등을 느끼고 심지어 주변으로부터 차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에서 지정한 행동양식에 자신의 존재가 따라가지 못하면, 존재는 자신의 젠더정체성에 혼란을 빚게 된다”고 그는 설명한다. 즉 그는 “젠더정체성(gender identity)은 젠더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동일시하는 것이고, 신체적 성(sex)에 근간한 개념은 성 정체성”이라며 “생물학적 정체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면 시스젠더(cis-gener), 불일치하면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 부른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스젠더”라며 “트랜스젠더는 출생 시 주어진 신체적성에 일치하지 않는 정체성을 갖는 경우를 뜻한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젠더주의자들은 젠더를 스펙트럼(spectrum)으로 봐서, 남녀 두 개만 있는 게 아닌 남녀 사이에 무수한 중간단계가 있다고 본다”며 “젠더는 고정적, 태생적이지 않고 non-binary 즉 유동적”이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그는 “꼭 남자 여자 둘 중 하나에 자기 정체성을 동일시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며 “둘 다 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 있고, 전혀 딴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여 그는 “젠더가 스펙트럼이라는 말은 결국 무수한 젠더 명칭들이 만들어져 나오는 세태에 대한 합리화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젠더는 성(sex)에 종속 된다”고 일축했다. 이어 그는 “젠더는 성 안에 포함되는 하위 개념으로 보는 것이 옳다”며 “성(sex)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적이기에, 일차적으로 염색체, 성기, 성호르몬, 외모 등 생물학적 성에 기반 한다”고 강조했다. 하여, 그는 “자연세계에서 보는 것처럼 생물학적 성이 먼저고, 젠더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이차적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에 국한된 정신사회적 (psychosocial)개념”임을 못 박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회적 성(gender) 즉 남자의 남자다움 또는 여자의 여자다움이라는 ‘stereotype’은 신경과학적으로 결정된다는 증거들이 충분히 있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최근 신경과학자들은 남자와 여자가 보이는 stereotype적 행동양상도 생물학적이라고 주장 한다”며 “젠더 표현은 뇌에 연결(wire) 되어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그는 “여자들이 흔히 보이는 부드러움, 예민함, 감성적임, 양육적 행동(nurturing), 등은 뇌 구조적 및 기능적 근원에 있음을 입증했다”며 “또 이러한 뇌구조와 기능은 성호르몬에 의해 결정되고, 성호르몬은 X 및 Y 성염색체에 의해 결정 된다”고 전했다.

하여, 그는 “원래 남성에게 여성 호르몬을 투여하면 ‘여성다워‘ 지고, 여자에게 남성호르몬을 투여하면 ‘남자처럼’ 된다“며 ”트랜스젠더들이 주사를 투여하는 것도 젠더가 생물학적 호르몬에 의탁할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방증하는 것“이라 재차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젠더주의자들이 ‘젠더는 생물학적 성 위에 있고 이를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셈이다. 나아가 그는 ”젠더 역시 생물학적 성이 사회적으로 표현되고 그에 맞는 사회적 역할로 이끌어진 결과“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우리는 남녀 차별에 반대 한다”며 “그러나 남녀는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도 구별됨을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남자와 여자의 타고난 고유한 생물학적 및 정신사회적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이며, 또한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UCSF 정신과 Louann Brizendine교수는 ‘이러한 여성성의 ’stereotype’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충실히 실현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 주장 한다”며 “남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반면 그는 “이런 견해는 당연히 여성주의자들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며 “그러나 이러한 남녀 차이에 대한 생각은 곧 남녀 차별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즉 그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무리”라며 “몸은 남자인데 마음은 여자라는 것은 부조화 상태”라고 꼬집었다.

한편 그는 “젠더불쾌증(gender dysphoria)은 일반적으로 트랜스젠더라 부르는 상태”라며 “1980년대까지 의학계에서는 ‘성 정체성 장애’(sexual identity disorder)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성 정체성 장애라는 병명은 이후 젠더 정체성 장애로 바뀌었는데, 최근에는 다시 젠더불쾌증이라는 병명으로 바뀌었다”며 “증상 명을 병명처럼 사용한 것은 트랜스젠더가 질병이라는 이미지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성 정체성 장애(젠더불쾌증)의 극단적 형태는 성전환증(transsexuality)”이라며 “이는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바꾸기 위해 성전환 수술이나 성호르몬 대치요법을 시행하는 경우”라고 전했다.

실례로 그는 “2018년도 WHO의 제11판 국제질병분류는 젠더정체성 장애를 ‘젠더불일치(gender incongruence)로 바꾸었다”며 “그리고 질병이 아닌 ’성관련 건강문제‘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고 여기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그는 “젠더 정체성 장애를 정신장애로 보지 않게 하려는 배려 때문”이라며 “그러나 이들 병명을 여전히 질병 분류에 두는 이유는 의료에서 성전환 시술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전했다.

그는 트랜스젠더의 원인을 설명했다. 그는 “트랜스 젠더는 자신의 성(sex)이 젠더에 일치되지 않아 비순응(gender-nonconformity)을 보인다”며 “이는 사회의 일반적 젠더 규범에 저항한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특히 그는 “주어진 사회 환경이나 규범(norm)에 순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는 의식이 있는 사람 특별히 젊은이들에게는 도전적 과제”라고 덧붙였다. 일례로 그는 “청소년에서 보는 비순응은 자존심이 강할 때도 나타날 수 있으나 자존심이 약할 때도 반동형성으로 나타날 수 있어 잘 살펴야 한다”며 “비순응은 자신을 돋보이게 해 주지만 위험이 뒤따르기 쉽다”고 설명했다.

반면 그는 “순응은 안전하지만 죄의식이나 열등감이 생겨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게 그는 “청소년기에 정체성 획득 과정에서 한동안 비순응과 저항을 보이지만, 대개 청년기로 성장하면서 순응적이 된다”며 “젠더 비순응도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순응적으로 변화되는 경우가 많으며, 소아-청소년기의 비순응은 매우 유동적(fluid)임을 이해하여야 한다”고 전했다. 즉 정신과적 치료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여 그는 현재 정신과적 치료 방법을 소개했다. 이어 그는 “소아기 때 시행하는 확인 치료(affirmative therapy)는 환자들의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존중하고, 그대로 되도록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젠더 불일치를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닌,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그는 “환아와 젠더불쾌증 보다 가족, 주변사람들이 stigma를 갖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이는 부모가 자녀의 트랜스젠더임을 인정하거나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며 “최근 미국에서는 소아에서 젠더 불쾌증을 발견해 회복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압력 또는 치료를 성급하게 포기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죤스 홉킨스 의대 정신과 교수였던 McHugh을 빌려, “성전환 수술은 정답이 아니라고 하면서, 소아-청소년기의 비 순응은 매우 유동적(fluid)일 수 있어 성급하게 치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또 그는 뉴욕 주 정신과 의사 Zucker와 Bradley Zucker를 빌려, “성전환의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방법들은 비용만 많이 들고 환자를 결코 만족시켜 주고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며 “트랜스젠더를 시스젠더로 치료하는 방법으로서 정신치료를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동성의 사회적 기술과 동성 간 우정을 발달시키는 것”이라며 “이 경우 생물학적 성에 적합한 행동을 놀이치료를 통해 친구나 어른들을 통해 배우는 role model 방법 등 행동수정(behavior modification) 기법을 주로 이용 한다”고 그는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서 두 가지 견해를 절충해, 세 번째 견해는 기다려보라는 것”이라며 “환자 개인과 가족의 정신 병리에 대한 치료를 지속하면서, 젠더불쾌증이 청소년기와 성인기로 지속되는지에 대해서는 지켜보며 기다리는(watchful waiting) 방법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트랜스 젠더의 정신과적 치료는 아직 진전이 되지 않았고,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지에 대한 ‘통제된 치료 후 장기간 추적 연구’가 드물다”며 “현재로서는 치료 방법에 대한 결정은 case-by-case”라고 설명했다. 이유로, 그는 앞서 언급했던 정신과 교수 McHugh를 인용해 “트랜스젠더에 대해 성전환 수술은 정답이 아닌데, 더 나은 방법에 대해 그동안에 의사들은 연구하지도 않았고 치료나 예방을 시도하지 않아 시간 낭비했다”고 비판했다. 트랜스젠더를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보아 치료방법을 고안하기보다, 환자의 젠더 불일치를 그대로 용인해 의사에 따라 성전환 수술을 권장하는 종래의 치료가 역설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비용 낭비를 초래했다는 얘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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