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게 되면 동시에 모든 아이들이 운다고 한다. 또한 모든 아이가 우는데 유독 어떤 아이가 울음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이치에 눈이 떠진 아이이고, 심리적으로 그때부터 영원을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고로 어떤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영원의 문제를 골똘하게 생각하게 되고, 어떤 아이는 늦게야 영원에 대해 고민한다고 한다.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쓴 현각 스님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영원에 대해 고민했다고 그의 책에서 고백했다.
사람은 누구나 신 의식을 지니고 있다. 어거스틴은 그 이유에 대하여 인간이 언젠가 신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례로 짬뽕을 먹고 싶어 한다면 언젠가 짬뽕을 먹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인용했다 싶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신 의식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어떤 사람은 무감각하다. 밀란에 거주하게 되던 이듬해(385년) 어머니 모니카가 멀리 칼타고에서 아들을 찾아왔다. 그 거리를 마다하고 찾아온다는 것은 이 시대 우리로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싶다. 아마도 그 먼 길을 찾아오기란 생명을 희생할 각오 없이는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머니는 아들네 집에 오자 동거하는 여인을 내보냈다. 손주가 이미 13살이 되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심했다 싶다. 요즈음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겠으나 옛날에는 그런 일이 가능했다 싶다.
시어머니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동거녀는 슬피 울면서 떠나야 했다.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어거스틴은 그 후 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13살 난 어린 소녀와 약혼했다. 결혼하려면 성인이 되는 15세까지 2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간을 참지 못한 어거스틴은 또 다른 여인과 동거할 정도로 정욕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젊은 어거스틴은 정욕에 이처럼 깊이 침잠되어 있었다.
고로 어거스틴에게는 정욕에서 해방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또, 어려운 문제였다. 정욕과의 치열한 영적 갈등은 마치 터지기 직전의 용암처럼 계속 그의 마음에서 거룩한 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보면서 얼마나 비참한 심정이었을까 싶다.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에 집중하였지만, 마음은 결코 평안을 누릴 수 없었다.
그는 답답한 상황이었기에 암브로시우스에게 찾아가 영적 고민에 대한 상담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암브로시우스는 많은 사람들의 빈번한 방문으로 그를 한가롭게 만날 수 없었다. 또한 작은 틈이 있을 때는 암브로시우스는 조용히 묵상하거나 성경을 읽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 일을 방해하면서까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회심을 경험했다는 심플리키아누스를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암브로시우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이끈 영적 지도자이었고 암브로시우스가 그를 영적 아버지로 존경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빅토리누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박학다식한 분으로 철학자들의 책을 읽고 평가하고 많은 원로원 의원의 스승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대학자로 여겼고, 그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로마 광장에 동상을 세워줄 정도이었다. 그는 이전에는 이방 신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찬양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심플리키아누스를 통해 신앙에 귀의하였고 청중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기독교 신자가 되었음을 공포함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 간증을 통해 어거스틴은 감동하였고 놀라운 충격을 받았다. 빅토리누스 같이 뛰어난 지성인이 기독교에 귀의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기독교를 가까이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영적으로 답답하여 친구 알리피우스와 정원에서 고민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는 묵상을 통해 비참하고 참담한 심정을 분출하였고 이내 회개가 터져 나오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기에 알리피우스의 곁을 떠나 무화과나무로 다가가서 하염없이 통곡하며 눈물을 쏟았다. “언제까지인가요, 나의 더러움을 해결하여 주십시오”라며 울부짖으며 통곡했다.
그때 옆집에서 반복하여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남자의 소리인지 여자의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데, 그 소리는 집어 들고 읽으라(Tolie Lege)! 집어 들고 읽으라(Tolie Lege!)!라는 노랫말이었다. 그런 중에 친구 알피우스가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거기에 성경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성경을 집어 들고 펼쳤더니, 눈에 딱 들어온 말씀이,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
그 구절을 읽자, 확신의 빛 같은 것이 내 마음에 비추었고 모든 의심이 즉시 사라져 버렸다. 비로소 이제까지 그를 짓누르던 모든 짐이 벗겨져 버렸다. 한순간에!
그때는 서기 386년으로 고향 칼타고를 떠나온 지 3년째이었고 그의 나이 32세 때였다. 그가 경험한 사건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크게 기뻐하시면서, 내가 주님께 구한 것보다 더 큰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며 감격스러워하셨다. 아들이 거듭났다는 고백을 들은 어머니는, 아들이 결혼하여 손주를 안겨주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거룩한 기쁨이라고 했다.
교인의 영적 분기점은 거듭남이다. 거듭남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교인으로 구분하는 바로메터다. 그렇다면 성령의 역사를 통한 거듭남, 그 중요한 결정적 마지노선을 당신은 통과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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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