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교회 제공

[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2015년 우리는 흔히들 한국선교 130주년이라 말한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땅에 들어와 선교를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삼은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의 교회는 어디에서 발생했을까? 그 해답을 남대문교회(담임 손윤탁 목사)가 제시했다.

남대문교회는 20일 오후 1885년 6월 21일 첫 공식주일예배 130주년을 기리며 기념 역사포럼을 개최했다. 손윤탁 목사는 "한국교회 130년의 역사는 제중원에서 시작됐다"고 밝히고, "제중원이 겉으로는 병원이었으나 실제로는 교회"라며 "고종은 병원과 학교는 허락하면서도 교회는 허락치 않았지만, 선교사들은 제중원을 선교 기지로 삼고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세례와 성찬을 행함으로 한국교회를 태동시켰다"고 했다.

때문에 손 목사는 "한국 최초의 공식적인 주일예배는 제중원에서 시작된 것"이라 말하고, "1885년 6월 21일 주일 저녁, 알렌 선교사 부부와 헤론 선교사 부부, 스크랜튼 선교사의 어머니가 참석해 한국 최초의 주일예배가 드려졌으며, 그 후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 외교관 포크도 이 예배에 참석하게 됐다"고 밝혔다. 더불어 "최초의 성찬식(1885년 10월 11일)과 세례식(1886년 4월 25일)도 거행됐으며, 한국에서 행해진 세례식으로 처음 한국인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알렌의 어학교사인 노도사(본명 노춘경, 1886년 7월 18일)"라 전했다.

이후 제중원신앙공동체에서 시작된 예배는 외국인을 위한 연합교회로, 1902년에는 조선장로교공의회가 소집되는 장소로도 활용됐던 중앙교회로 이어지며, 세브란스 남문밖교회로 발전하면서(1904년) 에비슨의 '트라이앵글 선교전략'에 따라 '교회 병원 학교'라는 삼각선교의 한 축을 수행한 한국교회의 뿌리가 된다.

손윤탁 목사는 제중원 남대문교회가 한국교회의 못자리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해 왔다고 말하고, "초기 한국교회의 지도자인 서상륜 함태영 김익두 같은 이들이 조사와 목사로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을 위한 구심점이 됐으며, 해방 후에는 '서울역 앞 남대문교회'가 중요한 약속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면서 300만 구령운동, 피어선 박사의 부흥회 등이 월드비전의 터를 닦기도 했다"고 전했다.

더불어 변창욱 교수(장신대)는 "제중원 신앙공동체 형성과 선교적 함의"(1884~1904)란 주제로 발표하면서, ▶알렌의 제중원은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보여줬다 ▶제중원은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의료선교의 필요성을 보여줬다 ▶제중원은 창의적 접근지역에서의 의료선교의 역할에 대한 많은 논의를 촉발시켰다 ▶제중원 신앙공동체는 한국 개신교 전래의 두 경로가 서로 만나는 연대(solidarity)의 장을 제공해 줬다 ▶제중원 예배공동체는 장·감 선교사들이 초교파 협력의 기반을 다지는 기회를 제공했다 ▶제중원 신앙공동체를 통해 형성된 연합정신은 초교파(에큐메니칼) 선교를 가능하게 했다 ▶제중원 신앙공동체는 한국교회의 자생적 신앙공동체 형성의 모판 역할을 했다 ▶제중원 신앙공동체는 초교파 협력의 장을 제공했지만, 이후 장·감 교파교회 태동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고 평했다.

이외에도 역사포럼에서는 "연세대학교 의료원 입장에서 의미 재고"(정종훈) "알렌과 델라웨어제일장로교회, 미국교회"(제임스 스티브 쇼) "남대문교회의 교회창립일에 대한 재고"(임희국) 등의 발표가 이뤄졌다. 한편 남대문교회는 130주년을 기념하며 19일 저녁에는 기념음악회를 열었으며, 21일 주일에는 기념예배를 개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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