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스티븐 제임스의 기고글인 '교회의 가장 든든한 제자훈련 자원은 연장자 교인들일 수 있다'(Older members may be your church's best discipleship resource)를 10월 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스티븐 제임스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세븐스프링스에 위치한 세븐스프링스침례교회(Seven Springs Baptist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리버티대학교 롤링스 신학대학원(Rawlings School of Divinity)에서 응용 변증학(Applied Apologetics)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목회자이자 변증학 연구자로서 그는 오늘날 문화 속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질문과 경쟁하는 진리 주장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있는 성경적·신학적 논의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매주 주일이면 어느 시골 교회의 문이 어김없이 열린다. 주일학교 교사는 어떤 주에는 15명, 또 어떤 주에는 8명이 모이는 반을 가르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예배 전에는 성도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족의 안부를 묻고 고민을 나누며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예배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주일 식탁에 둘러앉고, 며칠 뒤에는 많은 이들이 다시 교회에 모여 성경을 펴고 기도의 자리를 지킨다.
이러한 모임 사이사이에는 병원 심방과 장례식, 힘겨운 한 주를 보내고 있는 가정에서 걸려 오는 전화가 있다. 너무도 익숙한 이 일상의 리듬 속에는 수십 년 동안 묵묵히 그리스도를 따라온 신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가 너무 평범하고 당연하게 여겨진 나머지, 교회 공동체는 정작 그들이 나눌 수 있는 영적인 보화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교회는 당연히 새로운 영혼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다음 세대를 어떻게 제자로 세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미 곁에 앉아 있는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을 지나친 채 외부의 자원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찾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교회가 시골에 있든 변두리에 있든 대도시에 있든 상관없이, 오랜 세월 믿음을 지켜온 연장자들의 경험은 교회의 제자훈련 과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오랜 세월의 신실함이 가르쳐 주는 것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영적으로 성숙한 것은 아니다. 교회에 오래 출석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지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회개와 사랑, 인내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 막 신앙의 여정을 시작한 사람에게 가르쳐 줄 것이 많다.
그들은 자녀를 길러내고,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뼈아픈 실망을 견디며, 주변 상황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때에도 끊임없이 성경으로 눈을 돌려온 사람들일 수 있다. 슬픔 가운데 있거나 응답받지 못한 기도로 씨름하고 있는 젊은 신자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시간을 통과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법을 배운 누군가의 살아 있는 간증이 절실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대를 이어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시편 145편 4절은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하신 일을 선포하리로다”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연륜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신의 성공담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수많은 실패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붙들어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도서 2장 1~8절 역시 건전한 가르침을 장년층과 청년층의 성품과 삶에 연결한다. 특히 나이 든 여성들에게는 선한 것을 가르치고 젊은 여성들을 훈련하도록 권면한다. 이 말씀은 진실한 삶이 가르침에 신뢰성을 더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제자훈련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결혼과 절제, 직장생활, 자녀 양육, 인간관계 등 신앙이 실제 삶 속에서 드러나는 모든 영역으로 뻗어 나간다.
이러한 말씀은 교회가 젊은 신자들이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온 연장자들의 조언을 배울 수 있도록 관계를 만들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같은 예배당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그런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 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관계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출석 통계표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출석 인원과 세례자 수, 헌금 내역 등은 교회가 사역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지표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가 성도들 사이에서 오가는 영적인 도움과 돌봄의 깊이까지 온전히 보여주지는 못한다.
최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한 과부의 돌봄은 사역 보고서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가뭄과 재정적 불확실성이라는 거센 풍파를 견뎌낸 은퇴한 농부는 고난이 곧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뜻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젊은 그리스도인을 붙들어 줄 수 있다. 자신의 과거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신자는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회개와 화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삶으로 보여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이 성경적 가르침을 대체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교회를 합리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진심 어린 조언이라도 반드시 성경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험난한 삶의 자리에서 오랜 세월 성경의 가르침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법을 배워온 사람들의 가치를 깊이 인정해야 한다.
규모가 작은 시골 교회에서는 수십 년 동안 삶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한다. 성도들은 서로의 결혼식과 질병, 한 가정이 견뎌낸 긴 세월의 고통을 기억한다. 교회가 새로 온 사람들을 이미 굳어진 관계 밖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이 공동체 안으로 따뜻하게 초대한다면, 그러한 친밀함은 제자훈련의 훌륭한 토양이 될 수 있다.
큰 교회도 같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 다만 연령대별로 공동체가 분리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생애주기에 따라 나뉜 사역은 분명 유용한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동시에 성도들이 세대를 넘어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직한 대화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신앙을 전수하는 일은 단순히 연장자들을 초대해 “예전에는 교회가 이랬다”는 식의 추억을 듣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나온 경험이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에게 어떤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목회자나 소그룹 리더는 성숙한 신자에게 깊은 상실의 시간을 통과할 때 성경이 어떻게 그를 붙들어 주었는지 나누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젊은 부부가 노부부와 식사를 함께하며 용서와 인내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지 물을 수도 있다. 교회가 정기적인 기도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 자원하는 연장자와 청년을 연결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이러한 관계를 형성할 때는 서로의 상황과 필요를 고려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질문은 복잡할 필요가 없다. “젊었을 때 하나님에 대해 잘못 이해했던 것은 무엇인가”, “기도가 바라는 방식대로 응답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가”, “결혼생활이나 자녀 양육을 다시 한다면 무엇을 다르게 하고 싶은가”, “끝까지 그리스도를 신뢰하도록 붙들어 준 성경 말씀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매끄럽게 포장된 대답보다 투박하더라도 정직한 대답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젊은 그리스도인에게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의 성공담보다 실수와 회개,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었던 진솔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연장자의 조언은 완벽한 신앙생활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보다 더 큰 위로와 유익을 줄 수 있다.
연장자들 역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와 기술, 직업 환경, 관계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들의 질문과 고민 역시 진지하게 들을 가치가 있다. 건강한 관계는 한쪽만 가르치고 다른 쪽은 듣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성경을 모든 경험과 조언을 판단하는 최종 기준으로 삼으면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배우는 관계다.
이미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교회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성도들이 서로에게서 배우도록 돕는 일은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도들이 교회 밖에서도 신실하게 살아가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킴으로써 그 사명을 더욱 굳건하게 한다.
새로운 제자훈련 교재를 구입하거나 프로그램을 추가하기 전에 교회는 먼저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우리가 길러내고자 하는 성품을 이미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몸의 각 지체를 제자리에 두셨다(고전 12:18). 오랜 세월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발휘되어 온 은사와 경험 역시 교회가 귀하게 여겨야 할 영적 자산이다.
매주 예배당에서 스쳐 지나가는 성도들 가운데에는 깊은 슬픔과 쓰라린 실패,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삶으로 배운 이들이 있다. 그들을 대화의 자리로 초대하고,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질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그들의 살아 있는 간증이 이제 막 그리스도를 따르는 법을 배우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회의 가장 귀한 제자훈련 자원 가운데 일부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외부 자료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일 수 있다. 오랜 세월 하나님을 따라 걸어온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한 세대의 믿음은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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