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소설가였던 나혜석(1896-1948)은 1930년 이혼 후 1939년 잡지에 '이혼 고백장'이라는 글을 실어 자신의 결혼과 이혼 과정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 글에서는 그는 가부장적인 인습과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이중적인 정조 관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 글을 발표한 후 그녀에게 쏟아진 것은 동조와 공감보다는 비난과 조롱에 가까웠다.

글과 예술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세상과 맞서려 했던 그는 세상과의 계속된 불화 속에 53세의 나이에 행려자로 거리에서 죽음을 맞았다.

문학 연구자들로 구성된 열린문학연구회가 엮어낸 '그녀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했다'(한길사 펴냄)는 나혜석을 비롯해 자유를 갈구하며 '불꽃처럼 살다간' 국내외 여성작가 12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온몸으로 운명을 개척해온 이들의 삶을 그들의 작품세계와 함께 풀어냈다.

시인 뮈세와 피아니스트 쇼팽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상드(1804-1876)도 전통적인 결혼관과 여성관에 일침을 가했다는 점에서 나혜석과 비교할 수 있다.

"여성은 심한 취급을 당하고 있다. 여성을 저능하게 만들어놓고 그 저능을 비난하고 무지를 경시하며 그 지식을 조롱하고 있다. 연애에 있어서는 창녀 취급을 당하고 부부의 애정에 있어서는 하녀 취급을 받는다. (중략) 더구나 정조라는 멍에로 여성을 속박해놓으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남성이다."(87쪽)
뮈세와의 결혼 생활을 끝낼 때 상드는 프랑스 최초로 이혼 소송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되찾기도 했다.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도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유부남과 동거 스캔들을 일으키는 등 시대가 규정한 틀을 끊임없이 거부한 여성이다.

"엘리엇의 인생은 삶의 주체로서 이들 인습에 대한 본인의 자각을 실천에 옮기고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어나간 용기 있는 여성의 여정이었다."(129쪽)
이 책에는 이밖에도 사포, 황진이, 버지니아 울프, 히구치 이치요, 딩링, 시몬 드 보부아르, 루이제 린저, 샤오홍, 실비아 플라스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

연점숙 경희대 교수는 "여성들의 사회적 위상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상승된 지금, 이런 사회적 변혁의 큰 씨앗이 되어준 여성 문인들의 삶을 되짚어보는 작업은 대단히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37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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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작가 #자유로운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