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시간 또한 경제적 잣대로 가늠합니다. 시간당 받는 노동력의 대가로 가치를 가늠하고 많은 대가를 받는 이들에게 성공한 인생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줍니다. 이런 풍조 속에서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일은 세상의 허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허공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본들 빈손인 것처럼 전업주부의 삶은 이처럼 존재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삶 하나하나에 글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삶의 무게를 달아 주고 싶었습니다. ‘여백’, 저에게 붙여 주는 이름표입니다. 전업주부에게 붙이는 존재감입니다. 맛깔난 조연이 주연을 빛나게 하듯, 여백 없이 빛나는 존재는 없습니다. 존재의 배경이 되어 주는 공간이 여백입니다. 글을 쓰면서 제가 그런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간혹 허무한 날이 나를 찾아올 때면 글들이 저를 위로했습니다. 여백의 시간은 가장 존재다운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김선영 – 여백으로 살아가기
다윗이 지혜롭게 행동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삼상 1:14) 다윗의 지혜는 광야에서 많은 연단과 경험을 통해 얻어진 “사칼(지혜)”이다. 다윗은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수많은 훈련을 하였고, 거기에서 나온 말씀의 지혜는 능력이 있고 어떤 유혹에도 타락하지 않았다. 솔로몬에게도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다.(왕상 3:12) 그러나 다윗의 지혜와 솔로몬의 지혜는 다르다. 솔로몬의 지혜는 “호크마”이다. 호크마는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가 아닌 명철하고 재치 있는 천재적인 지혜이다. 솔로몬은 광야의 연단을 경험하지 않은 왕으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지혜(호크마)를 부어주셨다. 솔로몬은 지식적 지혜(호크마)를 체험적 지혜(사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그의 말년은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광야 같은 캄보디아에서 30년을 선교사로 보낸 것에 참으로 감사하다. 여기에서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배웠다. 말씀을 광야에서 받는 것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 받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말씀에 대한 체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황신 – 부름에서 택함으로
하나님, 오늘은 하루 종일 너무 우울했어요. 이런 감정이 왜 드는지 뚜렷한 이유도 모르겠고, 그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까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너를, 네가 기뻐할 때만 널 사랑하는 게 아니야. 나는 네가 우울할 때나 슬퍼할 때도, 괴로움 속에서 발버둥 칠 때나 스스로 자책하며 무너지고 있을 때도 언제나 너를 사랑해. 하나님, 요즘 저는 영적으로 많이 침체되어 있는 것 같아요. 네가 출근길에 찬양을 들으며 나를 생각하는 것도, 길을 걸으며 나에게 잔잔한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도,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너는 나의 임재를 깊이 누릴 수 있단다. 제 편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직장에서, 이 모든 적응의 시간을 저 혼자 견뎌내야 한다는 게 너무 큰 압박감으로 다가와요. 너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알 수 없는 그 모든 순간에 나는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었단다. 그 어떤 순간에도 너는 혼자였던 적이 없었어.
류하은 – 하나님께 DM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