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떡과 잔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요,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다.” 이 말씀은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구약의 유월절을 완성하는 새 언약의 선포였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친히 자신을 내주시며, 모든 믿는 자에게 죄 사함과 보호하심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찬을 대할 때, 단지 떡과 포도주를 입으로 먹고 마시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이신 주님의 몸과 피를 우리 심령 깊은 곳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보혈은 과거의 사건에 머물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서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김요한 – 축복의 성만찬
삶이 거꾸로 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질서와 패턴을 훈련시키시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십니다. 그 첫걸음은 작은 순종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유는 값진 선물이지만 그 무게가 우리를 짓누를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게 맡겨라. 내가 너와 함께 지겠다.” 이 은혜의 초대에 응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누릴 수 있습니다. 회개는 결코 개인의 내면적 변화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참된 회개는 공동체 안에 신뢰, 용서, 회복의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회개와 고백, 용서가 삶의 중심이었고 복음의 능력이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그분을 우리의 기쁨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보다 그분이 우리의 만족과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김지훈 - 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난 은혜
기도란 인간과 창조주 사이에 일어나는 폭넓은 상호 교류를 드러내는 하나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양심의 감동을 통해, 영감받은 이들의 삶과 글을 통해,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게 자신을 알려 주신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말씀하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인류는 감사드리고,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합니다. 경외하고 경탄합니다. 깊이 슬퍼하고 크게 뉘우칩니다. 섬김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을 추구합니다. 이 모든 응답이 우리 마음과 정신과 의지가 하느님을 향해 움직이는 과정입니다. 때로 이 움직임을 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성서 저자들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전체를 말하고 듣는 모습으로 묘사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시는 음성에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듯 말로 하는 대화는 언어와 침묵, 기다림과 행동을 아우르는 관계 속 작은 단편일 따름입니다.
마이클 램지 - 멈추어라, 그리고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