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다 알거
완다 알거.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완다 알거의 기고글인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How do you recognize God's voice?)를 9월 3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완다는 35년 넘게 예배 인도자, 교사, 저자, 치유·상담 사역자, 강연자로 섬겨 왔다. 아홉 권의 책을 집필한 저자로서,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통해 성숙해 가도록 격려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우리가 귀 기울일 수 있는 목소리는 너무나 많다. 친구와 가족, 동료, 교회와 지역사회의 사람들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고, 소셜미디어 피드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붙드는 온라인상의 목소리도 있다. 이 목소리들은 저마다 특정한 이야기와 관점,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자신들의 방향으로 끌어당긴다.

우리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있다. 기대와 감정, 두려움과 욕망을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다. 주변이 아무리 조용해도 머릿속은 좀처럼 고요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대화를 되짚고, 책임과 결정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뉴스와 일정, 실망과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을 끊임없이 처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면, 이 수많은 소음 가운데 어떤 목소리에 가장 큰 권위를 내어줘야 하는가. 누구에게 우리의 목적과 방향을 맡겨야 하며, 진리와 소망과 생명으로 우리를 이끌기 위해 다른 모든 소리를 뚫고 들려와야 할 목소리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목소리는 하나다.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한다고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진리와 지혜의 근원도 하나다. 그러나 문제는 수많은 목소리 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보고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데 있다.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요 10:4~5).

이 말씀에는 ‘친밀함’이라는 개념이 담겨 있다. 양들은 단지 목자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음성을 안다. 오랜 시간 목자와 함께하면서 그 음성의 특징을 익혔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와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친밀함과 분별력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갈 때 시작된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익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나님께도 그분만의 고유한 ‘성문(voiceprint)’, 곧 목소리의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분의 마음을 알아갈수록 그분이 어떤 방식으로 말씀하시는지 익숙해지고, 무엇을 기뻐하시며 무엇을 슬퍼하시는지 배우게 된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의 연약함과 반역, 믿음과 회개, 불의와 겸손, 영적 갈급함에 어떻게 반응하시는지를 본다. 무엇을 칭찬하시고 무엇을 책망하시는지 알게 되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아차릴 때가 있다. 몇 마디만 들어도 목소리의 톤과 사용하는 표현, 말하는 방식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잘 알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도 알아보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그래야 한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을수록 하나님의 생각과 가치, 일하시는 방식이 점점 익숙해진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찾아다니는 수준을 넘어, 어떤 감동이나 생각이 정말 ‘하나님의 음성다운가’를 분별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영적인 감동이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은 우리 자신의 욕망이나 두려움, 기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될 수 있다. 성경은 영적인 영역에서도 분별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요일 4:1)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놓칠 수 있다

예수님은 성경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성경이 증언하는 분을 알아보지 못했던 종교 지도자들과 여러 차례 충돌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그들은 본문을 알고 있었지만, 그 본문이 가리키는 인격을 놓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일은 단순히 성경을 많이 읽는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마음이 익숙해질 때까지 읽고, 그분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까지 읽으며, 그분의 진리가 우리의 사고와 본능을 빚도록 해야 한다.

마침내 어떤 생각이나 감동을 마주했을 때 “이것은 내가 아는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한다” 또는 “이것은 하나님의 방식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말씀에 익숙해져야 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분별

예수님은 광야의 시험에서 이러한 분별력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셨다. 사탄은 노골적인 거짓말만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예수님을 시험했다.

그 순간 예수님이 분별하신 것은 단순히 ‘성경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말씀을 잘못된 목적을 위해 왜곡하는 것의 차이를 분별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했다. “또 기록되었으되”(마 4:7). 예수님은 한 구절만 알고 계셨던 것이 아니다. 성경 전체가 드러내는 아버지의 뜻과 성품을 알고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한 구절이 문맥에서 벗어나 잘못 사용되는 순간 그것을 알아보실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같은 분별력이 필요하다. 성경 구절을 많이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형성하도록 내어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 속에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다른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을 때 즉시 어딘가 어긋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가장 큰 장애물이 ‘나 자신’일 때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자신의 ‘필터’다. 때로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외부의 유혹이 아니라 우리 자신일 수 있다.

무언가를 너무 간절히 원하면 그것을 하나님이 약속하셨다고 착각할 수 있다. 어떤 일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면 사소한 경고도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상황을 자신의 결론을 확증하는 증거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감동만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까지 비춘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어떤 메시지가 진짜인지 가려내는 기준만 제공하지 않는다. 그 말씀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도 드러낸다. 우리의 동기를 밝히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전제에 질문을 던지며, 숨겨진 두려움과 욕망을 마주하게 한다. 우리의 사고방식 가운데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됐고 무엇이 문화와 경험, 실망과 개인적 취향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자기 점검과 겸손이 필요하다.

소음을 줄여야 들리는 것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정보와 의견, 논쟁과 헤드라인, 알림과 논평 속에서 살아간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우리의 생각을 차지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내면을 정돈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때로 너무 많은 소음을 품은 채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제대로 귀를 기울이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셔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정해놓기도 한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배우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집중이 필요하고, 우리 안팎에서 앞다투어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잠시 잠재울 시간이 필요하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 쌓일수록 성령의 음성이 지닌 특성과 무게를 조금씩 더 분명하게 알아가기 시작한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기 어려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멈추어 귀 기울이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별은 관계 속에서 자란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음성을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배우는 것은 관계적인 과정이며, 관계는 시간을 통해 깊어진다.

우리는 듣고 반응한다. 때로는 자신이 잘못 이해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고 다시 귀 기울이면 된다. 실수했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겸손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우리의 실수도 훈련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판단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알게 되고, 자신이 어떤 편견과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지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조급함과 하나님의 평강이 어떻게 다른지 조금씩 구별하게 되고, 영적인 귀는 점점 더 세밀하게 조율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순종하며, 공동체 안에서 검증하고, 때로는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자라난다.

세상의 수많은 목소리를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 안에 오래 머물 때 우리 안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뿐 아니라 그분의 성품과 방식이 어떤지를 점점 더 깊이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친밀함이 쌓일수록 수많은 목소리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일도 조금씩 분명해진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이유는 특별한 기술을 배웠기 때문이 아니다. 오랫동안 목자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가는 가장 깊은 길은 결국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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