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이 사역을 할 당시에는 "영지주의(Gnosticism)"라는 이단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육체와 물질을 악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한 것입니다. 육신은 악한 것인데 신성한 하나님의 아들이 악한 육신을 입고 오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지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사고였고, 이러한 거짓교리에 수많은 성도들이 혼들렸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외첬습니다: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정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 분은 참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을 강조하는 것, 그것이 사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한 복적 중에 하나였습니다.
박형용 – 예수님 자기 소개서
우리가 믿는 성경은 그러한 신과 인간의 만남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을 인간 마리아가 성령과 만나서 예수님을 탄생하게 된 것으로 오해하면 큰일납니다. 마리아는 성적 관계를 통해 예수님을 출산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신적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신 것입니다. 우리의 결단과 공로와 노력이 아닌 절대 초월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구원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그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한 삶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들의 마땅한 삶입니다. 효과적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그가 하신 모든 일을 그대로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행위대로 갚아 주신다는 말씀이 이뤄질 것을 알기에 우리는 기꺼이 아무도 찾지 않는 좁은 문을 벌컥 열고, 지리멸렬할 수 있는 좁디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카운팅 되고 있다! 이 말을 기억에 새겨 넣어야 합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세신 바 되시는 주님이 우리의 행실과 말 한마디, 폐부 깊숙이 품은 작은 생각까지 감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에 따라 바르고 의로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임동현 - 마태복음에서 예수를 읽다
정말 겸손한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서 요즘 대다수 사람이 말하는 '겸손'을 예상하지 말라. 정말 겸손한 사람은 늘 자신이 극구 아무것도 아니라며 아양을 떠는 느끼하고 역겨운 부류가 아니다. 오히려 정말 관심을 갖고 당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는 쾌활하고 똑똑한 친구로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그가 싫다면 이는 삶을 그토록 쉽게 즐기는 그를 당신이 약간 시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겸손을 의식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것이다. 당신의 자아 전체를(모든 소원과 경계심까지) 그리스도께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은 두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C. S. 루이스 - C. S. 루이스의 인생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