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지하철을 타고 경마장으로 향하는 노인들이 있다. 머리가 희끗한 남성들이 혼자 오고, 어떤 이는 친구와 함께 온다. 경주가 끝나면 다음 경주를 기다린다. 왜 하필 경마장일까.
최근 한 언론의 취재에서 만난 노인은 “집에 있는 것 외에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다. 경마장은 2000원의 입장료로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지하철 접근성도 좋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신청하거나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 없이 혼자 가서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가 이 장면에서 보아야 할 것은 경마가 아니라 왜 노인들이 그곳을 찾아가는가라는 질문이다. 우리 사회는 노인의 수명은 연장했지만 노년의 삶을 충분히 준비했는가?
2025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0.3%에 이르렀다. 65세가 된 사람에게도 평균적으로 20년 이상의 삶이 남는다. 이제 노년은 인생의 짧은 끝자락이 아니라 인생의 한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그 긴 시간을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는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빈곤이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0%에 이른다.
그러니 노인의 빈곤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갈 수 있는 곳의 빈곤,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빈곤, 할 수 있는 일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서 우리는 노인 자살이라는 비극을 만난다.
2023년 65세 이상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0.6명으로 전체 연령대 27.3명보다 높았다. 노인실태조사에서 노인이 자살을 생각한 이유로는 신체적 고통 다음으로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이 꼽혔다.
이 통계 앞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노인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그 생명이 살아갈 이유까지 마련해 주고 있는가. 시설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권’이다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도 최근 인터뷰에서 “갈 곳이 없다기보다 갈 곳은 있는데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측면”을 지적했다. 도서관, 공원, 문화센터 같은 기존 공공시설도 노인의 여가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서둘러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노인 전용시설’ 중심에서 ‘노인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공간’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 도서관, 체육관, 공원, 문화센터, 평생학습관을 노인의 공간으로도 열어야 한다.
둘째, 노인에게 여가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걷기, 음악, 영화, 여행, 공부, 봉사, 텃밭, 동아리, 디지털 교육 등 각자의 취향에 맞는 작은 모임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돈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노년 문화 바우처’를 확대해야 한다. 노년의 문화와 여가를 복지가 아니라 삶의 기본권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두 번째 인생이어야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어쩔 수가 없다》는 25년 동안 일한 가장이 갑작스럽게 해고된 뒤 재취업 경쟁에 내몰리는 이야기를 통해 중년 이후의 고용 불안과 생존의 문제를 묻는다. 영화의 비극은 단순히 직장을 잃는 데 있지 않다. 직장을 잃으면서 삶의 자리와 사회적 정체성까지 흔들린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교회와 종교계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노년 문제도 여기에 있다. 노인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밥을 함께 먹고, 배우고 가르칠 기회를 주며, 자신의 인생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할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노인이 교회의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해야 한다.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수명이 아니다. 남은 날을 살아갈 이유와, 오늘 하루 찾아갈 곳과, 함께 앉을 사람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노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가장 인간적인 복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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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