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끝까지 떠나지 않은 세 여인이 나온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는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을 찾았다가 천사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처음 듣게 된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세 여인을 그리스도 부활의 첫 증인으로 기록했다.

그 후 부활하신 주은 두려움에 떨던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셨다. 의심하던 이들에게 못 박힌 손과 발을 보이시고, 물고기를 드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며 부활의 산 증거를 보이셨다. 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증인들이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주님이 사도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당부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열한 제자와 120명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충만한 은사를 받고 각기 세상으로 흩어져 ‘부활의 증인’으로서 전도에 매진하게 되는데 이것이 초대교회의 출발이자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회의 뿌리다.

전 세계 교회들이 해마다 부활절을 기념하는 예배를 성대히 드리고 다양한 축하예식을 갖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중심에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전 세계 교회 중에서도 유독 부활절과 깊은 연관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37년 전 이 땅에 처음 복음을 전파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 날이 바로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까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이 땅끝까지 뿌린 복음 씨앗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서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고, 그 시점이 부활절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증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바로 주님이 이 땅에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시기 위해 특별히 한국교회를 선택했다는 데 있다.

복음의 불모지였던 이 땅 곳곳에 세워진 교회와 기독교학교를 통해 신앙심이 깊은 지도자들이 나왔다. 주님은 이들을 부활 신앙으로 연단하셨다. 교회사가들은 이들이 일제 강점기에 자기를 태워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되었던 것은 장차 한국교회를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삼으려는 주님의 섭리였다고 말한다. 주기철 목사 같은 이들이 보여준 불굴의 신앙 절개가 이후 한국교회가 30배 60배 100배로 성장하는 살아있는 겨자씨가 되었다는 게 그 증거다.

6.25 전란과 사회 변혁기를 거치며 세계교회사에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교회가 급성장 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초기 신앙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 역사에서 자랑거리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일 때 일제 권력에 기생해 부귀영화를 누린 교회 지도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에 부화뇌동해 1938년 2월 장로교 평북노회를 시작으로, 9월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함으로써 ‘배교’에 앞장섰다.

결국, 이런 문제들이 해방 이후 좌우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교회에까지 불똥이 튀게 되면서 6.25 전란의 와중에 1952년 고신, 1953년 기장에 이어 1959년 장로회 제44회 총회에서 통합과 합동이 분열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교단 분열을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의 증인’인 교회가 다투고 나뉘는 것은 주님의 몸을 찢는 행위에 비견될 만큼 큰 죄악이라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는 한동안 ‘부활’은 곧 ‘연합’이라는 상징성으로 통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하나뿐인 연합체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창립으로 둘이 되면서 한국교회가 보수와 진보로 극명하게 갈렸지만 그래도 부활절 연합예배만은 공동 주최의 틀을 유지했던 건 교회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의식을 서로가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이마저도 요원해졌다. 한기총에서 한교연이 창립하고 다시 한교총이 생겨나면서 한국교회 연합의 상징인 부활절연합예배도 각 연합기관의 전유물로 전락한 느낌이다. 이렇게 된 데는 각기 복잡한 사정과 형편이 얽혀있겠지만 연합기관이 도리어 ‘연합’을 깨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부활절 연합예배만 봐도 한교총을 중심으로 74개 공교단이 참여하는 부활절 연합예배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한교연과 한기총 인사를 비롯, 380개 교단이 참여하는 부활절 연합예배는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1시간 시차를 두고 각기 열린다. 이들은 참여 공교단 수 등을 근거로 서로 정통성을 내세우고 있으나 참가 규모를 가지고 경쟁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부활절 연합예배는 분열의 상처를 지닌 한국교회가 이를 극복하고 사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출발한 행사다. 그런 깊은 뜻과 의미를 지닌 연합행사가 근래 와서 교단과 단체 등의 주도권 경쟁으로 변질되고 있음은 유감이다. 혹자는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되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으나 이 또한 핑계일 뿐이다. 그렇담 한기총과 NCCK가 공동 주관하던 부활절 연합예배는 뭐란 말인가.

이제 한국교회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에 답해야 할 때가 됐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인가 아닌가. 한국교회 구성원인 우리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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