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백석대 채영삼 교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은 ‘똑똑한’ 아이다. 학교 석차가 아니다. 가족과 이웃들 사이에서 ‘덕’을 세우고 ‘선’을 행할 줄 아는 일에 똑똑하다. 간질이 걸린 학우를 그녀에게 맡길 만큼, 덕선은 선생님의 신뢰를 받는 믿음직한 성품의 아이이다. 하지만, 고3인 덕선이는 중학교 때 배운다는 그 ‘이차방정식’도 모른다. ‘왜 a는 1이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런 아이에게는 수학공식이 아니라, 문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이해시키면 탁월한 성장을 보일 가능성이 많다. 이해심이 많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정서를 잘 읽어내고 아주 적절하게 응답하는 자질이 많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인간관계나 심리, 문학이나 경영과 같은 인성중심 과목을 가르친다면, ‘덕선’이는 누구보다 더 탁월하게 성장하고 사회에 기여할 길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공교육이 문제라는 소리는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시험과 수능을 위한 공부 중심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법조문을 외우고 함수 문제를 능숙능란하게 풀 수 있는 ‘지식형’ 학생의 수는 정해져있다. 모두가 법관이 될 수는 없다. 모두가 NASA에 취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단조롭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각기 은사대로 필요하다. ‘응팔’이 보여주는 고등학교 교육의 안타까운 단면은,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억지로 배우는 일에 아이들을 가두어 둔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일평생 살아가면서 필요한 수학이란, ‘내 용돈 10만원에서 5만원을 부모님 선물로 사는데 쓰면 5만원이 남는구나’ 정도이다. 그 이상은 필요하면 따로 배우면 된다. 한 번은 중학생이 배우는 ‘광물’의 종류를 묻는 시험문제를 본 적이 있다. 탄광에서 일할 광부도 그런 희귀한 종류의 광물들을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너무 많이 가르친다. 암기력 테스트일 뿐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암기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오늘 날 그런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공교육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이를테면, 민주시민 교육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며, 민주 시민으로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지식과 훈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이해와 노동에 관련된 문제 같은 것도 미리 배워야 한다. 혹은 더 절실하게도, 부모 되기, 결혼, 가정이루기, 아니면 오늘 날 갈수록 많아지는 ‘깨진 가정에서 살아가기’라든지, 상처로부터 회복되고 정상적으로 작동해야하는 ‘정서 탐구 영역’같은 과목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인 시간관리, 돈에 대하여, 지역사회와 다민족과 장애우, 약자들과 다양성에 대하여, 혹은 창의성 개발도 필요한 과목이다. 무엇보다 일찍부터 자신의 은사와 성향에 맞는 교육과 훈련을 찾아갈 수 있는 맞춤식 교육의 트랙들을 개발하는 것이, 아이를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엎드려 자야하는 아이들을 줄여야 한다. 학교를 살아있는 생명의 장으로 만들 희망이 생겨나야 한다.

교육이란, 한 사람이 그 사람다운 장점과 성품을 발견하여 찾아가도록 돕는 과정이다. ‘허니칩’이 맛있다고 똑 같은 과자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다. 누구나 똑같은 과정 속에서 남보다 잘해야 하는 경쟁만도 아니다. 각자가 잘 하는 트랙에서 뛰도록 트랙을 만들어주고 거기서 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삶에서 필요한 실제적인 지식들,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며 또한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게 해주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지식들을 주어야 한다.

‘응팔’에 나오는 정봉이는 7년째 재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알 것은 다 안다. 7년째 재수하면서 날마다 쭈그리고 마주하는 책상에 앉아, 정봉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종이로 학을 접고 ‘앉아 있다.’ 한심해 보이지만 또한 그것이 이 차가운 세상을 뜨겁게 살아가게 하는 사람의 마음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오늘날 ‘지식’에 가득차서 사회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도, 약자와 억울한 자들을 ‘공감’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악한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봉은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어떻게 하는 것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과 행동인지 잘 알고 있다. 추위에 떨면서 기다린 ‘그녀’가 나타났을 때, 정봉은 늦은 상대방이 미안해 할까봐 자신도 이제 막 도착했다고 말한다. 장미꽃다발을 든 손은 이미 파랗게 얼어가고 있는데. 알 것은 다 안다. 온갖 잡학에 능한 정봉이는 관리직이나 매니지먼트에 적합하다. 정봉에게는 사람들과 귀한 것들을 지켜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길러주면 된다.

그런 것을 길러주는 과목은 없을까. 그런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는 공교육은 없을까. 공교육 안에서 좌절하는, ‘학교 밖에서라야’ 비로소 숨을 쉬는 수많은 오늘날의 ‘덕선과 정봉’이를 위하여, 교육은 반드시 제 모습을 찾아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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