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희 목사
이범희 목사

일제는 조선 사람에 대한 민족적 차별, 기회 박탈, 언론·신앙·집회의 자유 박탈과 함께 무수한 단체를 탄압하고 해산시키면서 온갖 만행을 자행했다. 또한 해외 출입과 교육을 제한했고 집안의 쇠붙이는 다 빼앗아 갔다. 조선말과 조선 문자의 사용까지도 금지했다. 학교에서는 한국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대신 일본사를 가르치고 일본 노래를 가르쳐서 완전히 일본화하는 교육을 했다. 일제의 만행은 다음과 같다.

①신사참배 강요=조선인을 일본인으로 개조하기 위해서 조선인 정체성 말살과 일왕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동방요배 등 민족 말살 정책을 펼쳤고, 이는 신앙을 유린한 행위였다.

②창씨개명=조선말과 글을 금지하고, 이름도 일본 이름으로 강제 개명을 강요했다.

③식민사관 조작=한국인 정체성을 말살하고 일제 한국침략의 학문적 기반이 되는 식민사관을 조작했다.

④동양척식회사=조선 농경지 40%를 강제로 빼앗고 50%의 소작료를 징수했다.

⑤강제징용=일본 내의 탄광, 비행장, 군수공장에 약 200만 명, 남양군도, 미얀마, 사할린 등 오지에 70만 명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인원을 강제 노역에 종사시켰다.

⑥징병=강제로 닥치는 데로 끌고 간 젊은이가 21만 명, 학도병 4,500명을 강제 징병했으며, 치시마 열도에서 5,000명을 집단 학살하고 만주 731부대에서는 3,000명을 세균무기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⑦위안부(성노예)=10대 소녀 20만 명이 좋은 일자리로 속아서 성노예가 되었다.

혹독한 세월을 버텼지만 분노와 화병, 불안증, 피해의식, 우울증, 불면, 악몽에 시달리며 참혹한 인생을 마치게 된 국가적인 수모를 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비통한 역사의 흔적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세밀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진상을 똑똑히 기억하고 생각하고 물으며 후대에도 각인시켜서 다시는 나라의 주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과 이유를 거듭거듭 각인해야 한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에 고무되어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무장 독립투쟁을 했지만, 우수한 무기와 잘 훈련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전패한 의병들은 북간도로 이주하여 독립군이 되어 무장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20년 6월 홍범도와 최진동의 독립군이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유인해서 승리했다. 1920년 10월 김좌진과 이범석의 북로군정서가 청산리에서 7번이나 승리했다. 그러나 이후 토벌 작전으로 독립군은 와해하고 이후 의혈단이 되어 폭탄을 투척하고 암살하는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19년 강의규 의사(65세)는 남대문에서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했고, 1923년 김상욱 의사는 종로경찰서에, 1926년 나석규 의사는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했다. 1932년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본 전승 행사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했으며, 이외에 많은 독립투사들이 풍찬노숙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희생되었다.

일제는 당시 우리나라를 가리켜 나라를 잃고도 분통해하지 않는 나약한 열등 민족이라고 조롱하며, 조선인이 일본의 식민 통치에 기쁜 마음으로 복종한다고 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 희생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이 정착한 세계 곳곳에는 나치에게 학살된 600만의 유대인을 잊지 않기 위한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이 있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이름들의 홀’이라는 원뿔형 건물에는 260만 명의 이름이 20개 이상의 언어로 새겨져 있다. 기념관 출입구에 뼈만 남은 물고기가 있고 그 옆에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문구가 있다. 전시실 2층 동판에는 ‘망각은 포로 상태로 이어지나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라고 쓰여 있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다시 비참한 신분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유대인들의 뼈아픈 참회와 깨달음인 것이다.

예루살렘의 하르 하지카론(기억의 산)에는 박물관뿐만 아니라 전시장, 기록보관소, 기념물, 조각들과 기념비 등의 여러 건물이 있고, 단지를 연결하는 길 좌우에는 6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600만 희생자를 기억하고 생각하게 한다. 또한 박물관 전체는 아주 강도 높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콘크리트는 파괴되거나 손상되지 않는 것처럼 나치의 끔찍한 대학살의 기억이 절대로 파괴되거나 손상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 외에도 유대인이 거주하는 세계 곳곳에는 홀로코스트 박물관 및 추모관이 세워져 있다. 나라 잃은 설움과 끔찍한 희생자를 국민 모두가 잊지 않겠다는 각오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탈한 역사를 거울삼아 더욱 국력을 신장시키고 전 국민이 우국충정의 일념으로 한마음, 한뜻이 되어 번영하고 더욱 발전하고 굳건한 대한민국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범희 목사(㈔한국보훈선교단 이사장, 6.25역사기억연대 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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