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PR과 성과 증명이 필수적인 시대, 진정한 리더십의 본질을 묻는 묵직한 전기가 출간되었다. 신간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사람』은 1865년 허드슨 테일러가 설립한 중국내지선교회(CIM, 현 OMF)의 제2대 총재 딕슨 에드워드 호스트(1861–1946)의 생애를 조명한 국내 최초의 정식 단독 전기다. 홍콩 OMF의 중문 원서를 독점 계약해 번역한 이 책은, 화려한 무대 위 조명 대신 기도의 골방을 택했던 한 지도자의 삶을 방대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세밀하게 복원해 냈다.
기득권을 버리고 철저히 ‘조타수’로 물러난 삶
호스트는 영국 명문가 출신의 엘리트 포병 장교이자 선교 역사에 획을 그은 ‘케임브리지 7인’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과시하거나 앞세우지 않았다. 중국 현지인 시성모 목사를 교회의 ‘선장’으로 세운 뒤, 서양 선교사의 기득권과 우월감을 완전히 내려놓고 자신은 뒤에서 묵묵히 돕는 ‘조타수’의 역할을 자처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사용하시기 위해 그가 충분히 작아질 때까지 낮추신다"는 통찰은 철저한 자기 비움에서 나온 고백이었다.
피의 순교 앞에서 선언한 ‘배상금 전면 포기’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80여 명의 동료 선교사와 자녀들이 참혹하게 순교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잿더미가 된 상황에서 총재직을 이어받은 호스트의 결정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분노와 보복 대신 ‘복음적 용서’를 택하며 산시성 당국에 대한 배상금 청구를 전면 포기했다. 피 흘린 땅에 진정한 화해의 씨앗을 심은 이 결단은, 이 책을 통해 국내 최초로 상세히 조망되며 역사적 윤리와 신앙의 숭고함을 증명한다.
‘커지는 리더십’ 시대에 던지는 ‘빈 그릇’의 영성
무려 35년간 세계 최대 선교 단체를 이끌었음에도, 은퇴를 앞두고 후임자 지명권마저 공동체에 돌려준 그의 행보는 끝까지 일관되었다. "사람들에게서 자신은 잊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기억되기를" 구했던 그의 생애는, 끝없는 성과주의와 자아실현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과 리더들에게 깊은 정서적 감동과 영적 대안을 제시한다. 화려한 타이틀을 버리고 기꺼이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빈 그릇이 될 때 비로소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가 흘러간다는 사실을 묵직하게 전해주는 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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