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경
한혜경 박사가 한국조직신학회 제11차 월례신학포럼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한국조직신학회 영상 캡처

한국조직신학회(이오갑 회장)가 최근 제11차 월례신학포럼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날 한혜경 박사(토론토대, 낙스신대원, 기독교윤리학)가 ‘몰트만의 십자가 신학은 어떤 점에서 여성신학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한 박사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왔다”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그들의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은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수동적 희생으로 보며 결과적으로 여성들을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논리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여성신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했다.

이어 “즉, 십자가는 여성들에게 말없이 고통을 감내하는 상징으로 적용함으로써 가부장적 지배를 합리화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여성주의자(womanist) Delores Williams와 페미니스트 신학자 Rita Nakashima Brock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그의 아들을 희생시켰다고 전통적 구원론과 기독론을 거부한다”며 “그들은 ‘피에 굶주린 신처럼’(a blood-thirsty God) 아들을 죽도록 내버려 둔 하나님을 거부하고 여성과 남성 모두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해석을 추구했다. 그들은 십자가 사건 이전에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예수의 삶과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찾으려고 시도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람들은 속죄의 본문들을 피할 수 없으며 계속해서 해석해야 한다. 예수의 속죄의 죽음을 새롭게 전유하기 위해서(to newly appropriate)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그의 삶 전체와 부활에 비추어 통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며 “만약에 우리가 예수의 죽음에서 속죄의 측면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쉽게 그리스도의 사역을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하나의 도덕적 예 또는 모델로 축소시키게 된다. 반면에 우리가 예수의 삶과 메시지로부터 동떨어진 죽음의 속죄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하나님은 예수의 죽음을 강요할 만큼 자신의 명예에 집착하는 독단적이며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제시된다”고 했다.

이어 “예수의 죽음은 그의 삶이나 부활로부터 분리되어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며 “오늘날 여성신학자들이 던지는 시대적 도전은 소외된 자들과 힘없는 희생자들과 비인간화된 사람들을 포용하며 그들과 연대하며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을 정당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의 취약점인 예수의 대속의 죽음을 보강하는 십자가 신학을 세워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박사는 “몰트만은 그의 저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The Crucified God)에서 십자가의 역사성과 신학적 관련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즉 ‘어떤 십자가 신학이 본디오 빌라도의 치하에서 십자가형을 받으신 나사렛 예수에게 공정한 것이며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인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다”며 “몰트만은 ‘격리상태에 놓인 십자가로부터가 아니라 예수의 생애와 부활의 맥락에서 십자가를 이해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라든지 죄 없는 희생자로서의 죽음이 아닌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고 했다.

이어 “몰트만의 십자가 신학은 그의 변증법적 기독론(The dialectical Christology of Moltmann)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며 “몰트만에게 부활하신 예수의 죽음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부활은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는 그의 죽음에서 하나님의 부재(godlessness)와 버려짐(godforsakenness)과 덧없음(transitoriness)과 같은 현실의 모든 부정적 요소들과 동일시 된다. 오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활하신 예수가 십자가에서 믿음 없고, 버려진, 덧없는 인생들에게 부활의 새 생명을 가져다주기 위해 그들과 동일시 되며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자 소망을 깨우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내심으로 변혁을 향한 희망의 원천이 되신다”고 덧붙였다.

또한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아간 예수의 역사는 그 자체가 신학적 역사로서 하나님과 우상들 간의 갈등이 지배적이라고 주장한다”며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는 인간을 율법의 거짓 우상들에게 종 된 것으로부터 그리고 정치 종교와 유신론적 종교들로부터 자유케 하신다”고 했다.

한 박사는 “몰트만에 의하면 예수는 ‘삼위일체의 계시자’(the revealer of the Trinity)이기 때문에 우리는 삼위일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의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며 “예수의 출생, 생애, 죽음과 부활을 거친 예수의 역사는 삼위(the divine persons) 간의 역동적인 관계성을 독특하고 확실한 방식으로 드러내 준다. 그것은 무한한 자기-내어줌(self-giving)과 상호간의 희생적 사랑(reciprocal sacrifice of love)으로 특징지워지는 삼위간의 교제를 드러낸다”고 했다.

이어 “우선 몰트만은 아들을 보내신 사건을(the sending of the Son) 삼위 모두가 관련된 자유로운 자기-내어줌의 사건으로 묘사한다”며 “삼위일체안의 신적 자기-내어줌은 십자가의 사건에서 절정을 이룬다. 몰트만에 따르면 이 십자가 사건은 삼위의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간의 내적 움직임을 계시해 줄 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한 삼위일체의 자기-내어줌의 무한한 깊이를 드러내 준다”고 덧붙였다.

또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utter boundlessness of divine mercy), 즉 ‘잃어버린 남녀 모두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시고 모든 것을 주시며 모든 고통을 당하시는 사랑’을 발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몰트만의 삼위일체적 해석학(trinitarian hermeneutics)은 세상을 향해 자신을 내어주는 삼위일체의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며 “예수의 출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사건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은 무한히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과 너그러움과 같은 신적 본성(divine nature)을 입증해 주신다. 따라서 상호관계, 사랑, 공감, 그리고 상호기부(mutual giving)와 같은 용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본성을 묘사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여성 신학자인 캐런 킬비(Karen Kilby)는 몰트만이 삼위일체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상호관계, 사랑, 공감(empathy), 상호기부(mutual giving)와 같은 용어들은 내재적 삼위일체의 삶에 그가 선호하는 사회-정치적 아젠다(preferred social and political agenda)를 투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특히 그녀는 사회적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개념이 하나님에 대한 통찰력을 준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촉구한다”고 했다.

그는 “킬비의 이와 같은 비판은 몰트만을 비롯한 사회적 삼위일체론자들에게 정당한 것이며, 그녀가 주장하는 것처럼 몰트만은 그가 선호하는 사회적, 정치적 아젠다를 내재적 삼위일체의 삶에 투영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성경의 증거로부터 삼위일체의 삶에 대한 속성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적 삼위일체 신학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맥두갈(McDougall)에 의하면, 킬비(Kilby)의 비판은 몰트만이 얼마나 자신의 방법론적 의도에 충실한지를 간과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며 “그녀는 몰트만이 성경의 증거를 삼위일체 이해를 위한 지배적 근원이자 규범으로 삼고 있음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몰트만은 신약성서의 증거에 따르면 아버지를 드러내는 분은 아들이시고(마 11:27), 아들을 드러내는 분은 아버지이라고 강조한다(갈 1:16)”며 “그리고 몰트만은 예수역사의 해석을 일신론적 의미에서 한 신적 주체로 축약시키는 기독교적 일신론은 그리스도의 역사에서 볼 때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는 상호성, 사랑, 공감, 동등함, 호혜성과 같은 용어는 몰트만이 선호하는 사회-정치적 이상들을 삼위일체에게 투영한 것이 아니라 맥두갈(McDougall)이 주장한 것처럼 성서들을 통해 증거되는 신적 삶(the divine life)에 대한 인격화된 묘사(anthropomorphic descriptions)로 간주해야 한다”고 했다.

한 박사는 “몰트만의 사회적 삼위일체 십자가 신학은 과연 여성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는 여성신학을 세우는데 공헌할 수 있는가”라며 “나는 몰트만의 사회적 삼위일체적 십자가 신학은 예수의 십자가를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자유와 생명을 주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 상징으로 회복시킨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에 대한 사회적 삼위일체적 접근은 여성주의적 접근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사회적 삼위일체적 십자가 신학은 여성신학이 추구하는 상호적 호혜적 관계성과 다름에 대한 존중과 성별간의 평등과 같은 인간관계에 필수적인 요건들을 페리코레시스 관계에 계신 심위일체하나님으로부터 유추한다”며 “그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대한 사회적 삼위일체적 이해는 예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서 소외되고 희생당하고 비인간화된 사람들과 연대하며 고통당하시는 열정적인 사랑의 하나님을 드러내준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십자가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삼위일체적 이해는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비인간화를 허락하는 일부 페미니스트의 십자가 이해를 교정해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자기존중(self-respect)과 자기가치(self-worth)를 증진시켜 준다”며 “결과적으로 사회적 삼위일체적 십자가 이해는 여성으로 하여금 불의와 편협과 억압에 대항하며 소외된 자와 무고하게 고통당하는 자와 연대하며 사회 속에서 상호적이며 호혜적인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서의 시대적 사명감을 불러일으켜 준다. 사회적 삼위일체적 십자가의 실천은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페리코레틱 사랑의 실천”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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