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임즈베리 시편집ㅣ젖먹이는 마리아ㅣ1240-50년경ㅣ양피지에 채식(彩飾) Amesbury PsalterㅣMaria Lactansㅣc.1240-50ㅣIllumination on parchmentㅣ30.3X21.6 cmㅣAll Souls College, Oxford

아기들의 놀이 중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엄마의 젖을 먹으며 노는 것이 첫 째일 것이다. 그러나 아기예수는 적어도 13세기까지는 성서화에서 젖을 먹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성경에도 어디를 살펴봐도 젖 먹었다는 기사는 없다. 아기예수는 젖을 먹지 않고 자라난 초인이란 말인가?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예수의 젖을 먹는 모습은 초기 곱틱 미술에서도 비슷한 도상이 보이지만, 분명하게 보이기는 13세기에 와서야 에임즈베리 시편집(Amesbury Psalter)의 필사본 삽화에 처음으로 보인다. 회화로는 14세기에 로렌제티(Ambrogio Lorenzetti)의 <젖먹이는 마돈나 Suckling Madonna>가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ㅣ<리타의 마돈나(Madonna Litta)>. 1491년경ㅣ캔버스에 템페라, 33×42cmㅣ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 미술관

그러나 15세기 말엽의 가슴을 풀어헤친 엄마의 젖을 먹는 다 빈치의 <리타의 마돈나 Madonna Litta>란 그림을 대하면 '아하! 예수도 젖을 먹은 우리와 똑같은 아기시절이 있었구나!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고 탄성을 지르게 된다.

이 마돈나 그림을 보면 아기 예수의 오른손은 엄마로부터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엄마의 젖을 꼭 잡고 젖을 빨고 있으며, 왼손에는 머리에 붉은색이 있은 작은 새 한 마리가 들려있다. 엄마 사이에 있는 아기 왼발위에 놓고서 잡고 있다.

우리가 흔히 대하는 성서화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혜롭고 위엄을 갖춘 아기예수의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옷을 다 벗은 천진난만한 아기의 모습으로 엄마 품에 안겨 젖을 꼭 잡고 옹알이를 하는 파격적인 구도의 작품을 보노라면 우리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젖을 먹으며 한 손에 새를 잡고 있다고 해도 요즈음 어린이들처럼 애완동물과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장난감으로 만든 새도 아니고 살아있는 새를 잡고 있을 수 있는 나이는 더욱 아니다.

이 새는 황금방울새(Goldfinch)이다. 엉겅퀴와 가시나무를 먹고 산다고 하여 성서화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 새이다. 창세기에 보면 엉겅퀴는 아담과 이브의 타락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는 땅에서 종신토록 수고하는 벌을 받았으며 엉겅퀴는 가시가 많은 관목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의 재료로 묘사되기도 한다.

성모 마리아의 얼굴을 자세히 보자. 요즈음 세상의 엄마들처럼 젖 먹는 아기를 안고 흡족한 웃음을 짓는 모습은 발견할 수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후일에 그린 명작인 모나리자에서 나타난 은은한 미소를 다소 느낄 수 있으나 우아하지만 조각과도 같은 차갑고 슬픈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서화에서 성모가 아기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은 여성의 관능적 아름다움이나 세속적 호기심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 모습은 신성한 동정녀 마리아가 아기에게 드러낸 거룩한 모성(Maternity)이며, 십자가 고난을 받을 예수에 대한 슬픔과 헌신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리아 겉옷(마포리온)도 하나님(아기예수)에 대한 충성(로열티)을 상징하는 푸른색이며, 그 속에는 십자가의 피와 고통을 상징하는 붉은색 성의를 입고 있다.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에르미타슈 미술관 앞에 긴 줄을 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이 그림은 원래의 소장자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리타 공작이었기 때문에 리타의 마돈나 로 불린다.

두개의 창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세상은 구름과 산봉우리들이 중첩되어 있다. 또한 이 그림은 다 빈치의 어린 시절에 살던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강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암브로지오로렌제티ㅣ<젖먹이는 마돈나>ㅣ1330년경 Ambrogio Lorenzettiㅣㅣca. AD.1330

중세 이후 성모와 아기예수 그림의 본래 이름이나 별칭은 리타의 마돈나, 암굴의 성모 등 대부분이 마리아 중심이다. 예수의 이름은 사라지고 아기예수를 뜻하는 대문자를 단 아기(Child)로 표기될 뿐이다. 이는 성서화의 미스터리이다.

AD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성모에게 "신을 잉태하고 낳은 어머니"라는 뜻에서 "테오토코스(Theotokos)"라는 이름과 지위를 부여하였다. 이때부터 마리아의 격에 맞는 성모와 아기예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중세 때에는 많은 성당들을 마리아에게 바쳐졌다는 의미에서 "노트르담"으로 부르거나 옥좌에 앉은 마리아를 그린 대형 제단화를 "마에스타(Maesta)"라 하여 제단 앞을 장식하고 있는데 이러한 관념에서 성모자의 작품명이 그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필자가 성모자 그림을 ' 아기예수의 놀이' 란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유일하신 그 분 중심으로 관점의 재정립을 하고픈 소망 때문이다.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현재 자신의 블로그 '영천의 성서화 라이브러리(http://blog.naver.com/yanghwajin)'를 통해 다양한 성서화와 이어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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