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데니스 패트리 박사의 기고글인 '종교적 정체성이 아닌 종교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박해':(Persecution that results from religious activity not identity)를 9월 2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데니스 P. 페트리 박사는 국제종교자유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Religious Freedom)의 국제 책임자이며, 라틴아메리카 종교자유 관측소(Observatory of Religious Freedom in Latin America)의 설립자이자 상임 연구위원이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과학기술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여러 저서의 저자이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라이언 버지(Ryan Burge)는 2026년 9월 14일, 필자가 누군가 써주기를 수년간 기다려온 글을 발표했다. 「종교 행동 지수: 미국인들은 실제로 얼마나 신앙에 참여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그 글을 읽은 필자의 첫 반응은 단 한마디였다. “드디어.”
미국인의 종교 활동을 측정한 이 지표가 종교의 자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필자는 멕시코에서 박사 과정 현장 연구를 수행한 이후 줄곧, 신앙 때문에 폭력의 위협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사람들은 반드시 ‘종교적 소수자’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따라 실제로 무언가를 ‘행하는(do something)’ 사람들이라고 주장해 왔다.
문제는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를 제대로 측정하는 연구가 많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이들을 향한 폭력은 충분히 기록되지도, 설명되지도, 해결되지도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버지는 바로 그 ‘행동(doing)’을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는 필자가 후속 글에서 다룰 문제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를 놓쳤을 때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20년간 종교학계에서는 ‘살아 있는 종교(lived religion)’라는 개념이 꾸준히 논의돼 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인구조사에서 어느 종교에 속한다고 표시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실제 삶에서 어떻게 실천하느냐라는 것이다. 이 개념은 학술 문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를 실제로 측정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작업은 비교적 더디게 진행됐다.
종교성을 복합적으로 측정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퓨 리서치(Pew Research) 연구원들은 예배 참석과 기도, 종교를 삶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결합한 ‘종교적 헌신도 지수’를 활용해 왔고,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 역시 수십 년 동안 종교적 참여도를 조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도구들은 실제 행동과 개인의 신념이나 자기평가를 한데 섞는 경우가 많으며, 행동을 측정하더라도 대부분 예배 참석 여부에 집중해 왔다.
버지의 지수는 다르다. 오직 ‘행동’으로 구성돼 있다. 단순히 예배 참석 여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도 모임, 성경 읽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 등 여러 활동을 함께 측정하며, 종교적 전통과 연령, 지역 등에 따라 세분화해 살펴볼 수 있을 만큼 큰 표본을 사용한다.
그는 약 3만70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퓨 리서치의 ‘종교 지형 조사(Pew Religious Landscape Study)’ 자료를 활용해 여섯 가지 행동을 0점에서 10점까지의 하나의 척도로 결합했다. 매주 대면 예배 참석, 온라인 예배 참석, 개인 기도, 기도 모임이나 성경공부 참여, 성경 또는 묵상 자료 읽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가 그 여섯 가지다. 0점은 이러한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를, 10점은 모든 항목에서 매우 높은 빈도로 참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이 여섯 가지 항목이 종교적 행동을 완벽하게 포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배 참석이 대면과 온라인으로 두 항목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종교와의 대화’는 나머지 다섯 항목과 성격이 다소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퓨 리서치가 기존 조사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한 결과이며, 버지는 주어진 자료 안에서 가능한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크리스천 스미스(Christian Smith)는 『종교: 그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며, 왜 중요한가』에서 종교를 단순한 신념의 집합이 아니라 다양한 ‘실천(practices)의 복합체’로 정의하며 18가지 종교적 실천을 제시한다. 그의 핵심 주장은 종교 행동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목록을 만들더라도 결국 일정한 선에서 선택적으로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버지가 활용한 여섯 가지 항목이 ‘살아 있는 종교’ 전체를 담아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설문조사가 측정해 온 것보다 훨씬 더 넓은 행동의 영역을 포착한다.
그 결과는 미국을 여전히 ‘종교적으로 매우 활동적인 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소 놀라울 수 있다. 가중 평균은 3.73점에 그쳤으며, 9점 이상을 받은 미국인은 3.7%에 불과했다. 하위 20%는 0점에서 0.6점 사이에 머물렀는데, 이는 사실상 측정된 종교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수준이다.
종교 집단별로는 여호와의 증인과 후기성도 교회 신자들이 약 6.6점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가톨릭과 주류 개신교 신자들의 평균은 약 3.8점으로 전국 평균을 조금 웃돌았고, 자신에게 ‘특별한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 이들의 평균은 약 1.5점이었다.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의 점수는 1점 미만이었다.
종교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결과 자체가 반드시 놀라운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새로운 점은 이제 이러한 차이를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서로 다른 집단의 행동을 비교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추적하며, 원칙적으로는 같은 집단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자료와 결합해 분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이 마지막 가능성이다.
정체성이 잘못된 변수가 될 수 있는 이유
필자가 연구를 통해 반복해서 강조해 온 핵심 가운데 하나는 종교 집단이 인권 침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설명하는 핵심 변수가 반드시 ‘종교적 정체성’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많은 경우 ‘종교적 행동’이 더 중요한 설명 변수가 된다. 이러한 주장은 단순한 이론적 추론이 아니라 현장 연구에서 비롯됐다.
필자는 박사 논문 『종교적 소수자의 특수 취약성』에서 세 가지 사례에 취약성 평가 도구를 적용했다. 멕시코 북동부의 카르텔 통제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기독교인들, 콜롬비아 남서부 나사(Nasa) 원주민 공동체에서 전통 의식을 거부하고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들, 그리고 쿠바의 기독교인들이 그 대상이었다.
세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점은 단순히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만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신앙에 근거해 실제 행동을 취했을 때였다. 청소년들이 카르텔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축구팀을 만드는 행동, 원주민 공동체가 요구하는 의식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행동, 강단에서 공산주의 정부를 비판하는 행동 등이 갈등을 불러왔다.
취약성은 사람들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부르느냐보다, 자신의 신앙 때문에 무엇을 하느냐를 따라 움직였다.
적대적인 환경에서 활동해 본 사람들에게 이는 낯선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닉 립켄(Nik Ripken) 역시 『미친 순종(The Insanity of Obedience)』에서 선교 현장의 관점으로 유사한 지점을 지적한다. 박해를 불러오는 것은 조용히 존재하는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 자체라기보다, 복음을 전하고 신앙에 따라 행동하는 기독교인의 활동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 실무자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이러한 사실은 피해자를 집계하고 박해를 평가하는 공식적인 도구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바로 이 간극이 이 글의 핵심이다.
범주가 아닌 연속적인 스펙트럼
필자는 논문과 『Human Rights Quarterly』 기고문을 통해 종교를 수동적인 정체성에서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다섯 단계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가장 수동적인 끝에는 인구조사에서 특정 종교를 선택하는 ‘종교적 자기 식별’, 즉 종교적 정체성이 있다. 그다음에는 예배에 참석하거나 교구 또는 종교 공동체에 소속되는 제도화된 ‘종교적 참여’가 자리한다.
그다음 단계는 ‘종교적 라이프스타일’이다. 뇌물 상납을 거부하거나 술을 마시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 참여하는 특정 의식을 신앙적 이유로 거부하는 것처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회적 규범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는 형태다.
필자는 종교적 참여와 종교적 라이프스타일을 ‘반(半) 적극적’ 형태로 분류한다. 중요성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그 행동의 직접적인 영향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지기보다는 주로 개인이나 자신의 공동체 안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보다 적극적인 단계에는 타인을 개종시키거나 명목상 신자를 적극적인 신앙으로 이끌려는 ‘선교 활동’이 있다. 가장 적극적인 단계에는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자선사업과 시민사회 활동,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참여하는 ‘시민적 참여’가 자리한다.
이 스펙트럼에서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이동할수록, 개인의 행동은 지역 권력을 장악한 세력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권력이 마약 카르텔일 수도 있고, 전통적인 공동체 권위일 수도 있으며, 국가나 정당일 수도 있다.
멕시코 북동부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필자가 연구한 누에보레온, 타마울리파스, 산루이스포토시 등 세 개 주에서는 인구의 약 96%가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인식했다. 정체성만 놓고 보면 압도적 다수가 같은 종교에 속하기 때문에 연구할 만한 ‘종교적 소수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행동의 스펙트럼을 따라 이동하면 숫자는 급격히 달라진다. 멕시코 종교학자 네트워크(RIFREM)의 조사에서 이 지역의 매주 교회 출석률은 약 54%로 낮아진다. ‘종교적 라이프스타일’에 가까운 지표로 이동해 자신을 확신에 찬 신자 또는 실천하는 신자로 묘사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약 37%가 된다.
가장 적극적인 단계에서는 숫자가 훨씬 더 작아진다. 퓨 리서치에 따르면 매주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멕시코 기독교인은 약 10% 수준이며, 전년도에 빈곤층의 권리를 위한 시위를 조직하거나 참여한 정기적인 예배 참석자는 약 13%였다.
결국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기독교인이라고 응답하는 국가에서도 ‘적극적으로 종교적인’ 사람들은 비교적 작은 소수로 줄어든다. 종교적 정체성만 바라보는 통계에서는 바로 이 집단을 제대로 찾아내기 어렵다. 그리고 이들에게 폭력이 발생할 경우, 사건은 주목받더라도 종교와 관련된 공격이 아니라 단순한 ‘범죄’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위험
바로 이 적극적인 소수가 더 큰 위험을 떠안는 경우가 있으며, 위험의 성격 역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히 교회에 모이는 ‘종교적 참여’ 단계에서도 카르텔 통제 지역의 교회들은 보호비 갈취와 몸값을 노린 납치, 야간 예배 제한 등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카르텔 조직원들이 숭배하는 ‘산타 무에르테(Santa Muerte)’ 제단을 교회 건물에 설치하도록 압박받았다는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을 모두 종교 박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교회가 눈에 잘 띄고 접근하기 쉬우며 현금이 있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표적이 되는 경우라면, 같은 지역의 사업체가 당하는 범죄와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종교적 라이프스타일’ 단계에서는 신앙 자체가 행동의 이유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카르텔이 요구하는 이른바 ‘자릿세(derecho de piso)’ 납부를 신앙적 양심을 이유로 거부한 목회자들이 납치되거나 살해된 사례가 있었다. 이 경우 문제가 된 것은 이들이 단순히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보다,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선교 활동’은 더욱 종교 특유의 위험을 만들어낸다. 카르텔에서 빠져나온 뒤 기독교로 개종하고 조직을 떠난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카르텔 통제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 목회자들이 살해 협박을 받고 전도 집회를 취소해야 했던 사례가 보고됐다.
‘시민적 참여’는 종교 지도자가 지역 권력과 직접적으로 충돌하게 만들 수도 있다. 카르텔의 청소년 징집을 막기 위한 축구팀 창단, 마약 중독자를 위한 재활 프로그램 운영, 갈취를 비판하는 설교 등은 종교인을 단순한 예배자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영향력 있는 행위자로 만든다.
필자가 연구한 사례 가운데 한 축구팀 창립자의 교회 문에는 협박 쪽지가 붙었고 그의 아내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 비야누에바(Villa Nueva)의 한 재활시설에서는 공격으로 환자와 사회복지사 등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패턴은 버지의 지수가 미국에서 보여주는 현상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명목상 종교인 가운데 상당수는 적극적인 종교 활동을 하지 않으며, 비교적 작은 소수만이 신앙을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멕시코와 같은 폭력적인 환경에서는 바로 그 분포의 끝에 있는 사람들이 더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두 명의 루터’가 보여주는 것
마르틴 루터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정체성’이라는 렌즈가 무엇을 놓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했을 당시 그는 가톨릭 수도사였다. 단순한 종교적 정체성만 보면 그는 당시 서유럽의 주류 종교 질서 안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위험은 그 정체성 자체보다 그가 그 정체성 안에서 무엇을 주장하고 행동했느냐에서 비롯됐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역시 자신의 민권운동을 목회적 소명과 깊이 연결해 이해했다. 그의 취약성을 설명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침례교인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침례교 목회자로서 인종차별에 맞서 어떤 행동을 했느냐였다.
정체성만으로 구축된 통계적 프레임은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
왜 아무도 이 폭력을 보지 못하는가
필자는 바로 이 차이를 충분히 구분하지 않은 것이 많은 사람이 라틴아메리카에는 심각한 종교 자유 문제가 거의 없다고 판단하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외교관과 언론인, 연구자들에게 물으면 흔히 비슷한 답을 듣게 된다. 이 지역은 압도적으로 기독교인이 많고, 대부분의 헌법이 종교와 예배의 자유를 보장하며, 발생하는 폭력은 범죄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이지 종교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주로 ‘종교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현실을 바라볼 때 나온다.
종교 자유를 평가하는 여러 국제 지표와 정부 보고서는 특정 종교 집단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을 포착하도록 설계돼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목적에서는 상당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사회의 다수 종교에 속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독교인’이나 ‘가톨릭’이라는 범주 자체가 박해의 대상이 아니라면 기존 지표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할 수 있다.
멕시코처럼 가톨릭 문화가 강한 국가에서 단순히 ‘가톨릭 신자에 대한 폭력’을 찾는다면 뚜렷한 패턴을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마약 재활센터를 운영하고, 청소년에게 카르텔 가입의 대안을 제공하며, 갈취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자신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폭력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타날 수 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멕시코에서 살해된 성직자들의 사례 역시 단순히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지역 사회에서 수행한 역할과 발언, 범죄 조직과의 갈등 등 구체적인 행동과 맥락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분석에서 이러한 행동적 차원을 제거하면 사건은 쉽게 종교와 관계없는 ‘조직범죄’로만 분류된다. 바로 이것이 라틴아메리카의 종교 자유 현실을 이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주요 맹점이다.
측정 도구가 만들어내는 사각지대
이러한 한계는 뛰어난 종교 자유 연구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다니엘 필폿(Daniel Philpott)과 티모시 샤(Timothy Shah)가 이끈 노트르담대의 ‘카이사르의 칼 아래(Under Caesar’s Sword)’ 프로젝트는 심각한 종교 자유 침해에 직면한 기독교 공동체의 대응을 3년에 걸쳐 25개국에서 조사한 대표적인 연구 프로젝트다.
그러나 연구 대상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포함되지 않았다. 기존 지표상 이 지역에는 정체성에 근거해 명확히 식별할 수 있는 ‘박해받는 기독교 집단’이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연구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데이터를 활용하느냐에 따라 연구 대상 자체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대가는 학문적 분류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조직범죄로만 분류된 살인은 종교 자유 보고서에서 빠질 수 있고, 외교기관이나 국제기구의 종교 자유 의제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멕시코의 연방 보호제도 역시 언론인이나 인권활동가와 같이 명확하게 정의된 위험 집단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마약 재활시설을 운영하다 위협을 받는 목회자는 기존 범주 어디에도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
국제적 관심과 지원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측정하고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영향을 받는다. 행동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는 종교인을 분석 범주에서 제외한다면, 다음에 비슷한 활동을 시작하는 목회자는 자신이 어떤 위험에 들어서고 있는지 제대로 경고받지 못할 수도 있다.
잘못된 분류는 단순한 통계상의 오류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누가 위험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누가 보호의 대상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정체성 박해와 행동 박해는 다르게 나타난다
정체성 자체가 표적이 되는 사회와 비교하면 이러한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북한의 기독교인이나 이란의 바하이교도처럼 특정 종교 집단에 속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적극적인 신앙 활동이 위험을 더 키울 수 있지만, 위험의 출발점은 이미 정체성 자체에 존재한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종교적 취약성이 특정 정체성 범주와 강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정체성 중심의 측정 도구가 실제 위험을 비교적 잘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일부 환경에서는 종교적 정체성과 박해의 위험이 서로 분리될 수 있다. 단순히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는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기독교인으로서 특정한 행동을 할 때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정체성만 측정하는 도구는 아무런 이상 신호를 발견하지 못하고, 신앙적 행동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은 통계의 사각지대로 사라질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유럽의 많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구 대다수가 같은 교회 전통에 속해 있었다. 따라서 종교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박해 지표로는 포착할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세속화와 개신교의 성장, 새로운 종교운동의 등장으로 이러한 종교적 지형도 점차 변화하고 있으며, 정체성 중심의 도구들도 새로운 다원주의를 조금씩 포착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명목상 동일한 종교에 속한 인구 안에서 적극적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소수가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현상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이들은 때로 다른 위험에 직면해 왔지만, 우리는 그 차이를 충분히 측정하지 않았다.
라이언 버지의 연구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지수는 사람들이 어떤 종교적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를 넘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를 수치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접근을 미국 밖의 사회에도 적용하는 일이다. 신앙 활동의 정도와 유형을 측정하고, 그것이 실제 폭력과 차별, 취약성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살펴봐야 한다.
무엇이 그것을 어렵게 만드는지, 그리고 왜 이 중요한 나머지 절반의 데이터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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