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왈즈
존 왈즈. ©Christian Daily International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존 월즈의 기고글인 '대만에서 민간신앙을 떠나 기독교인이 된 이들, 복을 구하던 신앙에서 하나님께 속한 삶으로 나아가다'(Believers from Taiwanese folk religion shift from bargaining to belonging)를 10월 14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존 월즈는 대만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이자 목회자·교사이며 작가다. 그는 14년 이상 대만에서 교회 개척과 제자훈련, 복음 전파 사역에 참여해 왔다. 사역과 함께 성경, 선교, 영적 성장, 특수교육,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마주하는 도전과 격려에 관한 글도 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어느 평일 저녁, 린(Lin) 선생이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필자가 섬기는 개척교회를 찾아왔다. 뜻밖의 방문이었다. 방문객들은 대개 주일이나 음식이 준비된 특별한 행사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교회 개척 초기의 주중 기도회에는 필자 가족과 인턴 한 명만 모이는 경우가 많았다.

인사를 나눈 뒤 린 선생은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어머니와 친척들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소통한다고 주장하는 영매로 생계를 이어갔다. 사람들은 그들의 집을 찾아와 비용을 지불하고 도움을 구했다.

가족들은 방문객에게 특정한 신이나 영을 불러내려면 어떤 대가나 제물이 필요한지 알려줬다. 해당 영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방문객은 예물이나 서원을 바치고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다고 여겼다. 종교는 무언가를 바치고 그 대가로 소원을 이루는 방식으로 이해됐다.

그러던 중 린 선생은 필자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은 말을 했다. “저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는 신들과 영적 세계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가정에서 자랐다. 어떤 영에게 다가가고, 무엇을 바치며, 어떤 의식을 행해야 하는지 익숙하게 배웠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누구신지 신뢰할 만한 방법으로 알 수 없다고 고백했다.

익숙한 종교의 틀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

린 선생의 질문은 이러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세심하게 살펴야 할 문제를 드러냈다. 그에게 종교란 적절한 예물과 서원을 통해 신이나 영에게 접근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문화가 그러한 이해를 형성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또 하나의 영적 존재인가. 그분이 원하는 것을 바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는가. 필요할 때마다 불러낼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가.

사도행전 17장은 성경의 하나님을 거래의 틀 안에서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분이며 “천지의 주재”이시라고 선포한다(행 17:24). 하나님은 사람이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 수호신이 아니라 모든 것의 창조주이자 주님이시다.

바울은 이어 하나님께서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특정한 신전이나 집안의 제단에 모셔두고 인간의 편의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대만 민간신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신상을 집이나 사업장에 모시는 일이 익숙할 수 있다. 어디로 가서 어떤 의식을 행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선반 위의 신상이나 특정한 의식 안에 머무는 분이 아니다. 모든 종교가 제물과 교환의 원리로 작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가르침부터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거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이 드리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다. 바울은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행 17:25)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거래로 시작될 수 없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으시지만, 인간은 생명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의존한다. 바울은 그분을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라고 설명한다(행 17:25).

성경적 예배의 출발점은 교환이 아니라 의존이다. 우리는 흥정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호흡을 주신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의 자리를 인정한다. 하나님께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보다 이미 그분께 무엇을 받고 있는지를 깨닫는 일이 먼저다.

린 선생이 하나님을 알고 싶어 주중 기도회를 찾아온 것은 필자에게 뜻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알아가려 한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스도인에게 낯선 일이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의 때와 거주의 경계를 정하신 목적을 설명하며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행 17:27)라고 말한다.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더듬어 찾다’라는 표현은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 대상을 손으로 찾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삶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사람들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찾도록 부름받았다.

린 선생의 모습도 이와 같았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관한 수많은 설명을 듣고 자랐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누구신지 묻고 있었다. 영적 존재에 관한 지식과 의식에 익숙하다는 것이 곧 참 하나님을 안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는 복음을 전하는 방식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기독교 전도는 사람들이 기존에 섬기던 여러 신 가운데 예수님을 하나 더 추가하도록 권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이 찾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 전하는 일이다.

린 선생과 같은 사람에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도록 권하기에 앞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용서가 왜 필요하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익숙한 종교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복음의 뜻이 온전히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바치는 대가가 아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시대를 언급하면서, 이제 하나님께서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라고 선포한다(행 17:30). 하나님을 인간의 종교적 틀에 맞추려는 태도에서 돌이켜 그분께 돌아오라는 부르심이다.

회개는 구원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가 아니다. 하나님께 부족한 것을 채워드리는 행위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려주실 때 인간이 보여야 할 마땅한 응답이다. 하나님에 관한 잘못된 생각과 예배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참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라는 제물을 가져와 원하는 것을 얻어 가는 고객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창조주 앞에 선 피조물로서 자신의 자리를 인정하는 일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흥정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분의 은혜에 응답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중요하다. 복음을 받아들인 뒤에도 신앙을 거래로 이해하면 기도와 예배, 헌금과 순종까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는 삶의 중심에는 거래 조건이 아니라 그분을 향한 신뢰와 관계가 있다.

거래를 넘어 하나님께 속한 삶으로

앞으로도 린 선생처럼 하나님을 알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들을 만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을 가리켜야 한다. 더 나은 거래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하나님께 속한 삶이 무엇인지 전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는 사람은 자신이 충분한 제물을 바쳤는지 끊임없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어떤 영적 존재가 약속한 조건을 지켜줄지 염려하는 대신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다. 두려울 때 그분의 돌보심을 의지하고,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용서를 믿으며 죄를 고백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큰 복이다.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분과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시다. 관계의 근거가 소원의 성취 여부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린 선생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지 궁금해하며 교회를 찾아왔다. 그에게 전할 기쁜 소식은 기독교가 더 효과적인 의식이나 유리한 거래 조건을 제공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셨다는 사실이다. 복음은 하나님과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지 묻는 삶에서,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그분께 속해 살아가는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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